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 동침한 본처ㆍ후처, 그들은 ‘도반’

▲ '춘희막이' 스틸 컷.<사진제공=엣나인 필름>

1960년대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본처가 ‘대(代)’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하면, 대를 잇기 위해 후처, 일명 ‘씨받이’를 들였다고 한다. ‘씨받이’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건 임권택 감독이 1986년 제작(1987년 개봉)한 영화 ‘씨받이’의 영향이 컸다.

‘씨받이’의 임무가 끝난 여인은 본가로 다시 돌려보냈기 때문에 본처와 후처가 함께 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난 9월 말, 이 희귀한 사례의 주인공들의 일상을 스크린으로 옮긴 다큐영화 ‘춘희막이’가 개봉됐다. 이 다큐영화의 주인공은 아흔살의 최막이 ‘할매’(춘희 할머니가 막이 할머니를 부르는 호칭)와 일흔의 김춘희 ‘어마이’(막이 할머니가 춘희 할머니를 부르는 호칭)다.

이 영화를 제작한 박혁지 감독은 2009년 TV방송사에서 휴먼다큐멘터리 2부작을 제작하면서 두 할머니를 만났다. 이후 2011년 12월부터 2년에 걸쳐 180시간 분량을 촬영했고, 4년 만에 완성했다.

경북 영덕 소재 어느 시골마을에서 46년 째 같이 살고 있는 두 할머니의 일상을 따라 가보자. 본처인 최막이 할머니는 두 아들과 딸 셋을 낳아 가문의 대를 이었다. 하지만 1959년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사라호로 인해 아들 하나를 잃고, 홍역으로 남은 아들 하나도 떠나보내야했다. 당시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막이 할머니는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24살의 처자 춘희를 집으로 들인다. 춘희 어마이는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아 막이 할머니가 그토록 바라던 대를 이었다.

아들을 낳은 후 여인은 본가로 돌려보내지만, 막이 할머니는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춘희 어마이가 안쓰러워 차마 그리할 수 없었다. 막이 할머니는 “아들만 낳으면 보내버리려고 했지. 그럴 수가 없더라. 내 양심에….”라고 가슴에 묻어뒀던 말을 내뱉었다. 차마 춘희 어마이를 매몰차게 내칠 수가 없었던 것. 불자인 막이 할머니가 말한 그 ‘양심’, 불교의 기본 사상인 ‘자비(慈悲)’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할아버지 생전부터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 46년 간 함께 살면서 막이 할머니는 사실상 춘희 어마이의 보호자 역할을 해오고 있다. 춘희 어마이의 행동 하나 하나가 맘에 들지 않아 혼자 투덜대다가 결국 춘희 어마이 귀에 대고 잔소리를 한다. 춘희 어마이는 듣는 둥 마는 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

그런 춘희 어마이를 위하는 막이 할머니의 진심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불교를 믿는 막이 할매는 부처님오신날 즈음, 춘희 어마이를 데리고 집 인근의 사찰에 간다. 합장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아기부처님에게 절 세 번, 관불 세 번을 하라고 시킨다. 그리고는 산신각으로 가서 자식들과 ‘춘희’ 어마이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그리고 막이 할머니는 자신이 떠난 뒤에도 춘희 어마이가 혼자서도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폐와 동전을 놓고 “이것은 만 원, 이것은 오천 원, 이것은 천 원이다. 따라해 봐라”고 하지만, 춘희 어마이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런 춘희 어마이를 보는 막이 할머니는 답답함이 밀려와 속이 탄다.

사사건건 잔소리를 하는 막이 할머니이지만, 자신이 세상을 떠나기 전 춘희 어마이를 요양원에 보내기 위해 힘들게 농사 지은 깨, 고추 등을 팔아 돈을 모을 정도로 춘희 어마이에 대한 정이 각별하다. 춘희 어마이 또한 막이 할머니가 없으면 단 하루도 못 살 정도로 막이 할머니에게 의지하고 산다. 자식들이 있음에도 두 여인은 서로 기대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듯 보였다.

기구한 운명의 두 여인이 살아 온 46년 간의 희노애락을 한 편의 영화에 다 담을 수는 없다. 하지만 두 노파의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건 서로를 의지하고 산다는 것. 할아버지가 떠난 뒤 본처와 후처는 때론 모녀처럼, 때론 자매처럼, 때론 친구처럼 살아가는 반려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은 두 할머니가 한집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는 ‘얄궂다’(‘이상야릇하다’의 경북지방 사투리)고 표현하지만 “혹시 이들이 전생에 부부는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은 깊은 정을 나누고 있다.

우리는 흔히 친한 친구를 다른 사람에게는 ‘절친’ 또는 ‘지인’이라고 소개한다. ‘벗’, ‘친구’를 불교에서는 ‘도반(道伴)’이라고 한다. 도반의 사전적 의미는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으로서, 도(道)로서 사귄 친구’다. 때로는 ‘친한 친구’, ‘좋은 벗’ 등을 표현할 때 사용하기도 하지만, 좀 더 깊은 정을 나누며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벗을 ‘도반’이라고 표현한다.

늦가을의 깊이만큼 인생이 깊어졌을 때, 허물마저도 감싸줄 수 있는 그런 도반 한 명쯤 없다면 지나온 삶이 후회되지 않을까. 마음을 열자. 내가 밑지더라도 양보하자.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나누며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도반을 만들자. 그리고 남에게 그런 도반이 되자. ‘세상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고 하지만, 재물은 없어도 풍족한 마음은 갖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쓸쓸한 인생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