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위협한 구렁이 위해 사경〈寫經〉, 환생 도와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

춘향이와 이도령 이야기로 유명한 전라도 남원 고을에 대복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힘이 세고 매우 용감해서 말을 타고 전주 관아까지 공문서를 전달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늘 하던 대로 전주에 서류를 전하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하지 무렵이라 해가 한창 긴 때인데 그날따라 흐린 탓인지 여느 때보다 일찍 저물었습니다.

“주막에서 하룻밤 묵어갈까? 아냐, 아내가 기다릴 텐데 빨리 가야지.”

대복은 사방이 어두워지자 말 위에서 잠시 망설였으나 집에서 기다릴 아내를 생각하고는 다시 갈 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리고 춘향과 이도령이 이별했다는 오리정 고개에 막 다다랐을 때였습니다. 주위는 조용하여 말발굽 소리만 요란할 뿐인데 어디선가 대복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대복은 말의 속도를 줄이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귀를 기울였습니다.

“대복아! 대복아!”

분명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틀림없었습니다. 발을 멈추고 소리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던 대복은 그만 기겁을 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어깨 너머에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큰 구렁이가 두 눈에 시퍼런 불을 켜고 혀를 날름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처럼 담이 크고 용감한 대복이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힌 뒤 점잖게 말했습니다.

“그래, 무슨 연유로 남의 바쁜 걸음을 지체케 했느냐?”

“나는 100년 간이나 이 오리정 연못을 지켜온 지킴이인데, 흉한 탈을 벗고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소원이다. 그래서 오늘밤 내 너를 잡아먹고 나는 사람으로 태어날 테니 너는 이 연못의 지킴이가 되어 줘야겠다.”

순간 대복은 허리에 찬 칼을 뽑아들었습니다. 그러나 대복이가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구렁이가 내뿜는 입김에 대복은 칼을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구렁이는 천천히 다가와 대복의 몸을 칭칭 감았습니다.

“내 너에게 원한을 산 일이 없거늘 왜 나를 해하려 드느냐?”

대복은 억지로 말했습니다.

“네가 죽고 사는 것은 내 알 바가 아니다. 지금 네가 나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도 다 하늘의 뜻이 아니겠느냐?”

구렁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습니다.

대복은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죽는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 순간 불현 듯 아내가 늘 외우던 관세음보살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외쳤습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그 때였습니다.

거짓말처럼 허공에서 한 줄기 빛이 일더니 정말로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났습니다.

“아, 관세음보살님!”

관세음보살님은 죽어가는 대복을 지켜보며 조용히 말했습니다.

“오리정 연못의 지킴이는 듣거라. 대복이는 본인의 심성도 착하지만 그 부인 불심이 남편을 위해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지성껏 시주하니 그 정성과 공덕을 보아 해치지 않도록 해라.”

평소 아내가 절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대복이었으나 그 날은 자기도 모르게 합장배례하고는 관음보살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가 합장을 하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관세음보살님은 이미 간 곳이 없었습니다.

“그대는 부인의 공덕으로 오늘 목숨을 건지었소. 그러나 나는 구렁이 탈을 벗지 못해 한이 되니 집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부처님 말씀 중에 으뜸인 〈법화경〉의 말씀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하시오.”

구렁이는 이처럼 신신당부를 하고는 힘없이 연못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어휴, 이제 살았다.”

대복은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알았다. 내 집에 가거든 네 부탁을 잊지 않고 열심히 기도할 것을 약속하마.”

그리고 대복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습니다.

그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여보, 당신 혹시 절에다 많은 시주를 한 일이 있소?”

“들어오시자마자 웬 시주 이야기세요?”

절에 가는 것을 마땅찮아 하던 남편이 시주 말을 꺼내자 아내는 내색을 꺼렸습니다.

“부인, 그렇게 곤란해 하지 않아도 되오.”

아내의 마음을 눈치챈 대복은 담뱃대에 불을 붙인 뒤 오리정에서 일어났던 아슬아슬한 사연을 아내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내는 여러 차례 관세음보살님을 뇌이면서 부처님께 감사했습니다.

“실은 당신께 꾸중을 들을까 염려해서 밝히지 않았으나 얼마 전 대곡사에 쌀 30석을 시주하고 삼칠일 기도를 올렸습니다. 바로 어제 회향했어요.”

“아하, 당신의 그런 지극한 정성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쯤 오리정 연못의 지킴이가 되었을 것이오. 여보, 정말 고맙소.”

그 날부터 대복은 착실한 불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관세음보살님을 염호하며 〈법화경〉을 사경하였습니다. 밤과 낮이 따로 없었습니다. 절에 가고 싶은 사람들이 절대신 그의 집에 와서 그의 독경소리를 듣고 가곤 하였으니까요. 그는 부처님의 곁으로 좀 더 가까이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의향을 아내에게 전했습니다.

“부인, 부처님 가피가 아니었다면 내 어찌 당신 곁에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있겠소. 내 그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서 불사를 하고 싶은데 당신 뜻은 어떻소?”

“그야 물으시나마나지요. 적극 찬성이에요.”

“그럼 우리 절 대곡사 법당이 굉장히 낡았던데, 우리 집 재산을 다 바쳐서라도 법당을 중창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리고 또 할 일이 있습니까?”

“지금껏 내가 쓴 〈법화경〉을 한 권 책으로 만들어 법당 낙성식 때 봉헌하면 좋지 않겠소?”

“참으로 좋으신 생각이십니다.”

대복이 내외는 그 날로 대곡사 법당 중창불사를 시작, 법당을 새로 지었습니다.

드디어 낙성식 날.

대복이는 많은 신도들과 축하객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자신이 법당을 새로 짓게 된 사연을 이야기했습니다. 사람들은 부처님의 가피에 감탄을 연발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사경한 〈법화경〉을 한권 책으로 만들어 정성껏 봉헌하였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그가 바친 〈법화경〉에서 금빛 찬란한 한 줄기 빛이 뿜어져 나와 사람들을 비췄습니다.

“아, 아!”

“관세음보살님!”

사람들은 탄성을 터뜨렸습니다.

그러자 맨 앞줄에 앉아 있던 남원부사가 말했습니다.

“오늘 보니 부처님의 가피가 진실로 하해와 같이 놀라울 뿐이오. 더욱이 그대 부인의 정성은 더욱 감동스러우며, 부처님이 계신 훌륭한 법당을 새로 지은 그 불심 또한 가상타 아니할 수 없소. 이러한 대복의 불심과 사연을 후세까지 기리기 위해 이 절 이름을 대곡사에서 대복사로 바꿔 부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주지 스님의 의향은 어떠하신지요?”

“소승도 부사님 생각과 꼭 같습니다. 대복이란 크게 복이 깃든다는 뜻이니 아주 훌륭한 이름입니다. 이왕이면 부사님께서’대복사’현판을 오늘 써 주시지요.”

부사는 쾌히 그 자리에서 대복사란 현판 글씨를 썼습니다. 그 후 대복이는 오리정 지킴이가 사람으로 환생하길 기원하는 100일기도를 올렸습니다. 마침내 기도를 마치는 날 밤이 되었습니다. 그의 꿈에 그 구렁이가 나타났습니다.

“고맙소. 그대 때문에 나는 남자로 태어났소. 당신이 더욱 선업을 쌓고 정진하여 꼭 극락왕생하길 기원하겠소.”

꿈에서 깬 대복은 빙긋 웃으며 다시 붓을 손에 들었습니다.

〈법화경〉을 사경하기 위해서였지요. 

세존이시여, 저도 〈법화경〉을 읽고 외고 받아 지니는 이를 옹호하기 위하여 다라니를 설하겠나이다. 이 법사가 이 다라니를 얻으면 야차나 나찰이나 부단나나 길자나 구반다나 아귀 등이 그의 부족한 짬을 엿보아도 얻지 못하리이다.

우봉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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