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집착에 뺏기지 마세요

스님, 저는 매일 기도는 하는데 소원이 있을 때는 간절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그렇다고 세계평화 이런 걸 빌기엔 너무 거창한 것같고요. 제가 생활 속에서 꾸준히 할 수 있는 발원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꾸준히 이어갈 발원이 필요하시다고 했는데요. 대승불교에서는 발원이 수행의 첫 걸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발원을 하는 것은 기복이나 탐욕과는 다른 거죠.

발원은 나만을 위한 원이 아니라 우리 모두, 인류 즉 일체 중생에 대한 기원을 담는 겁니다. 나와 너를 구분하는 이분법이 없죠. 남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고, 남이 잘 되는 것이 곧 내가 잘 되는 겁니다.

발원으로 세계평화를 비는 것이 거창하다고 하셨는데요. 아닙니다. 거창하다고 생각을 하는 이유는 내가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발원은 그 결과를 이루어야 한다는 집착을 벗어나야 제대로 된 발원입니다.

소원이 있을 때 간절하게 기도한다고 하셨죠. 그 소원이 나를 위하고 내 가족을 위한 소원이면 그건 발원이 아니에요. 발원은 욕망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원을 세우고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발원을 하고 자꾸 베푸는 마음을 연습하면서 무아의 경지에 다가가게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발원은 참다운 자기 전환의 시작입니다. 내가 지은 업에서 벗어나 스스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 바로 원을 세우고 기도를 하는 거죠.

불자들이 제일 많이 접하는 발원이 뭔지 아세요? 법회 끝날 때 부르는 사홍서원이에요. 의식곡으로만 생각해서 입으로만 따라 부르지 마시고 그 뜻을 음미해보세요. 얼마나 좋습니까. 사홍서원으로 네 가지 원을 세우셔서 기도하시면 됩니다. 아시겠죠?

 

저는 완벽주의자적인 성향에 굉장히 꼼꼼한 성격이라 다른 사람들이 저 때문에 피곤합니다. 때론 믿고 맡겨도 되는데 성격상 꼭 제 손을 거쳐야만 안심이 되네요. 그러니 제가 할 일은 점점 많아지고, 사람들 간에 마음 상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어떻게 해야 저도 편하고, 남들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을까요?

완벽주의자에 꼼꼼한 성격이라고 하셨는데요. 그런 성향 때문에 스트레스도 굉장히 많으시겠어요. 흔히들 완벽주의의 문제점으로 뽑는 것이 비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한다는 거예요. 단순히 목표가 높은 게 아닌 겁니다.

현대사회는 굉장히 세분화된 사회입니다. 무엇이든 혼자 다 할 수 없죠. 회사는 특히 더 조직화되어 있는 곳이잖아요. 각자 다 맡은 역할이 있고 그 역할들을 잘 수행해서 유기적으로 돌아갈 때 가장 성공적인 결과물을 생산해내겠죠. 우선은 믿음을 회복하시는 게 먼저인 것 같습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를 믿으세요.

믿음은 종교에만 해당되는 덕목이 아니에요. 불교 신행의 첫 걸음도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는 것에서부터 시작이잖아요.

사회생활을 해 나갈 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무턱대고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업무 영역에서 다른 직원들의 업무 수행력을 어느 정도 믿어주라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업무 패턴을 확인하셔야 해요. 불자님이 진짜 해야 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지, 반드시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인지, 불필요하거나 덜 중요한 일에 지나치게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야 합니다.

혼잣말처럼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나 내면의 자신에게 스스로 하는 말에도 귀를 기울여보세요. 부정적인 단어가 많다면 스스로를 긍정적인 사람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합니다. 긍정과 낙관이 연결될 때 본인도 편해지고 주변인들도 편해지는 결과를 낳게 될 겁니다.

 

스님, 저는 사람에 대해서는 참 냉정해 맺고 끊음이 칼 같다는 얘길 듣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물건에 대해서는 집착을 놓지 못하겠습니다. 오래되고 작은 물건 하나 버리기가 쉽지 않네요. 어떻게 하면 집착을 놓을 수 있을까요?

불교에서는 무소유를 말하죠. 스님들처럼 무소유하며 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 불자님들도 최소한의 무소유는 하고 사셔야 해요.

무소유라고 말했을 때, 아무 것도 내 것을 가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내 것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든 사람이든 돈이든 내 손에 들어왔을 때 그것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집착하면 무슨 문제가 생기냐면요. 집착하는 대상이 사라졌을 때 ‘나’라는 존재가 없어지게 됩니다. 안정을 찾을 수가 없죠. 아끼던 걸 잃었으니까. 집착으로 나의 존재감을 갖다 보니 집착할 대상이 사라지면 ‘나’도 같이 잃어버립니다.

내 삶의 주인공을 ‘집착’에게 빼앗기지 마세요.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입니다. 물건에 끄달리는 줏대 없는 그림자가 아니라, 물건 따위에 집착하지 않는 주인공인 나로 사셔야 해요.

어디서 무엇을 하든 주인처럼 하세요. 그러다보면 주인이 됩니다. 가는 곳마다 객으로 머무르는 사람은 영원한 객일 수밖에 없어요. 내 삶의 주인공 자리를 뺏기고, 멀거니 물건에 끌려가는 나를 지켜본다는 것. 끔찍하지 않습니까?

부처님은 또 무엇을 말씀하셨나요? 공수래공수거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이 세상 그 누구도 무엇에 집착을 하든 죽음 앞에 이르러 그 집착하는 바를 모두 끌고 갈 수는 없습니다. 내가 지은 업은 내가 지고 다니는 것이지만 내가 집착하는 대상은 이 한 몸 벗어놓을 때 고스란히 두고 가야하죠.

내 삶을 정리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집착을 놓는 것입니다. 물건에 집착한들 나중엔 짐만 늘어서 처리하는 것도 쉽지 않아집니다. 늘 가볍게 사세요. 물건에 짓눌려 진짜 필요한 마음의 여유를 잃지 마십시오. 욕심의 틈으로 삿된 가르침이 스며듭니다. 부처님께서 집착하지 말라고 하신 그 가르침대로 살아야 합니다. 머리로만 알아서는 소용없죠. 온몸으로 체득해서 내 것으로 만들고 행동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불자의 삶을 사는 거고, 내 삶의 온전한 주인으로 사는 겁니다.

그저 주인답게 늘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세요. 그러면 복도 저절로 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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