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특한 재주꾼, 잔꾀 많은 ‘잔나비’

병신년 원숭이 이야기
원숭이는 12띠 중 9번째로, 하루 24시간 중에는 오후 3시부터 오후 5시에 해당한다. 방위는 서남서(西南西), 계절은 7월 입추에서 8월 백로 전, 오행 중에는 금(金), 음양 중에는 양(陽)이다. 서양별자리로는 사자좌에 해당하고 달로는 7월이다. 7월은 만물의 성장이 모두 이뤄져 여물기를 기다리는 시기인데 이처럼 “원숭이는 교만하게 굴지 않고 영특하게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지닌 동물이며, 참고 기다려서 뜻을 편다”고 한다. 또 원숭이는 자식에 대한 정이 깊다. 중국 고사에 ‘단장(斷腸)의 슬픔’이란 말이 있는데 “새끼 잃은 슬픔을 못이겨 자결한 어미원숭이의 창자가 여러 조각으로 끊겨있더라”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올해는 병신년(丙申年) 붉은 원숭이의 해다. ‘병’이 상징하는 색상이 붉은 색이고, ‘신’이 상징하는 동물이 원숭이다. 이 때문에 붉은 원숭이 해로 지칭하게 됐다. ‘붉은’ 원숭이 해와 ‘빨간’ 원숭이의 엉덩이에서 나타나는 붉은 색은 예로부터 악귀를 쫓아내고 건강·부귀·영화 등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 김유신 묘 원숭이신상 탁본 <사진제공=국립민속박물관>

다른 말 ‘잔나비’
우리는 흔히 이 동물을 가리킬 때 ‘원숭이’라고 한다. 하지만 띠를 부를 때는 ‘잔나비’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옛 문헌을 살펴보면 17세기까지만 해도 ‘원숭이’라는 단어는 쓰이지 않았다. 원숭이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5세기 문헌인 〈훈민정음 해례본(1446)〉에 나타난 ‘납(猿)’이라는 단어다. 16세기 한문 학습서인 〈훈몽자회〉에도 ‘원숭이 원(猿)’에 대한 훈(訓)을 ‘납’으로 기록해 이 단어가 오래전부터 쓰이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단어는 16세기까지 쓰이다가 17세기 이후 문헌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후 ‘잰납’이라는 단어가 ‘납’을 대신한다. ‘잰’의 의미는 불분명하나 빠른 말을 뜻하는 잰말, 빠른 배를 뜻하는 잰배 등과 같이 원숭이의 빠른 행동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라 유추하고 있다. 그러다 18세기 문헌에 비로소 ‘잰납이’, ‘잰나비’가 쓰인다. 이 단어가 지금의 ‘잔나비’로 변해 쓰이고 있다. 하지만 요즘은 ‘잔나비’란 말에서 원숭이를 연상해내기가 어려워 거의 쓰지 않고 있다. 한편 원숭이는 18세기에 ‘원성이(猿猩-)’라는 단어가 ‘원승이’를 거쳐 지금의 ‘원숭이’가 된 것이다.

‘길상’과 ‘욕심’의 상징
원숭이는 인간과 가장 닮은 영장동물로 만능 재주꾼이다. 자식과 부부지간의 사랑 또한 깊어 애정이 섬세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동양에서는 원숭이가 사기(邪氣)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특히 중국에서는 원숭이 ‘후(猴)’자와 제후 ‘후(侯)’자의 발음이 같아서 성공의 의미가 덧붙는다. 또 건강, 성공, 수호(보호)의 좋은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도교에서는 원숭이가 무릉도원에 사는 길상의 상징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전라남도에서는 새해 첫 상신일(上申日)을 좋은 날로 여겨 음주와 가무, 육식을 즐기는 풍습이 있다. 이날은 ‘사람날’이라하여 사람을 중히 여긴다는 의미에서 몸에 상처 날 수 있는 칼질과 같은 위험한 일을 금한다.

반면 원숭이는 잔꾀와 욕심이 많으며 성급하고 어리석다는 부정적 이미지도 갖고 있다. ‘게와 원숭이의 떡다툼’이란 이야기에서 원숭이는 게와 함께 발견한 떡을 혼자 차지하려다 떡도 잃고 상처도 입는다. 사자성어 ‘조삼모사(朝三暮四)’는 원숭이의 성급하고 어리석은 모습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또 제주도에서는 ‘申’일에 베어낸 목재는 좀이 많이 슬어 벌목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략과 재주꾼 대명사
원숭이는 동물 가운데 가장 영리하고 재주 있는 동물로 손꼽힌다. 그래서인지 원숭이해에 태어난 사람은 총명하고 재주가 많다고 한다. 옛이야기 ‘원숭이의 재판’에서는 이리와 여우에게 고깃덩어리를 공평하게 양분해준다며 나누는 척 하다가 자기가 다 먹어버리는 꾀돌이로 등장한다. 또 원숭이는 재주꾼으로도 인식되어 ‘양주별산대놀이’와 ‘송파산대놀이’에 등장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두 놀이에서 원숭이는 사람들과 행동으로 의사소통을 시도하며, 약삭빠른 사람·현실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여성을 유혹하는 색한으로 등장한다. 장천1호분의 고구려 벽화(4~5세기)에는 고분의 주인이 손님들과 함께 재롱부리는 원숭이를 감상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들 얻기를 바라며 100명의 어린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그린 ‘백동자도(白童子圖)’와 중국 도상에 조선시대 풍속을 담은 ‘태평성시도’에도 원숭이가 재주부리는 장면이 나온다. 구비전승(口碑傳承)으로 원숭이가 우리 민족에게 비친 대체적인 모습은 꾀 많고, 재주 있고, 흉내 잘 내는 장난꾸러기다. 또 도자기나 회화에서는 모성애(母性愛)를 강조하고, 스님을 보좌하는 모습, 천도복숭아를 들고 있는 장수의 상징으로 많이 표현되고 있다.

불교 설화에 단골
불교에서 원숭이는 정법 수호와 스님의 보조자 역할을 한다. 〈서유기〉의 법관을 쓴 손오공은 관음보살의 법력에 의해 방자함이 진압되어 개과천선한다. 서역 천축국에 불법을 구하러 가는 삼장법사 현장(玄奘)을 도와 5000여 권의 경전을 구해 구도(求道)의 목적을 달성한다. 이와 관련한 벽화가 전남 여수 흥국사 대웅전 뒷면에 있다.

원숭이와 관련된 불교 설화로는 ‘용원설화’가 있다. 익히 아는 ‘별주부전(구토설화)’은 〈자타카(본생경)〉의 불전설화인 용원설화가 모태이다. 설화는 “바닷 속 용왕의 왕비가 잉태하자 원숭이 염통을 구하기 위해 육지로 나왔다. 원숭이를 만나자 먹을 열매가 많은 곳으로 안내하겠다며 원숭이를 업고 물속으로 향한다. 가는 도중 용왕은 원숭이에게 사실을 말하게 되고, 원숭이는 염통을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왔다며 가지러 가자고 한다. 용왕은 그 말을 믿고 육지에 원숭이를 내려주었고, 원숭이는 나무 위로 올라가 용왕에게 조소를 날렸다. 여기서 용왕은 파순이고 원숭이는 부처님이다”는 내용이다.

〈근본설일체유부비야약사(根本說一切有部毘耶藥事)〉에는 ‘원숭이와 선인’이란 설화가 실려 있다. “포악한 두목이었던 원숭이가 무리에서 쫓겨나 연각(緣覺, 스스로 깨달은 자)의 집에 살며 연각들과 같이 생활했다. 연각들이 무여열반에 들어가자 원숭이는 유해들 속에서 그리운 사람들을 찾으며 슬퍼했다. 하늘의 신들은 원숭이가 연각의 유해를 먹어버릴까 쫓아내고 입구를 돌로 막아버렸다. 쫓겨난 원숭이는 산중을 헤매다 선인의 목소리를 듣고 고행하는 선인들과 같이 생활한다. 얼마 지나 원숭이는 선인들이 연각의 수행법을 따르길 바라며 결가부좌를 흉내 내면서 선인들의 고행을 방해했다. 선인들의 스승은 원숭이가 도를 닦는 신선을 본 것이 틀림없다 여겨 결가부좌를 하고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연각의 깨우침을 얻었다. 그 후부터 선인들은 이 원숭이를 존경했고 원숭이가 죽자 여러 나라에서 갖가지 향을 구해 와 장작을 쌓아 화장했다고 한다”는 내용이다.

〈육도집경(六度集經)〉에는 ‘원숭이의 악룡퇴치’가 나온다. “석존께서 사위국의 기원정사에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설법을 하고 계셨을 때의 일이다. 훌륭한 젊은 왕이 있었다. 이웃 나라의 포악한 왕이 나라를 뺏으려 하는 과정에서 희생을 줄이기 위해 왕좌를 내려놓기로 한 왕은 왕비와 함께 산림으로 숨어버렸다. 바다에 살던 나쁜 용 한 마리는 왕이 자릴 비운 틈을 타 왕비를 훔쳐 달아났다. 왕은 왕비를 찾아다니다가 숲 속의 큰 원숭이 한 마리를 만난다. 원숭이는 자신에게 원숭이 왕 자리를 되찾아주면 함께 왕비를 찾아주겠다고 약속했다. 젊은 왕은 원숭이에게 왕 자리를 되찾아주고 원숭이 무리들과 함께 왕비를 찾으러 나섰다. 용의 거처로 향하려면 바다를 건너야 했는데 방법이 막막했다. 이때 하늘의 제석이 작은 원숭이로 둔갑하여 조언한다. 용을 해치우는 과정에서도 이 작은 원숭이가 큰 역할을 한다. 마침내 왕은 왕비를 되찾고, 포악한 왕이 죽어 자신의 원래 나라로 돌아가 왕이 된다. 여기서 젊은 왕은 석존, 왕비는 아쇼다라, 포악한 왕은 데바닷타이다”는 내용이다.

이 외에도 〈아함경〉에는 물에 비친 달을 탐낸 원숭이들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서로 손을 잡고 달을 꺼내려고 했다는 이야기, 〈삼국유사〉에는 이차돈의 순교에 대해 설명하며 “곧은 나무가 부러지니 원숭이들이 떼 지어 울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일본 동조궁을 비롯한 곳곳에서 눈·귀·입을 가린 세 마리의 원숭이상을 종종 볼 수 있다. 악한 것을 보지 말고, 듣지 말고, 언급 말란 뜻이며 항상 신중하라는 의미이다. 올 한해는 우리 모두 원숭이처럼 슬기롭고 영민하게 재주를 널리 펴되, 욕심을 버리고 신중해지길 기대해 본다.

▲ 백동자도 속 원숭이 <사진제공=국립민속박물관>

병신년 불교 소사
흥왕사 창건, 대장경 개판
396년 - 백족화상, 고구려의 요동에서 교화.
576년 - 안흥법사, 중국에서 구법하고 돌아와 능가, 승만경 및 불사리를 왕에게 바침〈삼국사기〉.
696년 - 7월22일 원측 스님 입적.
756년 - 도증 스님 출생.
816년 - 승려 26인, 일본에 건너가 각사에서 불법을 폄. 원랑대통 출생.
936년 - 진철이엄 스님 입적.
1056년 - 흥왕사 창건.
1236년 - 고려 대장경 개판(재조대장경). 대장도감 설치.
1416년 - 원주 각림사에 중수를 지시. 승인에게 도첩을 발급. 사전에 의하여 거승의 수 확정.
1536년 - 흥천사종을 숭례문에, 원각사종을 흥인문에 각각 옮김.
1896년 - 묵담 스님 출생.
1956년 - 동국대 대학원 제 1회 석사학위 수여. 대한불교 법화종 창립. 조계종 경북종무원, 고려 초기 청동제 석가여래선정부동상 봉안. 조계종 한국불교정화 30년 계획 수립 발표. 대각회 창립. 불교사학회 장외잡록 간행. 대한불교달마회 발기. 금수만일회 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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