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운 마음과 소욕지족의 삶

인도(인디아)는 히말라야의 만년설과 라자스탄 사막 등 태고의 자연을 간직한 나라다. 가난하지만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첨단 IT산업이 발달했지만, 고속도로에 자전거족과 소떼가 행진하는 극단의 두 얼굴을 가진 나라 인도.

세계의 여행자들이 꿈꾸는 나라이고 좋은 죽음을 맞고 싶은 순례자들의 종착점이자,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어 중생구제의 깃발을 올린 불교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인도의 사상과 인도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작은 전시회가 서울 종로 부암동에 위치한 ‘라 카페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박노해 시인의 인디아 사진전 ‘디레 디레, 천천히 천천히 내 영혼이 따라올 수 있도록’이 그것. 7월 17일 시작된 이 전시는 내년 1월 13일까지 이어진다. 관람료는 없으며, 매주 목요일 휴관한다.

박노해 시인은 2012년 4월부터 이곳에서 글로벌 평화 사진 상설전시를 열고 있다. 수익금은 평화활동에 사용한다고 한다.

인도말 ‘디레 디레’를 우리말로 풀면 ‘천천히 천천히’다. 이 말에 인도 사람들의 사상과 삶이 녹아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사진이든, 그림이든, 영화든, 음악이든 단편적인 편린들로 인도인의 정신세계를 온전히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삶을 살짝 엿볼 수는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둘씨’ 나무 앞에서(Orchha, Madhya Pradesh, India, 2013) △둥근 수레바퀴(Puri, Orissa, India, 2013) △당당한 엄마의 걸음(Puri, Orissa, India, 2013) △인디고 블루 하우스(Gafa village, Rajasthan, India, 2013) △두 그루 나무 사이로(Patha Karka village, Uttar Pradesh, India, 2013) 등 25점의 사진이 전시됐다.

이 중 때묻지 않은 순박한 인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은 ‘둥근 수레바퀴’, ‘두 그루 나무 사이로’.

▲ 박노해 作 ‘둥근 수레바퀴’〈사진제공=라 갤러리〉

박노해 시인은 ‘둥근 수레바퀴’에 “베따꾼 항구 모래사장 위로 둥글고 큰 수레바퀴가 나아간다. 마치 온갖 환상과 유행을 부수며 세상과 정면으로 맞서나간 ‘진리의 수레바퀴’, 붓다의 ‘달마 챠크라’의 기상처럼. 긴 호흡으로 바라보면 좋은 때도 순간이고 나쁜 때도 순간이다. 삶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을 지나며 동그랗게 돌아 나오는 것. 그러니 담대하라. 어떤 경우에도 자기 자신을 잃지 마라”는 설명을 달았다. 여기에 〈숫타니파타〉에 구절인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덧붙였다.

소달구지를 석가모니 부처님이 굴렸던 법륜(法輪)에 비유했다.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의미를 담았다.

‘두 그루 나무 사이로’는 나란히 서 있는 아름드리 나무 두 그루 뒤편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어린 두 남매를 통해 동행의 아름다움을 묘사했다. 특히 나무처럼 더디 가더라도 함께 손잡고 나아가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듬뿍 담긴 작품이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전했던 부처님의 발자취가 느껴지기도 한다.

컬러 사진과 흑백 사진이 주는 느낌은 다르지만, 사진 속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에 발걸음이 멈춰지는 건 출ㆍ퇴근길에 바쁘지 않아도 전철이 오는 소리를 듣고 습관처럼 뛰는 사람들과 그들 무리에 속한 나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인도인의 느긋한 삶의 모습 때문일터. 빌딩 숲에서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자연이 주는 휴식 시간이기도하다.

도시 문명에 사는 이들은 인도인들의 삶이 가난에 찌들어 힘겨울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진 속 인도인들은 부족하지만 마음이 여유롭고, 가난하지만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불교에서 말하는 ‘소욕지족(小欲知足)’의 삶이 아니겠는가.

故 법정 스님은 글 ‘소욕지족’에서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으니 가난한들 무슨 손해가 있으며, 죽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으니 부유한들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라고 했다.

가진 재물이 적다고 반드시 불행한 삶을 살지는 않는다. 재물이 많다고 행복한 삶을 산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중요한 건 재물의 많고 적음보다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사느냐, 끊임없이 재물을 축적하기 위해 숨 돌릴 틈도 없이 살아가느냐의 문제다.

비록 가진 것은 적지만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사는 사진 속 인도인들의 모습에서 스스로의 삶을 반추해본다. 숨 가쁘게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이들에게 권한다. 분주한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 보시길.

‘디레, 디레, 디레, 디레….’ 

▲ 박노해 作 ‘두 그루 나무 사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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