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틀 넘어 사회 공공사업 공헌해야

재가연대 3% 사회 회향 ‘해피타임' 확산
불교지도자 솔선수범해 기부 유도해야


시주·보시·기부의 개념

시주(施主), 보시(布施), 기부(寄附)는 서로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지만 차이가 있다. 시주는 ‘사찰이나 스님에게 물건을 베풀어 공덕을 쌓는 일'을 뜻하며, 보시는 ‘자비심으로 남에게 재물이나 불법을 베품'을 의미한다. 즉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재물이나 불법(佛法)을 베푸는 일을 보시라 하며, 무엇을 바라거나 어떠한 조건도 붙지 않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원칙으로 한다. 기부는 ‘자선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해 돈이나 물건 따위를 대가 없이 내놓음'을 뜻한다.
결국 불교의 보시와 기부의 의미가 크게 다르지는 않으나 보시는 불교 안, 기부는 불교를 벗어나 사회에 기여하는 행위라는 차이가 있다.

불교의 틀 벗어나야

불자들은 시주·보시라는 이름으로 사찰과 스님 그리고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웃들을 위해 보살행을 펼쳐왔다. 불자들이 낸 시주금과 보시금은 사찰 재정에 도움을 주었고, 사찰에서 운영하는 복지관 운영 등에 사용되는 등 대부분 불교계 내부 또는 불교계 관련 기관 등에 쓰여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불교 집안 안에서 베풀어지는 보시에만 머물지 말고 사회적 복지·공공사업을 위한 기부 문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박광서 참여불교재가연대 전 상임대표는 불교계가 기부 문화 확산에 앞장서야 하는 이유에 대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현실화해 보면 불자들은 항상 사회와 이웃을 생각해야 한다”며 “이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난한 행상·세계의 재벌도 동참

워렌 버핏(76). 440억 달러(약 40조 8760억원)의 재산을 가진 세계 2위 갑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경제인, 세계의 파워 리더 25인 중 2위, 오마하의 현인, 월가의 양심, 황금손, 투자의 살아 있는 전설 등 수많은 수식어가 붙는 세계적인 유명인이다.
그는 지난해 6월 재산의 85%인 374억 달러를 5년간 빌앤멜린다 게이츠 재단 등 5개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밝혀 세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특히 많은 부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이름을 딴 ‘버핏 재단'을 설립할 수 있었지만, 이미 몽골, 토고, 짐바브웨 등 세계 40여 개국에 3백 여명을 파견해 질병 퇴치와 교육 사업을 하고 있는 게이츠 재단에 기부해 더 큰 찬사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이름보다 내용을 중시한 것이다. 세기의 이목을 끈 ‘아름다운 사건'으로 평가된다.
또 홍콩 영화배우 성룡은 1억 2천 8백만 달러(한화 1천 2백억원)로 추정되는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국내에서는 얼마 전 가수 김장훈 씨가 보육원과 불우 청소년들에게 9년간 매달 1천 5백만원씩 총 30억원을 기부한 것이 화제가 됐다. 그는 많은 돈을 기부하면서도 현재 전셋집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더 큰 감동을 주고 있다.
행상을 하면서 모은 전 재산을 아낌없이 장학금으로 내놓는 할머니들도 매체를 통해 알려져 사람들에게 훈훈함을 전해줬다. 최근 들어서는 클럽을 만들어 소득의 일정 부분을 기부하는 직장인, 학교동문회, 동호회 모임들도 속속 생기는 등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도 기부 문화 확산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렇듯 사회적인 성공과 큰 부를 쌓은 이들의 기부나 자신은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한 푼 두 푼 모아 사회에 회향하는 이들의 모습은 성숙한 자본주의 사회를 위한 모범을 보임과 동시에 한국사회에서 불교인들의 기부문화를 되돌아보게 한다.

사회 기부단체 현황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2006 사회통계조사'에 따르면 사회복지단체 등에 후원금을 낸 사람은 15세 이상 인구의 31.6%로 후원인구 1인당 평균 4.7회 기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남자가 34.3%로 여자(29.1%)보다 많았고,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후원인구 비율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기부금을 낸 후원경로를 살펴보면 사회복지단체가 43.3%로 가장 높고 언론기관 28.8%, 종교단체 21.3%, 기업(직장) 15.3% 순이며 대상자에게 직접 전달한 경우도 11.9%에 달한다.
국민 1인당 기부액은 1년에 7만원 정도. 이는 3년 전에 비해 20% 이상 늘어난 수치지만 기부문화가 정착된 미국 국민 1인당 기부액 620달러(약 60만원)에 비하면 미약한 수치다. 이는 정기기부에 참여하는 개인비율이 적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에서 기부 혹은 모금형태로 운영되는 단체 중 대표적인 곳으로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아름다운재단이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사랑의 열매'를 판매하는 곳으로 1998년 설립돼 얼마 전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그 기간 동안 모금액은 설립초기 213억에서 2005년 2천 147억원으로 무려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러나 외형적으로 커진 모금규모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의 기부 및 모금 형태가 지나치게 대기업에 편중돼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무성 숭실대 교수에 따르면 개인기부 총액은 2001년 268억원에서 2005년 356억원으로 32% 증가에 그친 반면, 기업에 의한 기부는 같은 기간 262억원에서 1천 450억원으로 무려 554% 증가한 것으로 드러나 단체들이 손쉬운 기업들을 상대로 기부를 유도했다는 것이다.

불교계도 점차 확산

간간히 국내외에서 큰 자연재해가 발생한 경우 불교계 각 종단과 단체, 불자들은 한 푼 두 푼 성금을 모아 전달했다. 지난해 수해로 큰 피해를 입은 강원도나 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은 스리랑카 등에 지원한 것도 기부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불교계 대표적 시민사회단체인 참여불교재가연대는 지난 2월부터 3% 사회 회향을 모토로 ‘해피타임'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자기 시간과 소득의 3%를 이웃과 나누는 것뿐만 아니라, 하루 3%의 시간을 자기 성찰을 위해 사용하자는 것이다. 재가연대는 기부운동을 소득의 3% 뿐 아니라 앞으로 결혼, 돌 등 각종 경사나 기념일 수입의 특별기부와 유산의 10%를 기부하도록 확산시켜 나간다는 방침이다.

작은 정성에서 시작해야

기부는 개인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으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몇몇 아파트 부녀회에서는 인근 백화점 및 할인마트 쇼핑백과 커피전문점의 종이컵을 수거해 모은 돈을 사회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무심코 낭비하는 것들을 작은 정성으로 모아 기부하는 훌륭한 사례다. 최근 들어 보험 가입자 사망시 보험금 수혜자를 사회단체 명의로 지정하는 ‘기부보험'이 등장해 점차 활성화 되는 추세다.
아름다운재단은 2005년 1월 국내 한 보험회사와 함께 기부보험을 출시했다. 이 회사는 현재 서울대·방송통신대·인하대 등과도 대학발전기금 기부보험 협약을 맺는 등 새로운 개념의 기부문화를 정착시키고 있다.

시주에서 보시-기부로

지금까지 시주와 보시는 대부분 사찰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 현재로선 기부 또한 사찰을 통해 사회로 회향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사찰에서 불자들이 낸 시주금과 보시금을 사회에 환원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잦다는 점이다. 이는 사찰을 통한 기부문화 정착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박광서 서강대 교수는 “과연 불교계 지도자 중 서양 종교의 일반 신도들이 내는 십일조만큼 기부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의문”이라며 “불교계 기부문화 확산이 불교의 사회성 제고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결국 불교를 중흥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불교계에서의 기부 문화 확산은 그간 문화재관람료 문제 등 실추된 불교의 이미지를 쇄신시키고, 나아가 불교 중흥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불교계 지도자들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불교계 지도자의 대부분은 스님들이다. 현재 스님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기부 문화에 대한 인식 전환이다. 이와 더불어 유산 10% 나누기 등 모범을 보이는 사례에 대해 노력을 기울여 불자들의 기부 문화 동참을 유도하고 불교계 내에서 기부 문화 확산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
불자들 또한 기존 종교 서비스를 이용하는 대가로 지불하던 시주를 넘어 사회복지와 성숙된 자본주의 사회를 위한 무주상보시로, 다시 사회적 기부로 인식전환을 통해 불교계의 기부 문화 발전과 정착을 위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인터뷰-사)밝은세상 정웅기 사무처장>

기로에 선 불교계 기부문화

요즘 들어 사찰 재정난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크게 높아졌다. 이 상태로 가다간 문 닫을 사찰이 한 두 곳이 아니라는 걱정도 심심찮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러한 현상은 지난 10여년간 사찰 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하였음에도 사찰의 재생산구조, 불자의식의 변화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데 따른 것이다. 
문화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사찰 수는 1996년 11,561개에서 2002년 22,072개로 8년 사이 두 배로 늘었다. 1960년(1,581곳)에 비하면 가히 폭발적이라 할 수 있다. 종단이 난립하면서 사격을 갖추지 않은 절들이 크게 늘었고, 조계종과 같은 전통 종단 내에서 사설사암이 급증했다. 반면 사찰운영 방식은 20,30년 전과 크게 차이가 없고, 경영자인 주지나, 불자들의 의식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의 2005년 설문조사(한국교회 미래리포트)에 따르면 불자들의 월 평균 보시금은 31,400원으로, 개신교 125,600원, 가톨릭 59,700원에 비해 크게 적었다. 이는 직업 및 소득분포와도 관련이 있지만, 앞서 지적했듯이 사찰운영 전반의 구조가 현대사회에 조응하지 못한데 더 깊은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한다. 
재정적으로 사찰일반이 처한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규모의 열악함이다. 관람료사찰, 교구본사와 같이 규모가 큰 전통사찰, 대형 도심포교당을 제외하고 80% 이상의 사찰들은 유지 자체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재정적 어려움에 허덕이고 있다. 대형 사찰 쏠림 현상도 심화되고 있어, 사찰 양극화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둘째, 수입구조의 불안정성이다. 한국의 대부분 사찰들은 여전히 초파일이나 백중과 같은 특정기간의 수입이나, 부정기적인 재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재정규모가 작은데다 그마저 부정기적이니, 대부분의 절이 재정조달을 위해 법당신축, 봉불과 같이 큰 돈 되는 불사에 매달리게 된다. 
이것이 역으로 신도들의 기부문화 개선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들보 하나에 O천만원, 서까래 하나에 O백만원 하는 불사를 보면서, 평범한 신도들은 더더욱 정기 기부를 외면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먼저 사찰 주지스님의 발상의 전환되어야 한다. 살림을 사는 입장에서 ‘큰 돈 정기적으로 내는 사람이 많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봉급쟁이는 물론 영세 상공인들도 대개 월단위로 살림을 사는 까닭에, 월정회비나 후원금을 내는 사람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야말로 사찰재정 증대, 안정화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이와 같이 수입정례화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기존 사찰운영구조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직장인들이나 학생, 또는 가족단위의 참여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이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서는 음력 재일 위주의 신행문화도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사찰의 지역사회 공헌도를 늘리지 않으면 신도기부 확대도 어려울 것이다. 연간 예산이 아무리 적게 잡아도 50억은 될 서울의 한 대형포교당에서 한해 이웃을 위해 사용한 예산이 2천여만원, 그것도 거의가 협찬 받은 현물기부였던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사찰 스스로 1%도 남을 위해 쓰지 않으면서, 신도들에게 보시를 권하는 아이러니는 더이상 통용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투명한 공개도 사회변화에 발맞추어 꼭 고려해야 할 항목이다. 2004년 KDI 설문조사에서  ‘헌금(보시금) 사용내역에 대한 결과보고를 해당기관으로부터 받으셨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불교인들의 24.7%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반면 개신교의 경우 60.2%, 가톨릭은 56.4%가 헌금사용내역을 공개 받았다고 답했다. 불자들이 기부를 안 한다고 아우성만 할 것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재정공개와 투명화 장치는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시대다. 
원인도 종합적이기에 대책도 종합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들이 맞물리지 않는다면, 불자들의 기부문화 개선도, 사찰의 재정 안정화도 계속 요원한 일로 남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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