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담자 고민 들어 주다 ‘행복’ 참 뜻 깨달았죠”

▲ 전영자 상담봉사자가 전화상담을 하고 있다.

부처님은 중생들의 고민을 듣고, 각자의 근기에 맞는 처방을 해주셨습니다. 이를 대기설법(對機說法)이라 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부처님을 위대한 ‘상담가’ 또는 ‘마음치유사’라고도 부릅니다.

부처님이 재가자들에게 해주셨던 상담의 전통을 이어가는 재가불자들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상담’이라는 방편을 통해 부처님을 닮으려는 분들이지요. 하루에 적게는 4시간, 많게는 8시간 상담봉사를 하고 나면 몸에서 진이 다 빠져나가는 듯한 힘겨움도 겪지만, 보람 또한 커 ‘중독성’이 있답니다.

생업의 시간을 쪼개 상담봉사를 하고 있는 임덕신 불자님과 자신의 생활을 찾기 위해 시작한 상담봉사가 15년이 넘은 베테랑 전영자 불자님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시지요.

▲ 전영자 불자

전영자(73) 상담봉사자
아이 다섯을 다 공부시키고 나니, 내 품을 떠나더군요. 가사일에 전념하면서 꽃꽂이를 하거나 정원을 가꾸는 등 소일거리를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 내 생활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집이 화곡동인데, 지하철 5호선 개통으로 교통편이 나아져 조계사를 자주 찾게 됐어요. 집안의 종교가 불교여서 사찰에는 계속 다니고 있었습니다. 15년 전 조계사 신행상담실에서 “상담교육을 받으면 신행상담 봉사를 할 수 있다”고 해서 관심을 가졌죠.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습니다. “상담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었죠. 제가 용기를 내게 된 건 신행상담실 선배의 “내 삶의 경험을 남에게 전해주는 것이 바로 상담입니다. 나의 경험이 곧 살아있는 상담입다. 그걸 왜 꼭 책에서 찾으려고 합니까”라는 조언 때문입니다. 제가 친정에선 9남매 중 7번째, 시댁에선 남편이 9남매 중 맏아들이라 맏며느리인 데다, 자식 다섯을 키워냈으니 인간적 고뇌를 나름대로 많이 겪어, 삶의 경험은 풍부한 편입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쉽지 않은 일이더군요. 말이 신행상담이지, 반은 전화 교환이었습니다. 특히 불교교리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신행만 하는 불자였으니, 상담을 원하는 이들이 와도 무슨 말을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랐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큰 경험이었습니다.

내담자들은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신행과 관련된 것들, 인생 문제 등에 대해 상담을 요청하더군요. 상담봉사 초기에는 들어주는 것이 상담의 대부분이었죠.

어떤 내담자는 불자가 되고 싶은데 돈도 없고, 시간도 없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아픕니다. ‘돈이 없다’는 이에게는 “기도비 낸 영수증 보고 법당에 들여보내는 것 아니니 그냥 들어가서 지성으로 기도하세요. 단, 뭔가를 원해서 기도를 했는데 이루어졌거든, 감사의 의미로 성의껏 시주를 하세요”라고 말합니다. ‘시간이 없다’는 사람에게는 “시방삼세에 두루하신 분이 부처님이시니, 마음 속에 법당을 차리면 언제 어디서든지 부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라고요.

상담을 받은 분들이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 저도 용기를 얻습니다. 그렇게 상담을 하다가 불교상담개발원과 자연스레 인연이 맺어졌죠. 당시 불교상담개발원에서 몇몇 사찰을 돌며 교양강좌를 했었는데, 그 강의를 듣고 부처님께 무조건 ‘이걸 주세요, 저걸 주세요~’라고 하는 게 기도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죠. 그리고 ‘나누는 게 최고’라는 사실도요.

저는 “부처님, 제가 옳고 바른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얻게 해주세요. 옳다면 어떤 일이든 추진할 수 있는 힘도 주십시오. 아닐 때는 과감하게 물러 설 수 있는 용기를,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는 힘을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물론 스스로 노력하면서 말이지요.

상담에 공식은 있지만, 모범 답안은 없습니다. 응용이 필요하죠. 특히 상담사는 예리해야 하고, 선입견 없이 상대를 대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수행을 해서 마장(魔障)을 없애야 합니다. 상담에서의 마장은 선입견이니까요.

현재 조계사 신행상담실(면접 상담), 불교상담개발원(전화 상담), 서울노인복지센터(입회 상담) 등에서 상담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상담심리사 자격증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아요. 일부러 취득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어떤 일을 할 때는 자격증이 필요하지만, 굳이 거기에 얽매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자격증이 없다고 상담을 못하지도 않을 뿐더러, 자격증이 있다고 반드시 상담을 잘하는 건 아니니까요. 자격증 유무 보다는 얼마나 많은 수행을 통해 상담을 원하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죠. 정말 그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직시하게 해서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상담사의 역할입니다.

전화상담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합니다. 하루에 보통 10~20건의 전화상담을 합니다. 월 4회 정도 하는데요. 내담자와 기싸움을 한 뒤에는 굉장히 피곤합니다. 그럴 때는 내가 부족하다는 걸 느껴요. 그러다가도 상담해 준 사람이 마음의 안정을 찾아 더 이상 전화하지 않을 때는 만족합니다. 힘들어 그만두려다가도 보람을 느끼면 다시 나오게 돼요. ‘마약 김밤’처럼 중독성이 있습니다. 앞으로 나에게 주어질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상담봉사는 계속할 겁니다. 1년에 한사람이라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하니까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경구가 있죠. 상담봉사도 혼자 가야 하는 길입니다. ‘외롭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습니다. 내담자들의 고민을 듣다 보면 ‘내가 쓸데없는 투정을 부리며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담봉사를 통해 행복의 참 의미를 알게 된 거죠. 현실에 만족하는 삶을 살고 싶으시다면, 상담봉사를 해보세요.

▲ 임덕신 불자

임덕신(63) 상담봉사자
어릴 적엔 타종교인이었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죠. 대학 시절 친구를 따라 불교학생회 수련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법사스님이 “누구나 수행을 열심히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의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래, 이거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불교로 개종했지요. 저의 불교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는데, 만약 그때 불교와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상담봉사도 없었을 겁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불교활동을 쉬었어요. 직장생활을 하느라 바빴고, 퇴직 후에는 개인 사업을 하느라 사찰에 다닐 시간이 없었죠. 그 사업도 잘 안돼 보험 일을 시작했고, 10년 간 열심히 일한 덕분인지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주위를 돌아봤더니 불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말 우연한 기회죠. 주변에 불교대학을 다니는 분이 있었습니다. 마침 그 분이 과제를 해 가야 하는데 컴퓨터를 다룰 줄 몰라 제가 도와드렸죠. 대학 시절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에서 활동했던 기억이 떠오르더군요.

그게 인연이 돼 불교교양대학에 입학하게 됐고, 포교사 자격증도 취득했죠. 불교교양대학 대학원을 다니다가 ‘상담’에 관한 특강을 듣고 졸업 후에 상담공부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상담은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일이니까요. 제 생각대로 불교상담대학과 불교상담대학원에서 전문적으로 공부를 마쳤습니다.

상담공부를 하면서 포교사로서 서울의 한 구치소에서 수용자들에게 불교교리를 알려주는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교도관이 “구치소 내에 자살 우려자 또는 자살 시도자들이 있는데 그들을 상담해 줄 수 있느냐”고 문의하더군요. 처음에는 불교상담개발원과 연결시켜 주려 했는데, 그 교도관이 제게 상담사 자격증이 있는 걸 알고 부탁하길래 “실력은 부족하지만 한 번 해보겠다”고 해서 지금까지 2년 간 7~8명 가량 상담했습니다.

아쉬운 점은 구치소 수용자들은 형이 확정되면 교도소로 이감되기 때문에 상담을 완료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점입니다. 경험이 쌓이다보니 되도록 빨리 상담을 끝내려고 합니다.

상담은 힘들어하는 분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거잖아요. 불교의 궁극적 목표도 행복이구요. ‘상담’을 생각하면 ‘자타일시 성불도’라는 예불문의 한 구절이 떠올라요. 나와 남이 함께 행복해질수 있는 게 상담이라는 생각입니다. 나 혼자 수행하고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상담 기법을 공부해두면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개인 사업을 하고 있어서 일상이 바빴는데도, 신기하게도 공부할 시간은 나더군요.

불교상담개발원에서는 전화상담을 주로 하고 있어요. 지난해까지는 꾸준하게 했는데, 올해는 일이 바빠 횟수를 조금 줄였어요. 보통 40~50분정도 전화상담을 하는데, 2시간 동안 통화를 한 적도 있죠. 전화상담을 하다보면 별의별 사람이 다 있어요. 욕도 들은 적도 있죠. 상담이 끝난 뒤 “내가 조금 더 잘했으면 상대방의 마음이 편해졌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죠.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도 되고, ‘나의 수행’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지금까지는 즐거운 마음으로 상담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불쑥불쑥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경우도 있지만. 스트레스는 받지 않습니다. 매일 아침 1시간씩 간화선과 위빠사나 수행을 합니다. 상담봉사를 할 때는 평상심이 중요한데, 수행이 평상심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상담봉사를 하면서 가족, 특히 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게 소득이라면 소득입니다. 방황하고 있던 딸에게 상담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아버지가 아닌 상담사의 입장에서 보니 딸의 행동이 이해가 됐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할 수 있게 된 거죠.

요즘엔 금천구 시흥에 있는 혜명양로원에서 노인상담도 하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마다 가는데, 어르신들의 하소연과 넋두리를 들어 주고, 안마를 해 드리는  게 일입니다.

상담봉사를 하다보면 하기 싫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하기싫은 것 다 피하다보면 아무것도 못한다”며 스스를 다독거립니다. 물론 보람도 있죠. 나의 수행이 깊어지는 걸 느끼니까요.

두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상담봉사가 접근하기 힘든 영역은 아닌 듯 합니다. 경전에서 읽은 부처님 말씀, 스님으로부터 들은 법문 등을 잘 기억했다가 시름에 빠진 주위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일도 상담이 아닐까요?

상담을 어렵게만 생각하지 마시고 도전하십시오. 전영자 불자님이 선배 상담사로부터 들은 ‘내 삶의 경험이 곧 살아있는 상담이다”라는 말 기억하세요.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세요. 따뜻한 한마디, 힘이 되는 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불자님들의 상담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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