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 동화같은 감동
이기심 없는 계산법
모든 이 마음 녹이는 善 

지극한 선(善)에는 당할 자가 없다. 방긋방긋 꽃 같은 아기의 웃음에 근엄한 어르신의 표정이 한순간에 허물어지고, ‘삐뚤어질 테다’를 외치던 중2도 주인무덤을 떠나지 못하는 강아지를 보며 텔레비전 앞에서 눈물을 훔친다. 우리를 무장해제 시키는 존재들에게서 모든 생명에 깃든 불성(佛性)을 엿보게 된다. 근엄한 표정이 무너진 어르신과 눈물을 훔치는 녀석에게서, 또한 우리들 안에 있는 지극한 선을 만난다.

얼마 전 베트남 중부지방을 다녀왔다. 그곳의 1번 국도는 남으로 호치민과 북으로 하노이를 잇는 대동맥이다. 화물차와 버스·승용차가 달리는 고속도로지만 왕복2차선에 불과하다. 길 양쪽으로 마을이 자리하고 있어 아이들은 국도를 넘나들며 동무와 만난다. 우리를 태운 버스가 그곳을 달리던 중에 갑자기 가이드가 앞을 보라고 했다. 대여섯 마리의 소떼가 느릿느릿 길을 건너는 중이었고, 우리는 모두 긴장하여 운전기사에게 ‘스톱’을 외쳤다.

그때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앞장선 소가 길 중앙에서 우리차를 노려보며 서 있다가, 나머지 소들이 모두 건너자 그제야 자신도 길을 건너는 게 아닌가. 우리는 모두 차창에 매달려 소떼를 뒤돌아봤고 가이드는 늘 있는 일이라 했다. 이곳의 소는 자기들끼리 수시로 길을 넘나들며 풀을 뜯어먹으러 다닌다. 중앙에 섰던 소는 아빠소이고, 가족이 무사히 길을 다 건널 때까지 버티고 서서 차를 노려본다는 것이다. 가이드는 “아빠소가 마지막으로 길을 건너면서 다시 차를 쳐다보는데, 그건 고맙다는 인사”라는 말을 덧붙였다.

버스에 탄 이방인들에게 감동의 눈물과 웃음이 동시에 피어올랐다. 가족을 보호하려 온몸으로 우뚝 서서 거대한 차를 막아선 아빠소. 그 순간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아 우리의 베트남여행은 더 따뜻한 마음과 시선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각자 한국으로 돌아가 펼쳐내는 여행이야기마다 아빠소가 등장하지 않았을까. 감동의 시간이 많아질수록 내 안의 불성과 더 자주 만나게 되고, 이러한 공감이 확산될수록 사바세계 또한 조금씩 정토와 가까워질 것이다. 우리의 삶에 동화의 감동이 필요한 이유이다.

혜월(慧月) 스님은 그러한 감동을 주는 대표적인 분이다. 천진한 성품과 무소유로 널리 알려진 스님은 가는 곳마다 땅을 일구고 경작하는 ‘일하는 스님’으로도 이름 높다. 어느 해 스님은 십여 년을 모아 논 열 마지기를 갖게 되자, 그 논을 팔아 산등성의 땅을 사들여서 개간을 시작하였다. 땅을 파고 돌을 캐어다 둑을 쌓는 데 많은 돈이 들어 열 마지기를 팔아 겨우 다섯 마지기의 논밖에 만들 수가 없었다.

일을 마치는 날, 스님은 희색이 만면하였다. “올해는 참으로 좋은 해이다. 논을 다섯 마지기나 벌었구나.”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었고 젊은 제자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스님도 참 딱하십니다. 다섯 마지기 손해 보신 것이지 어떻게 다섯 마지기를 번 것입니까?” “무슨 말이냐. 논 열 마지기는 아랫마을 김서방이 사서 잘 짓고 있으니 좋고, 여기에는 전에 없던 다섯 마지기 논이 새로 생겼으니 전체로 보면 다섯 마지기 번 게 아니냐.”

중생의 계산으로는 분명 잃은 것인데, 혜월 스님은 번 것이라 한다. 전체로 보면 열 마지기에서 열다섯 마지기가 되었으니 다섯을 벌었음이 분명한데, 중생은 다섯을 잃었다고 한다. 스님은 더하고 빼는 셈하기에서도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일깨워 감동을 주었다. 스님의 참다운 계산법에 무장해제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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