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 반복되지 않도록 정진, 또 정진”
15일 제18차 한중일 불교우호교류 본대회 앞서

▲ 천태종 스님들이 한인희생자 위령제에서 고인들의 넋을 달래는 신중작법을 하고 있다.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리틀 보이(Little boy)’가 투하된 지 70년이 흘렀다. 일본은 그 자리에 평화공원을 세워 원폭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지만 한인희생자에 대한 관심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에 한국불교종단협의회가 한인 원폭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한일 양국 정부에 관심을 촉구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회장 자승 스님, 이하 종단협)는 9월 14일 오전 10시 30분 일본 히로시마 평화공원 내 한국인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히로시마 원폭 한인희생자 추모 위령제’를 봉행했다. 위령제는 제18차 한중일 불교우호교류대회 공식행사에 앞서 종단협 자체적으로 준비한 행사다.

이날 위령제 집전은 화산ㆍ구수 스님을 비롯한 천태종 스님들이 맡았다. 종단협 사무총장 월도 스님은 축원을, 천태종 스님들은 신중작법과 상용영반 등을 통해 영가를 위로했고, 참석자들은 헌화하며 후손으로서 달랠 길 없는 아픈 마음을 전했다.

회장 자승 스님은 추모사를 통해 “지난 70년간 그대들의 눈물로 바다가 채워지고, 그대들의 한숨으로 구름은 흘렀건만, 산 자는 면목 없이 그대들의 삶과 희생의 가치를 되돌아보지 못하고, 반추할 겨를 없이 망각의 세월을 건너 1970년 이 비(碑) 하나 덩그러니 세웠다”면서 “덧없이 흘려보낸 세월만큼이나 무거운 책임감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역사의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인류의 귀감으로 남기고, 산 자의 역할에 매진하겠다. 한국불교 대표단 역시 정진 또 정진하며 수행자의 길을 지켜가겠다”고 다짐했다.

서장은 히로시마 총영사는 추모사에서 “지난 70년간 히로시마에서 후손들이 49번의 위령제를 봉행했지만, 정성과 마음만으로는 도저히 채워드릴 수 없었던 점이 안타까웠다. 오늘 혼백에 사무친 고통과 원통함을 떨칠 수 있도록 고국의 고승대덕들께서 서방정토로 천도해 드리려 한다”며 “고향 산천에 울려 퍼지던 반야심경의 염불소리를 큰스님들께서 들려주셨다. 부디 식민지에서의 서러움 다 씻어 내리고, 부처님 말씀에 의지해 극락세계로 발걸음을 옮겨 달라”고 말했다.

이어 사부대중은 종단협 부회장 회정 정사(진각종 통리원장)가 대표로 낭독한 발원문을 통해 ‘원폭피해자 지원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부처님의 자비 손길이 되기 위해 노력ㆍ정진할 것을 다짐했다.

이 자리에는 한국불교 19개 종단 스님들과 신도, 문체부ㆍ재일본대한민국민단 관계자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한편 이날 국내 원폭피해자 지원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합천평화의집 운영위원장 연암 스님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히로시마 한국인 피폭자는 5만 명에 달한다.

# 현장스케치
    눈길조차 끌지 못하는 한인희생자 위령비

종단협이 봉행한 위령제는 주의를 끌만한 비교적 큰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서양인 관광객 몇 명만 신기한 듯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을 뿐 위령비 근처를 지나는 일본인들의 걸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반면 공원 중심에 있는 일본인 희생자 위령비에는 일본인들의 추모행렬이 끊이지 않아 크게 대비 돼 아쉬움으로 이어졌다.

일본은 1952년 자국의 원폭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위령비를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조성했다. 하지만 원폭투하 당시 강제징용 등으로 인해 히로시마에 머물었던 한국인은 수만 명에 달했고, 일본인 희생자를 위한 위령비 조성은 결국 ‘한국인을 차별한다’는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일본은 1970년, 마지못해 공원 외곽에 한인희생자 위령비를 세웠지만 차별에 대한 비난은 그치지 않았다. 1990년에 이르러 히로시마현의 정식 허가를 받아 공원 내 현 위치로 이전했다. 하지만 아직도 한인희생자 위령비는 공원 중심에 있는 일본인 위령비에 비해 한참이나 바깥쪽에 위치한다. 공원과 일반도로 경계에서 불과 20~30m 남짓 떨어져 있다.

지리적으로는 멀지 않지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이역만리 일본에서 조국의 해방조차 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선조들. 그들의 한(恨)이 단발성 위령제로 달래질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불교계의 이 같은 노력이 국민들에게 조금이라도 전해져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70년 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한 넋들에 대한 후손으로서 도리가 조금은 채워지지 않을까.

▲ 종단협 회장 자승 스님과 서장은 히로시마 총영사가 헌화하고 있다.
▲ 천태종 총무원장 춘광 스님(가운데)을 비롯한 부회장 종단 대표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 발원문을 낭독하고 있는 종단협 부회장 회정 정사.
▲ 종단협 사무총장 월도 스님이 축원을 올리고 있다.
▲ 집전을 하고 있는 천태종 스님들.
▲ 서장은 히로시마 총영사가 추모사를 하고 있다.
▲ 위령제 이후 진행된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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