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간지옥 떨어진 부친, 경전 이름 적은 공덕으로 구해

 

지옥중생이 어리둥절 하자 64불이, ‘우리는 전단보산(?檀寶山)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무간지옥에 있는 오룡의 아들 유룡이 쓴 〈법화경〉 8권의 제목의 공덕으로 왔다’라고 하셨다. 나는 네가 〈법화경〉 8권의 제목을 쓴 공덕으로 무간지옥에서 벗어나고 나머지 모든 죄인들도 다 나의 권속이 되어 도리천으로 가게 되었다. 가는 길에 〈법화경〉 서사공덕을 네게 알리는 것이다.

유룡도 더 이상 황제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궁궐에 들어가 〈묘법연화경〉 제목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묘법연화경〉 권제일(卷第一), 〈묘법연화경〉 권제이, 〈묘법연화경〉 권제삼…… 〈묘법연화경〉 권제팔. 이렇게 해서 모두 64자를 써놓고 집에 돌아온 유룡은 가족들에게 울면서 한탄하였습니다.

4세기말 중국 동진의 황제 안제는 구마라집이 번역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28품을 서사공양하고 싶어서 천하의 명필이라는 오룡(烏龍)에게 특별히 서사토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오룡은 도교를 신봉하는 사람인지라 불교를 아주 싫어하였습니다. 그는 황제의 명까지 거역하며 아들 유룡(遺龍)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하였습니다.

“너는 나보다도 훌륭한 글씨를 쓴다. 모두 선대의 재능을 받은 까닭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정녕 네가 나와 선대의 조상님들께 효도하는 길은 불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특히 〈법화경〉을 써서는 안 된다. 우리의 스승 노자는 하늘의 옥황상제시다. 하늘에는 두 해가 없거늘 〈법화경〉 ‘비유품’에서는 ‘삼계는 다 나의 소유이며 그 가운데 중생은 다 나의 아들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옥황상제께서는 석가여래의 아들이란 말이냐. 이것은 망언이다. 만약 나의 유언을 어기고 불경을 쓴다면 내가 악령이 되어 네 목숨을 끊어 버리겠다.”

사실 그것은 유언이 아니라 부처님과 〈법화경〉을 비방한 말이었습니다. 그런 후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오룡은 혀가 여덟 조각으로 찢어지고, 아홉 구멍에서 피가 나고, 머리가 일곱 조각으로 쪼개져서 고통스럽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 후 역시 당대 제일의 명필이 된 그의 아들 또한 아버지의 유언대로 불경을 쓰지 않게 되었는데, 어느 날 황제가 다시 〈법화경〉을 서사하라고 하명하였습니다. 유룡은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황제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였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죽음을 불사하며 불경을 쓰지 마라던 아버지의 유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황제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황제 폐하. 어떤 일이 있어도 저는 아버님의 유언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

“자식이 어찌 그 부모의 유언을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그렇게 두 번씩이나 황제의 명을 거절했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행위였습니다. 그 때 또 다시 세 번째 황제의 칙서가 내려졌습니다.

황제는 다음과 같은 글로 간곡히 유룡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황제로서는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지요. 당시 상황으로 보아 누구든 황제의 명을 한번이라도 거역하면 죽음을 면치 못하던 시절인데도 불구하고 안제는 부처님 법을 따르는 불도였기 때문이었지요.

“네가 부친의 유언 때문에 짐을 거역한 것은 이해한다. 모름지기 천하의 백성은 모두 짐의 아들이며 너의 부친도 나의 아들이다. 유룡은 듣거라. 짐의 마지막 부탁이다. 네가 정녕 〈법화경〉의 단 한 구절도 쓰기 싫다면 다만 제목만을 써라. 만약 이번에도 나의 청을 거역한다면 비록 불사(佛事)를 짓는 마당이나 네 목숨을 쳐서 황령(皇令)을 세우리라.”

유룡도 더 이상 황제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궁궐에 들어가 〈묘법연화경〉 제목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묘법연화경〉 권제일(卷第一), 〈묘법연화경〉 권제이, 〈묘법연화경〉 권제삼…… 〈묘법연화경〉 권제팔. 이렇게 해서 모두 64자를 써놓고 집에 돌아온 유룡은 가족들에게 울면서 한탄하였습니다.

“내가 황명을 거역할 길이 없어 아버님의 유언을 어기고 불경을 썼으니 이제 나는 만고의 불효자가 되었다. 이에 천신과 지신도 노하시리라. 장차 이 일을 어이할꼬.”

그는 너무 절망한 나머지 그대로 혼절하여 그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큰 광명이 나타나더니 한 천인이 뜰 앞에 섰는데 무수한 권속이 뒤따랐으며, 허공에는 64 부처님들이 서 계셨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지요. 유룡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합장하고 물었습니다.

“어느 하늘에서 오신 분입니까?”

“나는 너의 아버지 오룡이다.”

그제야 유룡은 그 천인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틀림없는 자신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너무도 반가운 나머지 아버지의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아니 그토록 불법을 비방하시던 아버님께서 어찌하여 여러 부처님들과 함께 계십니까?”

“나는 불법을 비방한 죄로 혀가 여덟 조각으로 찢어지고 아홉 구멍에서 피를 흘리고, 두파작칠분(頭破作七分), 곧 머리가 일곱 조각으로 쪼개지고서 무간지옥에 떨어져 만사만생(萬死萬生)의 고통을 받았다. 그런데 홀연히 ‘묘’ 자가 무간지옥 위로 날아오더니 32상을 구족하신 부처님으로 변하셨다. 부처님께서는 가령 선을 끊은 중생이 법계에 가득하여도 한번 〈법화경〉을 들으면 누구든 성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또 〈묘〉 자 속에서 큰 비를 내려 무간지옥의 불꽃을 껐는데, 다시 ‘법’ 자가 날아오며 먼저와 같았다. 이어서 ‘연’ 자ㆍ‘화’ 자ㆍ‘경’ 자ㆍ‘권’ 자ㆍ‘제’ 자ㆍ‘일’ 자…… 이렇게 해서 64자가 날아와 64불이 되셨으며, 이어서 하늘에서는 감로가 내렸다. 지옥중생이 어리둥절 하자 64불이, ‘우리는 전단보산(檀寶山)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무간지옥에 있는 오룡의 아들 유룡이 쓴 〈법화경〉 8권의 제목의 공덕으로 왔다’라고 하셨다. 나는 네가 〈법화경〉 8권의 제목을 쓴 공덕으로 무간지옥에서 벗어나고 나머지 모든 죄인들도 다 나의 권속이 되어 도리천으로 가게 되었다. 가는 길에 〈법화경〉 서사공덕을 네게 알리는 것이다.”

“아!”

유룡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부친께 절하고 예순 넷의 부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부처님들께서는 그동안의 저의 무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앞으로의 생은 오로지 부처님 법을 따르는 참다운 불제자로 살겠습니다.”

그러자 64불 중의 한 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따로 주인이 없다. 네가 우리의 단월(檀越=施主)이니라. 이제부터 영원히 너를 수호하리니 너는 해태하지 말라. 너의 임종 시에 와서 도솔천 내원궁으로 인도하리라.”

유룡이 감격에 겨워 화답하였습니다.

“두 번 다시는 거룩한 불경 외의 다른 문자는 쓰지 않을 것입니다.”

“갸륵하구나. 유룡아, 부디 지금의 마음을 영원히 잊지 않도록 하여라!”

그렇게 여러 부처님들의 찬탄을 듣는 순간 유룡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날이 밝기 무섭게 황급히 궁으로 달려갔습니다. 당당하게 황제 앞에 섰지요. 죽지 못해 글을 쓰던 어제와는 완전히 딴판인 얼굴을 보고 황제도 놀랄 수밖에요.

“도대체 무슨 일이더냐?”

“황제 폐하, 제가 지난밤에 〈묘법연화경〉의 제목만 쓴 것으로도 돌아가신 아버님 보기가 너무나 부끄러워 실신을 하였는데……”

유룡은 꿈 얘기를 황제에게 소상히 전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황제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허공을 향해 합장하며 말했습니다.

“이 불사는 이미 성취되었다!”

“이 불사는 이미 성취되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후대까지 전하게 생생히 기록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 후 유룡이 황제 곁에서 평생 〈법화경〉 사경을 하는 데만 전념한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겠지요. 오늘날에도 처음의 오룡이나 유룡처럼 오직 자신들이 읽는 경만 세상의 최고라고 여기며 불경을 외전이라고 하여 비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도교의 신자였던 그들 부자가 노자를 하늘의 황제 옥황상제라고 여기면서 살았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당나라 상공(祥公)이 쓴 〈법화경〉 전기에 나오는 이 유룡과 오룡 부자의 이야기야말로 가히 〈법화경〉이 이 세상에서 어떤 의미를 가진 경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제목만을 쓴 것만으로도 아버지는 물론, 그 가까이의 중생들을 모두 제도했으니까요. 그렇다면 도대체 〈법화경〉엔 어떤 부처님 말씀이 새겨져 있는지 반드시 알아보아야겠습니다. 다시 한 해가 저물어가는 긴긴 겨울, 두툼한 〈법화경〉 한 권을 들고 눈 쌓인 산사를 찾아보시는 것은 어떨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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