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렁이 변신한 마귀, 독송 공덕으로 물리쳐

   

不貪世間心意直 有正億念有福德
忘失句偈令通利 不久當詣道場中
得大菩提轉法輪 是故見者如敬佛
南無妙法蓮華經 靈山會上佛菩薩

낭랑한 어머니의 독송소리가 들리는 초여름 새벽, 한 젊은이가 길 떠날 차비를 하고 나섰습니다. 홀로 계신 어머니를 봉양하는 젊은이는 누구보다도 효심이 지극했습니다. 과거를 준비하는 유생으로 불경을 응당 멀리해야 했지만, 틈만 나면 〈법화경〉을 독송하는 어머니를 따라 자신도 늘 〈법화경〉을 독송하였습니다.

“어머님, 다녀오겠습니다. 그동안 건강에 유의하십시오.”

“내 걱정 말고 조심해서 다녀오너라. 그리고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여자를 조심해라.”

“네, 명심해서 다녀오겠습니다.”

그런데 다시 어머니가 젊은이를 불러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법화경〉 한 권을 주며 말했습니다.

“항상 이 〈법화경〉을 잘 간직하도록 해라. 그러면 아무리 악독한 귀신도 너를 해하지 못할 것이다.”

“예?”

“이유는 묻지 말고 이 어미가 시키는 대로 하거라.”

봇짐에 〈법화경〉을 곱게 넣은 젊은이는 늙은 어머님이 계신 방문을 되돌아보며 사립문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는 어머님 이야기가 왠지 불길했습니다. 해가 떠오르자 날씨가 더웠습니다. 젊은이는 강가로 내려가 저고리를 벗고 얼굴을 씻었습니다.

그러자 기분이 상쾌하면서 시장기가 들었습니다. 젊은이는 물가에 앉아 주먹밥을 먹었습니다. 길 떠날 준비와 혼자 계신 어머님을 위해 집안일을 살피느라 간밤에 잠을 설친 젊은이는 포만감과 함께 견딜 수 없는 졸음이 몰려왔습니다.

얼마쯤 잤을까?

젊은이는 문득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살폈습니다. 주위는 여전히 아무도 없이 고요했습니다.

“분명 꿈을 꾸었는데… 이상하다. 전혀 기억이 안 나다니?”

‘얘야, 부디 여자를 조심해라.’그렇게 신신 당부하시던 어머님 말씀을 떠올리면서 젊은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법화경〉 한 구절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러자 정신이 맑아졌습니다.

“아, 여자가 있었던가?”

젊은이는 꿈속을 더듬으며 봇짐을 어깨에 메는 순간 그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렇지, 봇짐 속을 보자.”

젊은이는 짐을 풀었습니다. 순간 젊은이는 화들짝 뒤로 물러서고 말았습니다.

한 마리의 큰 구렁이가 웅크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젊은이가 큰 돌멩이를 들어 구렁이를 향해 던지려하자 구렁이는 스르르 몸을 풀어 숲속으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젊은이는 돌을 든 채 물끄러미 구렁이를 쳐다보며 생각했습니다.

“그래, 저 구렁이가 사공에게 쫓기던 여인이 틀림없어.”

젊은이는 비로소 꿈속의 일을 모두 기억해냈습니다.

스승의 심부름으로 나루터에 도착한 한 동자승이 사공에게 배를 태워 달라고 부탁하고 있었습니다.

“뭐 강을 건너게 해달라고? 꼬마 상좌가 돈이 어디서 나서 배를 타려고 해. 스님이라고 배를 거저 탈 생각은 아예 말아야 한다.”

“네, 뱃삯은 있습니다. 태워 주세요.”

“어디 그럼 삯 먼저 내놔 봐.”

동자승은 엽전 꾸러미를 꺼냈습니다.

돈 꾸러미를 본 사공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습니다. 너무 많은 돈이었습니다.

“너 그 돈 어디서 난 거냐? 바른대로 이르지 않으면 관가에 고할 것이다.”

“이 돈은 보은사를 중창할 시줏돈예요. 스님께서 강 건너 대장간에 갖다 주라고 하셔서 가는 길입니다.”
동자승은 또렷또렷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래, 그럼 나루를 건네주지. 어서 타거라.”

동자승을 태운 배가 강심으로 밀려나갈 무렵 한 여인이 헐레벌떡 뛰어오며 나룻배를 불렀습니다.

“여보세요, 잠깐만 기다려요.”

“안돼요. 배를 띄웠으니 다음 차례를 기다리시오.”

“잠깐만 사공님, 저 여인을 태우고 함께 가시지요?”

동자승이 사공에게 청했으나 사공은 다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여기 탄 손님은 스님이라 외간 여자와는 함께 타지를 않소.”

“아니 내가 언제 그랬소. 기왕이면 함께 가는 것이 사공에게도 이롭지 않소. 어서 배를 기슭에 대세요.”

사공은 하는 수 없이 배를 기슭에 대고 여인을 태웠습니다.

“고맙습니다. 스님.”

여인은 동자승을 향해 인사를 하더니 허리춤에서 엽전을 꺼내 사공 발 밑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동자승을 향해 돌아 앉았습니다.

“스님은 어디로 가세요?”

“예, 절 중창에 필요한 연장을 맞추러 대장간에 가는 길입니다.”

“절을 중창하시면 시주를 거두시겠군요. 저도 시주를 하고 싶으니 저희 집에 같이 가주시지요.”

“고맙습니다. 소승은 보은사 사미승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공이 갑자기 노를 들어 여인에게 휘두르며 외쳤습니다.

“이 마귀야!”

사공이 내려치는 노를 피해 물속으로 뛰어든 여인은 금방 한 마리의 큰 암구렁이가 되어 달아났습니다.

그 바람에 놀란 젊은이는 잠에서 깼습니다.

해가 서산에 기울 무렵 젊은이는 나루터에 닿았습니다.

늙은 사공이 빈 배에 앉아 있었습니다.

“노인장 나루를 건네주시겠습니까?”

“어서 타시지요. 헌데 젊은이 이렇게 늦게 어디를 가시오?”

“과거를 보러 가는 길입니다.”

“나루를 건너면 30리 안에는 인가가 없는데 어디서 유하시려고?”

“인가가 없다니요?”

젊은이는 그제야 사공을 똑바로 보았습니다. 꿈속의 그 사공과 닮은 것 같았습니다.

“이곳이 여강 나루 아닙니까?”

“여강 나루지요. 그러나 젊은이는 새벽부터 길을 잘못 들었소. 젊은이는 오늘 낮에 강가에서 암구렁이를 보았지요. 이 길은 저승으로 통하는 길이오. 나루를 건너면 보은사가 있지만 누구도 살아서 절에 닿는 사람은 없소.”

“노인장, 저는 그럼 죽은 것입니까? 산 것입니까?”

“죽지는 않았소이다. 다만 젊은이가 지니고 있는 〈법화경〉 때문에 여기 이른 것이오. 당신 어머니는 오늘 아침 당신이 길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숨졌소. 지금은 보은사 나찰이 됐는데 절이 퇴락해 거처할 곳이 없어 절 아래 동굴에 머물고 있소. 헌데 그곳은 백마녀라는 마귀의 집이라오. 그 마귀는 당신 어머니께 집을 빼앗기고 화가 나서 당신을 해치려 했으나, 늘 수지독송하는 〈법화경〉 때문에 당신을 해치지 못한 것이오.”

“그러면 꿈속의 동승이 저입니까?”

“그렇소. 당신의 전생 모습이오. 전생부터 보은사 중창 서원을 세운 당신은 아직도 이행 못하고 있소. 오늘 이런 기회도 모두 부처님의 계시입니다.”

“아, 저는 그런 것도 모르고......”

조선 성종 4년, 장원급제하여 여주 고을 원님이 된 젊은이는 대왕대비 특명으로 보은사를 크게 중창하고 부처님 신탁으로 중창했다 해서 절 이름을 신륵사라 개칭했습니다. 지금도 신륵사 탑 근처에는 젊은이의 어머니가 지니던 〈법화경〉이 안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평화로운 강마을과 〈법화경〉의 가피가 아름답게 머무는 신륵사, 이번 가을에는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마도 늙은 사공과 어린 동자승이 함께 나룻배를 타는 정겨운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강심을 따라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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