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에는 다양한 수행법이 공존한다. 화두(話頭)를 들고 수행하는 ‘간화선’, 불ㆍ보살들의 명호를 외는 ‘염불’, 경전을 읽는 ‘독경’ 또는 ‘간경’, 경전을 베껴 쓰는 ‘사경’, 불ㆍ보살을 베껴 그리는 ‘사불’, 마음을 고요히 해 진리의 실제 모양을 관찰하는 ‘지관수행’ 등 종단에 따라, 불자의 근기에 따라 여러 수행법이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런데 근래 들어 한국불교계에 미얀마, 태국, 인도, 티베트 등 아시아 국가의 불교수행법의 유입이 빨라지고 있다. 스님들의 경우 외국에서 직접 수행법을 배워와 자신의 기존 수행법에 접목을 시도하기도 하고, 그 수행법에 매료돼 국내에서 전문 수련시설을 개원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런 외래 수행법에 관심을 갖는 재가불자들도 급속히 늘고 있는 추세다.

출·재가를 불문하고 많은 이들이 한국불교 전통수행법을 두고, 외국에서 유입된 수행법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을 살펴보고, 이런 현상에 대해 한국불교계는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알아봤다. 편집자

실용적 외래수행법 빠르게 유입, 편견 버리고 중도적 시각 접근을

80년대 후반 위빠사나 유입
외래수행법을 언급하자면 먼저 위빠사나 수행법을 빼놓을 수 없다. 위빠사나는 198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 유입된다. 미얀마 위빠사나 수행의 중흥조로 불리는 마하시 스님(1904~1982)의 수제자, 우빤디따 사야도(U Pandita sayadaw, 1921~)가 1988년 방한해 서울 승가사에서 국내 최초로 미얀마의 위빠사나 수련법회를 봉행한 게 계기가 됐다.

이 무렵 정부는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이듬해 그간 규제했던 국민들의 해외여행을 자유화한다. 이때 일본을 비롯해 인도, 미얀마, 태국 등 동남아시아로 유학을 떠난 출·재가자들이 현지 불교수행법을 접하고, 직접 배우고 돌아와 국내에 다양한 위빠사나 수행법을 전파했다. 위빠사나는 당시 단기간에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이유로 불자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이후 아봐타 등 명상수행과 관련해 상업화된 수행법들이 국내에 유입되면서 한동안 혼탁한 양성을 보이기도 했다.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학과 정준영 부교수는 “당시 국내 불교는 한문원전 연구 중심이었지만 유학생들이 빨리어나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고 와 원전연구를 시작하면서 위빠사나 수행법이 폭넓게 소개됐다”면서 “이후 현지에 장기간 머물며 수행하고, 계를 받아 오는 사람도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에 들어온 외래수행법은 미얀마 위빠사나, 태국 담마까야, 인도 원니스, 티베트 명상법 등 다양하다. 이 중 가장 대중화된 수행법은 역시 가장 먼저 유입된 미얀마 위빠사나. 미얀마 위빠사나는 마하시ㆍ파욱ㆍ고엥까ㆍ사마타ㆍ순룬ㆍ쉐우민 위빠사나 등 종류도 다양하다. 미얀마 현지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한국 스님과 재가불자를 전국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미얀마 위빠사나 중에서는 ‘마하시 위빠사나’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좌선할 때 호흡에 따라 느껴지는 복부의 움직임을 일차적인 사띠(마음챙김)의 대상으로 삼고, 좌선과 걷기 수행에 동일한 비중을 두는 수행법이다. 또 매일 수행 상태를 지도법사에게 보고해 수행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 받는다. 마하시 수행센터는 전 세계에 500여 곳이 운영 중이다.

태국의 담마까야 수행법은 수정공을 상상하거나 몸 안에서 나타나는 빛을 대상으로 하는 수행법이다. 캄보디아의 마하고사 난다 스님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됐는데, 태국 불교계에서도 정통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이밖에 인도의 원니스(Oneness)는 불교와 힌두교를 합친 수행법으로 국내에 저변을 확대 중이다. 또 호주 아잔브람 스님의 수행법도 국내에 전해져 아잔브람한국명상센터(원장 각산 스님)가 운영 중이며, 간화선 수행을 보완하는 방편으로 아헹가 요가 등과의 접목을 시도하는 모습(현천 스님)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동사섭(용타 스님), 자애미소명상(미산 스님), 자비명상(마가 스님) 등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해 보급하는 사례가 늘면서 또 하나의 추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금강선원 청소년 명상 프로그램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명상 체험을 하고 있는 모습.〈금강신문 자료사진〉

자체 프로그램 개발 증가
이같이 외래 수행법을 새로 배우거나, 배운 후 기존 수행법과의 접목을 시도하려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조계종의 대표적 수행법인 간화선 수행법이 체계적이지 않고, 실용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스님과 신도들이 수행법이 구체화 돼 있는 남방불교 수행법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사띠’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남방불교의 수행법은 대부분 매일 인터뷰를 해주며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한다. 진행과정까지 살펴주기 때문에 수행의 체감과 실생활 적용이 쉽다. 최근 이런 수행법의 신뢰를 높여주는 여러 연구결과도 쏟아지면서 불자들의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고려대 철학연구소 조준호 박사는 “한국의 출ㆍ재가 수행자들은 간화선 수행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다. 위빠사나 등 외국불교 수행법을 접해보고 효과를 느끼면서 그 수행법을 따르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간화선 수행법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은 그동안 여러 곳에서 제기됐다. 간화선 수행체계 확립의 필요성과 수행자들의 인식 개선을 주장해온 월암 스님(대구 은해사 기기암 선원장)은 〈친절한 간화선〉(2013, 담앤북스)을 통해 간화선 수행을 화두참구라는 방법론에만 한정시키지 않고, 발심으로부터 습인의 닦음-정견의 확립-화두참구의 방법론-보현행원의 회향에 이르도록 체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월암 스님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간화선은 화두를 주고받고 정진하라는 식의 수행형태만 제시하고 있다. 반면 근래 주목받고 있는 위빠사나 수행은 단계적으로 설명하고, 인터뷰를 통해 친절하게 지도하는 과정이 수행자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며 위빠사나 수행의 인기 비결을 설명한 바 있다. 미산 스님(상도선원 선원장)도 간화선과 위빠사나 수행법을 두루 경험한 바 있다. 스님은 “출가 후 초기불교학을 공부하다 문헌에 적혀 있는 내용을 실제 수행과 맞춰가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위빠사나 수행을 시작하게 됐다”면서 “다양한 수행법을 공부하고 체험하니 보다 큰 안목이 생겼고,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수행법을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미산 스님은 이를 바탕으로 ‘자애미소명상’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대중들에게 ‘간화선’, ‘위빠사나’, ‘주력(呪力)’, ‘염불’ 등 각자 근기에 맞는 수행법을 지도하고 있다. 대중들의 만족도도 높다고 말한 스님은 “심층적인 인터뷰와 정확한 통계를 연구해 보다 많은 대중들이 편하게 다가올 수 있는 수행법을 만드는 데 힘을 쏟겠다”면서 간화선 수행법 안에서 남방불교의 수행법의 활용 가능성을 높게 전망했다.

▲ 자비명상 수행법을 개발해 수행자들에게 전파하고 있는 마가 스님. 사진은 자비명상의 일환인 걷기 명상. 〈사진제공=(사)자비명상〉

유입·접목에 대체로 긍정적
외래 수행법의 유입은 앞서 두 스님의 얘기와 같이 대체적으로 긍정적이다. 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장 수경 스님도 간화선이 가장 효과적인 수행법이라고 말하면서도 눈 밝은 스승의 부재와 체계를 갖추지 못한 점 등 전통수행법이 대중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단순히 외래수행법을 따라하는 형태에서 전통수행법과 외래수행법을 접목하거나 이 과정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개발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월암 스님, 미산 스님, 용타 스님, 마가 스님 등이 대표적이다.

마가 스님은 “전통 수행법을 최상의 수행법으로 고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위한 예비단계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외래수행법과의 접목과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에 찬성을 표했다. 스님은 최근 유행하는 명상에 대해 “현대 의술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현대병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다”며 “스트레스가 많고 화를 다스릴 줄 모르는 현대인들에게 정말 필요한 수행법”이라고 말했다.

외래수행법의 유입은 대세라는 게 불교학자들의 입장이다. 고려대 철학연구소 조준호 박사는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은 과거처럼 획일적인 하나가 용인되거나 강조될 수 없는 다양성과 다원화된 시대인 만큼 수행법 또한 다양성이 요청된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의 시도는 서구에서 먼저 시도됐다. 과학적인 사고방식과 다양한 연구방법론은 수행법의 프로그램화에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문제점도 발생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박재현 동명대학교 불교문화학과 교수는 “좋은 수행법이 들어오면 받아들이는 게 맞다”고 말하면서도 “그 수행법의 바탕이 어떤 사상인지는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구에서 연구·개발되는 과정에서 불교가 아닌 다른 종교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녹아들어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정준영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부교수는 다양한 수행방법의 유입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교주화나 집단화는 경계했다. 지나치게 상업화된 수행법 역시 변질됐을 가능성이 높다.

“근기 따라 수행법도 다양”
실제 전통수행법과 외래수행법을 경험해본 재가불자들의 반응도 스님이나 학자들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 불교계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재경 씨는 간화선과 염불 수행을 하고 있다. 그는 “주변에 염불, 화두선, 위빠사나 등의 수행법을 다양하게 하는 사람이 많다. 남방불교와 북방불교 수행법을 상호 비방하는 것은 안 된다. 자신에게 맞는 수행법을 찾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도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수행과 함께 경전과 어록을 보는 게 도움이 된다”며 선과 교를 병행할 것을 권했다.

위빠사나 수행경험자인 최호승(법보신문 기자) 씨 역시 “깨달음을 향해 가는 방법이 다를 뿐 목적지는 같지 않겠느냐”면서 “깨달음은 아니어도 마음이 맑아지는 경험은 할 수 있다”는 말로 외래수행법 유입에 긍정적 입장을 보였다.

조계종의 경우, 포교원에서 한국명상지도자협회 창립을 주도하는 등 외래수행법 또는 자체 개발된 수행법에 호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불교수행법을 한국 전통수행법과 외래수행법으로 분류하는 기준조차도 모호하다. 또 어느 선을 불교수행법과 비불교수행법으로 볼 것인가 하는 기준도 불명확하다. 외래수행법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이 시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날 2600년 전에 비해 다변화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수행법 또한 개인의 근기에 맞게 다양해지는 게 맞지 않을까? 외래수행법 유입의 찬성과 반대, 전통수행법과의 접목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논하기에 앞서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는 장이 열려야 한다. 이를 통해 전문 연구기관이 설립되고, 각 수행법의 과학적 효과 검증을 위한 노력도 진행돼야 한다. 한국불교계가 외래수행법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접고 중도적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포교와 수행 모두 발전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조언이다.

 

장단점 비교하되, 수행 핵심 챙겨야
석 길 암(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HK교수)

특정 종교 여부에 관계없이, 그리고 특정 직업군이나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웰빙 혹은 힐링이라는 단어는 자신의 생활을 가늠하는 핵심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불과 10여 년 전 전통 불교문화체험 사업으로 시작된 템플스테이가 지금은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문화체험 프로그램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도, 그것이 단순히 전통문화의 체험만이 아니라 힐링과 웰빙의 두 가지 요소를 충실하게 내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적극적으로 결합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템플스테이는 단순히 한국불교의 전통적인 체험에 기반한 것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80년대 초반부터 일기 시작한 명상수행에 대한 관심, 요가수행 및 동남아시아 상좌부 불교의 위빠사나 수행에 대한 관심, 티베트 불교의 금강승 수행에 대한 관심을 비롯하여 틱낫한 스님으로 대표되는 불교명상공동체에 대한 한국 불교인들의 지대한 관심이 그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관심은 간화선 혹은 염불선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불교의 수행에 한계를 느낀 스님들과 불자들의 대안 찾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제 명상수행은 이제 어느 전통인가 하는 점을 가리지 않고 당연히 내포하고 있고 또 강조해야 하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와 달리 여전히 좀 더 불교적인 수행법으로 위빠사나 수행법과 티베트 불교의 수행법, 그리고 최근에는 중국에서 비롯되는 불교와 도교의 수행법이 결합되어 있으면서 불교를 표방하는 수행법들과 대만불교에서 시작된 수행법들도 적극 국내에 유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티베트 불교의 수행법은 달라이 라마의 메시지가 국내 서점가에서 당연한 베스트셀러로 받아들여지는 것과 달리, 수행 현장에까지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다. 관심이 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티베트 불교의 수행법 자체가 적극적으로 혹은 주체적으로 수용되어서 한국 불교의 다양한 수행법 중의 하나로 정착하는 단계까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중국의 불교와 도교 수행법이 결합된 형태의 수행법 혹은 대만불교의 수행법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빠사나 수행법은 ‘호두마을’, ‘보리수선원’,‘반야라마’ 등 대표적인 위빠사나 수행처들에서 보듯이 완전한 정착의 단계에 들어서 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간화선 혹은 염불선을 수행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한국불교의 출가자들이 남방불교 수행을 표방하는 사찰을 세우고, 일반 사찰에서조차 위빠사나 수행을 적극 활용하는 현장들이 있는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사실 한국 불교의 전통 수행법인 간화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위빠사나 수행법이다. 간화선 수행의 적극적인 변화를 도모하지 않을 수 없는 원인을 제공한 것도 역시 이 위빠사나 수행법이다. 여기에는 간화선 수행의 경우보다 좀 더 쉽게 접근하고 지도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적용한다는 특징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이에 최근에는 전통적인 간화선 혹은 염불선 수행의 특정 요소를 중심으로 요가와 명상, 그리고 위빠사나 수행법이나 티베트 불교의 수행법을 적극적으로 결합시킨 새로운 형태의 간화선 수행법들도 등장하고 있다. 즉 간화선 전통에 기반하되 굳이 구애되지 않고 불교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수행명상법들의 특징적인 면모를 융합시키는 한편 그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적용하는 프로그램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동사섭’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로 서구의 집단상담적 요소와 불교의 다양한 수행법을 결합한 것이다. 정토회의 명상프로그램 역시 전통적인 수행법의 체계화는 물론 그것의 사회적 실천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수행법의 모색이자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불교계 내에서는 수행법을 둘러싼 다양한 방법론적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다양한 수행법의 장단점을 적극 인정하여 활용하지 않고 우열을 비교하는데 빠져서 수행의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더불어 우리의 전통 수행법이 가지고 있는 장점조차 외면하는 태도일 것이다.

 

호불호 떠나 근기 맞는 수행법 찾아야
(마 성 스님(동국대학교 겸임교수))

현대인들은 ‘지구촌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무너졌다. 이러한 시대에 불교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1990년대 초반부터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한 다양한 수행법들이 널리 성행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도 하나의 흐름에 불과할 뿐이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문화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인간은 언제나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은 과학문명을 이룩하게 되었다. 인간의 정신세계를 다룬 철학이나 사상도 마찬가지다. 다만 여기서 유의할 점은 어떤 사상이나 수행법을 수용할 때에는 그것을 무조건적 또는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요아힘 바흐(Joachim Wach)는 종교의 구성요소를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이른바 이론적 표상(교리), 행위를 통한 표상(의례), 사회적 기제(機制)를 통한 표상(조직)이 그것이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종교의 세 가지 요소라고 부른다. 그러나 불교에서 보는 종교의 세 가지 요소는 교리·수행·의례다. 이 세 가지 요소가 합치되어야만 비로소 깨달음을 이룰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불교적 관점이다.

불교의 신행(信行)이란 믿음과 실천을 말한다. 믿음은 이론적·교리적 체계이고, 실천은 수행의 체계이다. 이러한 교리와 수행의 조화를 통해 궁극의 목적인 열반에 이를 수 있게 된다. 만일 교리적 체계와 수행의 체계가 충돌한다면 바람직한 신행이라고 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교리ㆍ수행ㆍ의례는 솥의 세 발과 같아서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특히 수행법은 그 나름의 교리와 사상을 바탕으로 성립된 것이다. 그러한 역사적ㆍ사상적 배경을 무시한 채 겉으로 드러난 한 단면만 보고 받아들일 경우, 나중에는 사상적 혼란을 겪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를테면 교리와 의례는 대승불교의 전통에 바탕을 두고, 수행만 상좌불교의 전통을 따른다면 곧바로 자기모순에 빠지고 만다.

어떤 사람은 상좌불교든 대승불교든 장점만 취하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필자는 위빠사나와 간화선은 전혀 다른 수행법이기 때문에 하나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비록 두 수행법의 목적지는 같지만 그 방법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두 수행법 중에서 좋은 점만 취하면 된다는 주장은 불교사상의 역사나 수행의 원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좁은 소견(短見)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에서 형성된 종파들도 나름대로의 교리, 즉 사상체계와 수행체계를 갖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그 종파가 주창(主唱)하는 신행이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된 것이 바로 ‘의례’다. 의례는 그 종파가 주창하는 교리와 실천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담당했다.

현재 국내에 들어온 다양한 수행법으로 인해 당분간은 혼란을 겪게 되겠지만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모든 사상이나 유행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자연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기 때문이다. 앞으로 20년 후에는 다양한 수행법들의 장·단점들이 명확하게 드러날 것으로 예측된다.

아무튼 상좌불교도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대승불교도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는 오직 각자가 선택할 문제이다. 결코 제삼자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취향에 따라 간택(簡擇)할 문제인 것이다. 상좌불교와 대승불교는 처음부터 서로 다른 사상적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재 세계적으로 상좌불교와 대승불교의 두 전통이 공존하고 있다. 그런데 어리석은 범부들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어느 한 전통이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모든 사상과 수행법에는 장ㆍ단점이 있다. 그러므로 우선 자신의 근기에 맞는 수행법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 그런 다음 꾸준히 정진하면 누구나 ‘지금 여기에서’ 궁극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이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현법열반(現法涅槃)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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