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과 함께 잊혀지는 불교공부
졸업 아닌 입학이라 생각해
삶속에서 기억하고 사색하길 

전임강사로 몸담고 있는 불광불교대학의 졸업식 축사가 올해도 내 차례가 됐다. 축사는 몇 번 해봤지만 늘 고민이다. 졸업식에 어울리는 말은 앞서 다른 분의 축사에서 이미 나왔을 테고, 길게 하면 아무도 듣지 않을 테고, 강의가 아니니 뭘 진지하게 설명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윗옷 안주머니에서 착착 접힌 A4용지를 꺼내어 졸업생이나 축하하러 온 가족과 눈 한 번 맞추지 않고서 거기에 적힌 긴 연설문을 쭉 읽어 내려가는 건 더 싫다.

어쩌면 이런 고민에 공감하는 분들도 많으리라. 그래서 대부분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냥 즉흥적으로 말 몇 마디 하겠다는 심정으로 연단으로 나아갈 것이다. 하지만 불교대학 졸업축사는 매우 의미 있는 자리다. 왜냐하면 인생의 어느 시기에 자발적으로 시작한 학업을 마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을 진심으로 따뜻하게 격려해줘야 한다. 그뿐인가. 졸업을 축하하려고 가족들이 모인다. 이들 중에는 절에 처음 와본 사람들도 있을 테고, ‘스님’이란 존재를 처음으로 대면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게다가 축하하는 자리이니 마음도 훈훈해 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불교와 연을 맺는 소중한 자리가 불교대학 졸업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불교대학 졸업축사는 졸업생과 가족들을 염두에 두고서 잘 준비해야 한다. 그들에게 어렵고 모호하게 들릴 수 있는 법문보다는 생활에 밀착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좋다. 그것도 ‘아주 짧게!’. 그리고 정중하고 다정하게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분명 그 가족들 중에는 스님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직접 듣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사실 불교계에서 말투가 상냥하지 않아서 그리고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려고 일부러 간섭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대하다 오히려 불친절하고 쌀쌀맞다는 오해를 사는 경우도 종종 있지 않던가. 불교대학 졸업식에서는 이걸 특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나는 졸업축사를 어떻게 준비했을까. 다행스럽게도 2015년 5월에 미국 뉴욕예술대학 졸업식에서 할리우드 명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아주 인상적인 축사를 했다는 뉴스를 접했기에 그걸 좀 빌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지. “졸업생 여러분, 잘 해내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은 이제 망했습니다. 의과대학 졸업이라면 의사가 되었을 테고, 로스쿨이라면 또 금방 취직했을 텐데요, 그게 아니라면 어찌 됐거나 변호사 자격증이라도 갖게 되었을 텐데, 여러분은 이제 오디션 보러 뛰어다녀야 할 고된 시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로버트 드니로의 축사로 말문을 열면서 “불교대학 졸업생 여러분들도 이젠 힘든 날이 시작됐습니다. 불교대학을 다니는 동안 강의실과 법당에서는 가슴에 와 닿던 불교이야기들이 졸업과 동시에 까맣게 잊힐 수도 있습니다. ‘내가 뭘 공부한 거지?’ 회의가 들겠지요. 가족들은 이렇게도 말할 것입니다. ‘불교대학을 다닌 사람이 왜 그래?’, ‘어째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어?’….

하지만 이제부터 정작 불교공부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글자로 만났던 부처님 말씀을 삶속에서 살려보는 일, 기억이 나지 않으면 기억하려고 애를 쓰고, 부처님 말씀과 자꾸 현실이 다르게 다가오면 진지하게 의심하고 거듭 사색해보는 일, 이제 여러분은 진짜 불교공부가 시작됐습니다. 그러니 이 자리는 졸업식이 아니라 불교대학 입학식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몇 분의 가슴에 가 닿았을지는 자신할 수 없다. 하지만 불교대학 졸업축사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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