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정진으로 찾은 행복

맞선 본지 1달 만에 결혼, 술주정과 폭력에 시달려
부처님께 귀의하며 안식 얻어
내 위장병과 남편 뇌종양 관음기도로 이겨내

25살이던 1984년 1월 22일 맞선 본지 1달 만에 양가 부모님의 독촉으로 신랑 될 사람의 성격도 파악하지 못한 채 결혼했습니다. 결혼을 하고보니 신랑은 술주정뱅이에 폭력을 휘두르는 나쁜 사람이었다. 신혼의 달콤함이 뭔지도 모르고 매일 매일을 두려움과 공포로 살아야만 했다. 매일같이 술에 취해 들어와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고 싸우자며 덤벼들었다. 싸움을 피하면 매가 무서워서 그러냐며  계속 달려들었다. 이럴 때면 내 신세가 한스러워 밤새 울곤 했다.
첫째 딸이 9개월일 때 일이다. 아이가 운다며 뺨을 수없이 때렸고, 아이는 놀래서 밤새 울더니 다음날 아침 피똥을 여러 번 싸고 몸이 축 늘어지며 고개를 떨구었다. 놀란 나는 아이를 업고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의사선생님이 장중첩증이라며 목숨이 위험하니 입원시키라고 했다. 어린 딸이 불쌍해 또 한없이 울었다.
의사 선생님은 꼬인 장을 푸느라 비지땀을 흘렸다. 수술하지 않고 풀었으니 천운이라며 축하한다고 했다. 병실에서 아이를 돌보며 남편의 비정함에 치를 떨었다.
둘째 아들을 낳고 몇달 안돼 머리를 구타당해 뇌진탕을 당했고, 목을 졸려 고개를 돌리지도 못할 정도로 폭행을 당했다. 무서워 더 이상 같이 살 수가 없다고 판단한 나는 아이들과 친정으로 갔다. 다시는 이곳으로 피신오지 않겠다고 다짐한지 3년만이다. 석 달을 넘게 친정식구들과 함께 살며 ‘참 행복 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영원히 남편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 친정에 있기가 눈치 보여,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남편의 맹세를 믿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믿었건만 넉 달이 지나지 않아 다시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에 의해 눈을 많이 다쳐 3주 동안 안과에 다녔으며, 8살 된 딸은 코피가 터지고 온몸에 피멍이 들었다. 참담함과 분노는 극에 달했으며 도저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이혼을 결정하고,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 이혼절차를 밟으려 했다. 하지만 이혼만은 피하자며 남편이 사정해 과거 악랄한 행위에 대한 참회와 절대 여사악행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고 공증을 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밤중에 또 술주정을 하며 들어왔다. 남편은 들어오자마자 집에 불을 지르겠다며 휘발유와 신나를 찾으면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미친놈처럼 마루와 마당으로 뛰어다녔다. 나는 이런 남편을 말리다 구두 발로 배를 차이고 머리를 맞아 정신을 잃고 뒤로 나뒹굴었다. 옆방 사는 새댁부부가 내게 물을 먹이고 등과 가슴을 두들겨 줘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말려도 계속 난동을 부리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너무 기가 막혀 망연자실 했다. 무서워 우는 아이들을 데리고 옆집으로 피신하며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순간 ‘아! 나도 절에 다니고 싶다! 이것을 해결해 줄 분은 부처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정은 선조 때부터 부처님을 믿는 불교집안이어서 친정엄마는 1982년부터 ‘인천 연화사'에 다니셨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절에 다니나보다 하며 별 관심 없이 보아왔다. 절에 다니기로 마음먹고 다음날 아침 엄마에게 절에 다니겠다고 전화를 했더니, 엄마는 “정말이냐? 한달 있으면 석가탄신일 이니까 그때 가자”라며 반가워하셨고, 그때 함께 절에 가기로 약속을 했다.
절에 가기로 마음을 먹으니 한달이 왜 이렇게 긴지 하루가 일년, 아니 천년 같았다. ‘절에 가기 전에 맞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과 공포가 엄습했다. 부처님 품에 안기면 맞지 않을 것 같았다. ‘하루 빨리 그날이 왔으면!'하고 기다리는 심정은 초조와 불안의 연속이었다. 절에 가기 전 한달 동안은 하루하루를 조심조심 살얼음 걷듯이 지냈다.
1992년 4월 7일. 고대하던 석가탄신일 전날 밤! 난생 처음 와 보는 절! 점등식에 참석했을 때의 감회가 얼마나 가슴을 울렸는지. 대웅전의 부처님은 웅장한 몸에 황금으로 번쩍거리는 옷을 입고 위엄 있게 앉아 계셨다. 부처님께 합장하고 3배를 올리며 위를 올려 다 보니 양팔을 벌리고 ‘이리 오너라!' 하는 것 같았다. “부처님! 영원히 변치 않는 불제자가 되겠습니다.” “제가 살길이 어떤 길인지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저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결혼한 지 9년 여 삶에 찌든 몸과 마음을 부처님 품에 맡겼다.
‘부처님 품은 나의 안식처! 왜 이제야 찾아왔는지 진작 찾을 걸….' ‘이제 나는 폭력과 마음의 괴로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에 눈물이 고였다. 7시 점등식을 눈물과 환희의 물결로 끝내고 내일 부처님오신날 봉축법회에 참석할 것을 약속했다.
집으로 향하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이제 부처님이 지켜주실 거니까 부처님만 믿고 살자. 너희들도 이제는 아빠한테 맞지 않고 밤중에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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