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가 지난 2009년 이래로 5년간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기사를 접했습니다. 한국방정환재단이 2013년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15~29세의 한국 청소년들은 ‘매우 행복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고작 9.4%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프랑스는 45.9%, 영국은 45.3%, 스웨덴이 43.2%, 핀란드가 37.8%로 나타났으며 이웃국가인 일본 역시 30.1%로 우리나라의 청소년에 비해 매우 높은 수치를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유독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일까요? 2015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전반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보고서는 핵가족화, 맞벌이 가족 및 이혼가정 증가와 나아가 학교폭력 및 학업 스트레스를 주요한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이를 극복하는 수단과 방법으로 인성교육을 내세우고 있는 것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인성교육은 청소년의 성장과정에서 무엇보다 가치관을 형성시키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가치관은 세상을 옳고 건강하게 바라보는 의식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편견 없는 사고가 전제될 때 올바른 가치관이 형성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무수한 편견들이 존재하고 있고 이러한 편견들로 인해 청소년들의 사고가 비뚤어지게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기성세대의 건강하지 못한 의식이 청소년 세대로도 이어져 편견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편견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기치 않은 불행과 절망을 겪어야 하는지 따로 설명드리지 않아도 불자 여러분이 잘 아실 것입니다. 또 세상의 역사도 편견과 함께 흘러왔습니다.

실제로 끔찍한 살인사건이나 폭력사건을 부르게 되는 이면에는 편견이 숨어 있습니다. 살인자 또는 폭력사건의 주인공도 따지고 보면 편견에 관한 한 피해자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이웃의 그릇된 시각과 인식이 분노를 키우게 되고 적개심을 갖게 한다는 것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선 이러한 편견을 없애는 방법으로 중도(中道)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중도는 불교에서 말하는 참다운 수행자의 길입니다.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29세에 카필라 왕궁을 탈출해 35세에 깨달음을 얻기 까지 대부분 가혹한 고통이 수반되는 수행을 하셨습니다. 이를 고행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고행이 깨달음에 이르는 올바른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苦)와 낙(樂)의 양극단을 떠나 심신의 조화를 꾀할 수 있는 중도에 설 때 비로소 진실한 깨달음을 구할 수 있다는 경지를 터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천태종에서는 중도를 삼제원융설(三諦圓融說)로 말하고 있습니다. 삼제는 진제로서의 공(空), 속제로서의 가(假), 비유비공(非有非空)의 진리인 중(中)의 셋을 말하는 것으로 중국 천태지의(天台智, 538~597)선사가 처음으로 주창한 이론으로 천태종의 근본교설이 되었습니다. 이는 제법의 실상을 공이나 가의 일면으로 고찰할 것이 아니라 중도의 절대적인 입장에서 관찰해야 함을 가르치는 교설입니다.

이러한 중도적 관점이 우리 사회에 적용된다면 사회적 병리가 대부분 치유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중도를 떠나 일방적 편에 서서 그를 지지하고 응원한다면 결국 파벌이 생기고 대립할 수 밖에 없는 구도가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인평대군의 손자 이숙(1693~1763)은 편견 없이 세상을 살았던 인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영조실록〉에 의하면 이숙은 언어장애와 청각장애를 동시에 갖고 태어났습니다. 이렇듯 중복장애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의사소통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왕족의 신분으로서 이숙은 글을 배웠기 때문에 글로써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가 있었겠죠. 또한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 등 후사를 잇는 활동에도 남다른 제약 없이 자연스럽게 활동하며 삶을 마감했습니다. 중복장애를 가질 경우 자칫 비뚤어진 행동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벼슬이 높은 경우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다른 이에게 심통을 부려 풀려고 하는 일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숙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장애 문제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영조대왕은 이숙이 사망하자 정1품 종신의 예에 의거해 장례를 치러주라며 각별한 애정을 보였습니다. 이숙은 이처럼 장애인이었지만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에 부끄럼이 남지 않도록 편견 없는 삶을 살다 갔습니다.

다른 이에게 깊은 상처가 될 수 있는 편견의 삶은 우리 주변에서 없어야 하겠습니다. 그릇된 편견은 사회의 병폐이자 극복해야 할 우리 시대의 과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의 가르침이 보다 폭넓게 확산돼야 할 것입니다. 중도는 삿된 견해를 물리치는 엄격한 지침이기도 합니다. 불자들이 앞장 서 이러한 중도의 삶을 실천한다면 우리 사회는 한결 행복한 삶을 구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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