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투명화 통한 신뢰 회복부터

확고한 원찰 제도 마련해 신도 소속감 높이고
역할 모델 찾고 스님·신도 교육 지속해야

재정 확보 방안 마련한 롤 모델

지금까지 스님들은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붙잡는다' 식으로 사찰을 운영했다. 산업화를 거쳐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어 급변하는 시대에 기존의 방식을 고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내외 불교계를 살펴보면 성공한 모델들도 적지 않다.

국내 불교계에서는 창종한지 60년이 된 진각종이 대표적이다. 진각종은 창종 초기부터 일반 직장에 다니는 신도들이 월수입의 1/10을 희사금으로 내게 하고, 불공 때마다 희사금을 낸 뒤 염송을 하도록 하고 있다. 개인사업자의 경우는 물품 구매에 앞서 1/100 정도를 자발적으로 희사하고 있다. 이는 교도들이 정기적 시주를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승(스님에 해당)들도 종단에서 받는 포교비와 심인당(사찰에 해당) 운영비 일부를 시주금으로 희사하고 있다. 진각종의 한 관계자는 “정기적 시주 제도가 정착됐기 때문에 재정의 안정화를 꾀할 수 있었고, 그 기반 위에서 종단이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천태종의 경우 신도 등록을 마치면 매월 정기적으로 ‘교부금'이라는 명목으로 시주금을 내고 있다. 사찰의 수입·지출 내역은 신도회 간부들에게 공개하고 있어 재정투명도가 높다.

한국 종교단체 중 재정 투명도가 높다고 평가되는 원불교의 경우 교도들이 해당 교당을 운영하는 운영비와 봉사단체 회비를 매달 정기적으로 납부하고 있다. 재정공개는 각 교당마다 인터넷 홈페이지와 교의회를 통해 비정기 수익을 포함한 재정 상태를 매달 공개해 투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김포 용화사는 기도비, 불공비, 불전함, 불교용품점 수입 등 모든 재정 관리를 신도회가 담당하고 있다. 정기적인 시주금 납부 제도는 없으나 ‘100일 기도' 중에는 매일 1천원의 기도비를 받는 ‘천원기도'를 실시해 신도들의 꾸준한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북한산 삼천사는 주지 스님이 신도들과의 면담을 거절하지 않고 고민을 들어주며 성심껏 대화함으로써 종교서비스로 충분한 만족도를 제공하면서 신도 관리를 하고 있다. 신도수가 줄어들지 않고 시주금도 급감하지 않고 있다.

서울 관악산 성주암은 기도비, 각종 재비, 불공 등 신도들이 내는 모든 시주금에 영수증을 발급해주어 신도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다. 이를 통해 어느 정도 사찰 재정의 안정성도 확보됐다.

시주금 불자들에게 회향해야

불교계 후원모금의 대표적인 모델로 주목 받고 있는 대만 자제공덕회는 10여 년 전 ‘50센트면 한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표어로 모금운동을 벌여, 현재는 1억불 이상 모금해 각종 사회사업에 사용하고 있다.

대만 불광산사는 목적사업을 통해 기금을 모으고 기부자들을 위한 시설이나 프로그램을 반드시 만든다. 대만 불광대학교는 불광산사가 운영하는 종립학교다. 불광산사는 ‘매달 1회 한 끼 값이면 많은 인재를 키울 수 있다'는 표어를 걸고 100만 명을 대상으로 3년간 모금활동을 전개해 불광대학교를 건립했다. 개교 후에는 보시한 이들을 위해 사찰순례와 같은 형태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기부자들과 함께 불광대학교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다.

또 불광산사 내에는 호텔급 숙소가 있다. 바로 불광산사 건립에 기금을 보시한 이들을 위한 시설이다. 참고로 스님들의 숙소는 산사 한편에 선풍기 한 두 개 정도로 여름을 나야될 정도로 소박한 공간이다.

정웅기 사찰경영연구소 부소장은 “자제공덕회와 불광산사 모두 투명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불광산사는 기부자들에 대해 배려하고 있고, 자제공덕회는 사회로 회향하고 있다”며 “특히 자제공덕회는 NGO의 시스템과 유사한 재정운용으로 기부금을 공덕회 운용비와 목적사업비로 나눠 사용하고 이를 공개해 신도들과 기부자들에게 믿음을 줘 무조건적인 시주·보시를 이끌어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뢰 회복·원찰 갖게 해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재의 재정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사찰재정의 투명성 확보'를 꼽는다. 재정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신도들에게 수입과 지출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태고종 열린선원 주지 법현 스님은 “스님은 수행과 교화에 전념하고 재정운영은 신도를 중심으로 한 운영위원회가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청빈청부(淸貧淸富, 스님들은 청빈하고 사찰은 깨끗한 자산을 가져야 한다)'를 강조했다.

남방불교의 대표적인 미얀마의 경우 스님들이 돈을 만지는 것 자체가 파계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돈은 오로지 재가에 의해 운용되어지고 스님들은 수행에만 전념한다.

시주금을 정기적으로 내게 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신도들이 원찰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과 교육도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 홍은동 옥천암 주지 정범 스님은 “대개 불자들은 한 사찰에만 다니지 않고 5~6곳의 사찰에 이름을 올려놓아 사찰 입장에서는 신도로 규정하기 힘들다”면서 “시주문화 개선에 앞서 원찰 한 곳을 정해놓고 다닐 수 있도록 유도해 소속감을 높여주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익사업 통한 재정안정 노력 필요

중국 상해에 있는 100년 전통의 선종 사찰 옥불사 스님들은 상해 자오퉁(交通) 대학에서 경영과 마케팅을 가르치는 ‘불교 사찰 경영학 박사'과정에 등록해 공부하고 있다. 중국에선 옥불사처럼 참선과 경영 모두에 힘 쓰는 사찰을 가르켜 ‘선상(禪商) 일치 사찰' 이라고 부른다.

중국 무술의 본산으로 일컬어지는 소림사는 자체 프로그램으로 재정난을 타개한 성공사례. 10여 년 전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소림사는 무술시범 행사를 유로화하고 식품회사를 만들어 채식주의자를 겨냥한 야채 떡을 출시해 재정문제를 해결했다. 소림사 방장 스융신 스님은 “사찰도 기업 정신을 지녀야 한다”며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통해 종교와 문화를 널리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장례문화는 화장이 주를 이루고 전반적으로 사찰에서 맡아 진행된다. 그래서 사찰의 주 수입원은 납골당에 관한 비용. 300기 이상이 안 되면 사찰 운영이 힘들다는 말도 있다. 또 ‘호신부' 등 부적 같은 것을 좋아하는 일본의 사회적 풍토도 사찰 재정의 일익을 담당한다. 하지만 지방 사찰이 폐사 되는 등 지금까지의 수입원은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에 일본에서도 새로운 재정확보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코묘지(光明寺)는 스님들이 카페 호스트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간 요가 클래스와 디스코 파티, 사찰 음식축제 등을 열어 신세대들을 절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수익사업을 통한 재정확보에 대해 사회 일각에서는 수행자들이 돈 버는데 너무 집착한다는 상업화 비난이 있다. 또 올 여름 광동성에 있는 광효사, 법통사, 남산사 등 사찰 승려들이 집단으로 매춘부와 성관계를 맺는가 하면, 몇몇 스님은 고급 자동차를 구입하는 등 불교계가 부패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중국 사찰들의 재정 안정 성공사례을 보고 불교적 사상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보험, 카드, 실버타운 운영 등 수익사업을 벌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멀리 내다보고 비신도에게도 이익을 줄 수 있는 사업을 구상해야 한다는 문제점 지적되고 있다.

김포 용화사 주지 지관 스님은 “사찰운용의 정의가 우선된 수익사업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세속적인 수익사업이 아닌, 스님들의 수행 공간 일부만 제외하고 일반인들에게 사찰 전부를 공개해 수행·체험의 공간으로 만드는 등 지역주민·일반대중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고 주장했다.

시주·보시 개념 바로 잡아야

스님 뿐만 아니라 신도 교육을 통한 보시와 공덕의 올바른 개념 정립도 시급한 문제로 꼽히고 있다. 한국 불교는 아직 기복적 성향이 강하다. 《금강경》에서 육바라밀 중 으뜸으로 보는 것이 보시바라밀이다. 스님들은 “보시바라밀에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주었다는 의식조차 없는 베품)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내 소원'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보시가 주를 이룬다. 이는 신도들이 내는 시주금이 사찰재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다보니 스님들이 법회에서 “보시를 많이 해야 소원도 이뤄지고 힘든 일도 쉽게 넘길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한 원인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관태 살림 대표는 사찰 재정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서는 “사찰과 불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복지, 장학사업 등 사회와 빈자에 기여할 수 있는 의미있는 공익적 사업을 투명하고 고정적으로 펼쳐야 한다”며 “이런 사회 공익사업에 자신의 시주, 보시가 사용된다는 생각이 신도들의 의식변화를 불러와 진정한 보시로 이끌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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