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천으로 엮은 생활예술

▲ 조각보박물관에는 김순향 관장이 만든 조각보 5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조각보는 예부터 물건을 싸는 보자기의 한 종류로, 자투리 천을 이어 만들었다. 선조들은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정성을 다해 조각보 만드는 일을 ‘복(福) 짓는 행위’로 여겼다. 천 조각을 마르고 꿰매며 복과 장수를 염원했기 때문이다. 특히 모시를 사용해 만드는 조각보는 성긴 천 구멍이 악귀를 막는 그물 역할을 한다고 여겨 액땜용으로 벽에 걸어 장식했다.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이어져 온 조각보는 생활예술로 승화되기도 한다.

부산 해운대 신도시 중동역에서 신도초등학교 건너편 방향으로 30m쯤 걸어가면 대한민국 조각보 기능 전승자 1호 주천 김순향 관장이 운영하는 조각보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은 2006년 7월 개관했으며 김 관장이 평생 동안 작업한 조각보 400여 점 중 50여 점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조각보 작품들에는 장인 김순향 관장의 땀과 창작에 대한 열의가 스며있다. 김 관장은 “조각보를 만들 때는 우주를 삼키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작품들을 보니 한 땀 한 땀 연이어 꿰매는 작업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모든 작품의 색채 감각이나 조형성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이다.

▲ 난보.

적색과 녹색이 맞물려 돌아가는 듯 꾸민 ‘톱니바퀴’, 탑을 위에서 내려다본듯한 구도의 ‘탑보’, 긴 삼각조각을 사선으로 이어 붙여 역동적 구성을 한 ‘바람개비’, 태극기의 역사적 의미와 변화상이 담겨있는 ‘태극기 연작’ 등은 ‘정말 손으로 작업 했을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정교했다. 특히 ‘아리랑 태극기보’와 ‘김구 선생 태극기보’는 가로 2m, 세로 2m 규모의 대작으로 9개월에 걸쳐 완성했다. 웅대한 흰 바탕의 우주에서 태극이 춤을 추는 형상을 나타내며 우리 민족의 얼과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있다. 이밖에도 난을 주제로 한 ‘난보 연작’, 쪽빛의 오묘한 세계를 구현한 ‘쪽보 연작’도 눈여겨 볼만 하다.

김순향 관장은 아무리 복잡한 조각보라도 미리 스케치를 하지 않는다. 색감을 구상하고 색을 배합하는 모든 과정이 자연에서 느낀 감정 그대로 작품으로 재현해 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조각보 작품은 다양한 형태로 조화롭게 배치돼 화려함을 뽐낸다. 크기와 색이 다른 세모와 네모 모양의 작은 조각들이 어우러져 전체를 이루며 예술적 가치를 더한다.

이런 조각보들을 둘러보니 서양의 ‘퀼트’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홈질로 천을 잇는 퀼트와 달리 조각보는 감침질을 이용하고 쌈솔(홈질로 접어넘긴 곳을 감친 뒤 다시 접어 감쳐 안과 밖이 같도록 한 기법)과 좌우 발림솔(감침질 뒤 솔기를 좌우로 벌려 단단히 고정하는 기법), 삼발상침 등 우리나라 전통 바느질 기법을 이용한다. 또 땀이 촘촘하고 견고한데다 깔끔하며, 조각의 형태도 직선으로 이루어져 퀼트와는 비교할 수 없는 독창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박 관장은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전체적인 균형과 조화를 이뤄내 동양적인 정서를 담아낸 것이 조각보”라고 설명했다.

그는 “조각보는 작은 것 하나까지도 소중히 여겨 더 가치 있는 것으로 거듭나게 하고픈 마음으로 시작된 것이다. 작은 조각보 하나에서 새로움을 창조하는 예술 행위가 사랑과 정성에서 비롯됐음을 느낄 수 있다”며 “각박한 생활 속에서 과거의 것을 잊어가는 현대인에게 전통유산이 마음의 풍요로움을 줄 수 있도록 조각보 기능 전승자로서 막중한 책임을 갖고 활동하겠다”고 덧붙였다.

조각보박물관은 조각보체험교실도 운영한다. 찻잔 받침 만들기 과정부터 1년 심화 과정까지 있어 조각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배울 수 있다. 2층에는 ‘주천문화원’을 같이 두어 다도와 침선, 전통예절에 대한 교육도 하고 있다.

박물관은 예약자에 한해 매주 화~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한다. 작품 감상 시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면 색이 변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문의 051-744-0196.

▲ 태극기 연작(왼쪽 아리랑 태극기보, 오른쪽 김구 선생 태극기보).
▲ 밥상보와 약상보로 사용되는 조각보 작품.
▲ 자수 규방품들.
▲ 조각보 체험교실에 참여한 관람객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