시비 대한 선입견 반성하고
너와 나 넘어서 전체보며
올바른 시비가림 생각하길

요즘 선거를 앞두고 공천문제 등에서 불거진 여러 문제들이 국민들의 눈에 아프게 들어오고 있다. 그것들이 대부분 정치에 대한 실망과 염증을 불러일으키거나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별로 없을 듯하다. 공자는 “정치란 올바름(正)으로써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지금의 정치는 바르지 않음이 근본인지도 모르겠다는 탄식이 저절로 나올 지경이다. 그만큼 우리의 정치판은 오염되어 있고, “정말 믿을만한 사람, 믿을 수 있는 정당 없다”는 것이 많은 국민들의 생각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여기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정치를 이렇게 만든 것은 과연 정치인들의 탓인가? 그들을 뽑은 것은 누구이며, 또 그들을 투표라는 것을 통해 심판한 것은 누구인가? 결국 우리들 국민이다. 정치에 대한 염증과 불만을 토로하기 이전에, 이러한 정치판은 다름 아닌 우리들의 작품이요, 우리들의 업이란 반성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나는 쏙 빠지면서 정치판을 성토하고 정치인을 비난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업에 대한 온당한 인식이 없으면 업의 청산이 불가능하다.

필자는 몇 번 우리 국민들의 정치의식과 수준에 대하여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암담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꽤 오래전 언론인들이 그해에 가장 의정활동을 잘한 국회의원을 선정하여 발표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해에 선거가 있었고, 그 선정에서 1ㆍ2ㆍ3위를 했던 국회의원들이 다 낙선했다. 이 결과를 보고 참으로 참담한 생각이 들었다. “아, 앞으로도 갈 길이 멀구나!”하는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지역구 관리가 기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런 결과까지 나온다면 근본적으로 문제가 되는 상황인 것이다. 그것뿐인가? 수십 번 중심되는 주장을 바꾸고 정당을 바꾸고, 엎치락 뒤치락을 하여도 여전히 국회의원으로 뽑히는 고귀하신 많은 분들을 보는 심정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 역시 앞으로도 갈 길이 멀구나!”이다.

너무 시비를 가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하면 안 된다. 그렇게 되는 근본에는 시비에 대한 고정된 선입견이 있다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 내 편이기에, 오래 알기에, 나한테 봉투 줬기에…… 등 많은 이유로, 이미 시비를 가르고 편을 가르는 의식이 있지 않은가? 그러기에 정말 올바른 시비가림이 실종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법의 성품은 원융하여 두 모습이 없다” 했던가? 두 모습이 없는 원융함을 바탕으로 하여 두 모습을 티끌만큼의 가림도 없이 분별하라는 말이다. 현실의 두 모습을 뭉개라는 말이 아닌 것이다. 남녀를 넘어선 원융함을 바탕으로 해야 오히려 남녀의 모습을 분명히 알고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선입견으로 네 편, 내 편이라는 시비와 호오에 물들어 현실의 시비를 올바로 가리지 못하고 있음이며, 이것이 바로 양극화의 원인인 것이다. 너와 나를 넘어서는 우리 전체를 보지 못하고, 너와 나를 나누는 두 극에 서는 것이 양극화이며, 그렇게 근본이 잘못되어 있기에 현실이 이토록 엉망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 근본의 양극화는 망각하고 단순히 현실의 시비를 따지는 것을 매도하는 것은 정말 본말이 전도된 양상인 것이다. 엄하고도 엄하게 따져야 한다.

물론 그 따짐에 증오가 깃들어서는 안 될 것이지만, 공인의 한마디 한마디를 꼬치꼬치 추궁하고, 행동거지 하나를 엄하게 살피는 눈이 없으면 앞으로도 정치판과 정치인들이 여전히 그러할 것이라는 것을 바로 보아야 한다. 정치권에 정치인들에 국민의 손가락과 국민의 눈이 언제나 머물고 있음을 엄하게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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