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현 스님 멸빈 판결
당시 종권의 일방적 징계
사면복권은 합당한 결정

최근 서의현 전 총무원장의 사면복권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자비를 본령으로 하는 불교종단에서 21년 전에 멸빈당한 연로한 수행자를 사면복권한다는데 열을 내어 반대하는 분들이 있다는 점이다.

서의현 전 원장의 죄라면 당시 3선 개헌까지 해서 종권을 연장시키려한 죄일 것이다. 그런데 ‘94개혁’을 통해 서의현 원장 체제를 끌어내고 종권을 잡은 측이 비불교적인 방법으로 서 전임 원장 등에게 아예 승적을 박탈하는 멸빈을 했다. 당사자에 대한 사전 고지도 당사자의 출석도 없는 일방적 징계였다고 한다.

대학에서 교수가 징계를 당하는 경우 재심신청을 하면 교수가 승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부분 절차법을 어겼기 때문이다. 아무리 징계사유가 정당하더라도 절차에 하자가 있으면 당국이 패소한다. 율장에서나 민주사회에서 절차는 내용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조계종 호계원의 발표에 의하면 개혁당시인 1994. 6. 8. 결의해 확정한 서 전 원장에 대한 징계는 당시 적용된 호계위원회법(1994. 5. 20. 개정) 제17조 및 제24조가 정한 통보 절차를 위반한 중대한 하자를 발견하고 피제소인에게 재심청구 권한이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하여 재심절차를 개시했다고 한다.

재심에서 위원회는 서의현 전 원장이 “종단으로부터 빈척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1년 동안 속퇴하지 아니하고 승려의 분한을 유지하는 한편 교구본사주지·중앙종회의원·총무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행한 공적이 작지 아니하며, 이미 팔순에 이르러 회향을 준비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함과 아울러 종정 예하의 교시와 원로 대종사의 자비화합의 뜻을 받들어 결정했다”고 감형 이유를 밝혔다.

미흡하지만 ‘94개혁’에서 빚어졌던 비불교적이고 초법적인 사태들을 일부 바로잡고 승가화합을 이루기 위한 공식기구의 합당한 결정이었다고 본다. 자비를 제일의 가치로 삼는 불가에서 율장에 어긋나는 멸빈을 당해 고통 속에 살아온 동료 스님들을 복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하여 7월 29일 열린 조계종 제5차 ‘대중공사’는 정리된 의견발표에서 “서의현 전 총무원장의 재심결정은 개혁정신과 대중공의에 어긋난 잘못된 판결”이고 이에 대해 “재심호계위원들은 책임을 지고 사퇴할 것을 권고”했다.

불교 고유의 회의 방식인 대중공사도 아니고 어떤 단체에서 선출된 대표들의 의결기구도 아닌 ‘대중공사’가 충분한 법적 검토를 거치고 종정예하의 교시까지 받은 공식 위원회의 결정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도대체 문제가 무엇인가?

〈선어록〉에 “개는 돌을 물지만 사자는 돌을 던진 사람을 문다”는 말이 있다. 지엽적 논란을 쫓지 말고 문제의 근원을 보면 ‘94개혁’이 종단에 도입한 비불교적 멸빈제도와 세속적 민주화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현행 멸빈제도 아래서 스님들이 종단의 방침에 반대하려면 멸빈을 각오하거나 침묵해야 한다. 잘못된 민주화 도입으로 종단에는 세속을 뺨치는 선거판이 벌어져 종단의 위계질서는 파괴되고 돈 선거 타락 선거로 존경 받을 만한 불교승단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불교의 미래를 열려면 낡은 ‘94개혁’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억울하게 멸빈 당해 고초를 겪어온 스님들에 대한 사면복권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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