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란 속 이별, 관음보살 가피로 재회 

 

명나라 때 소주 땅 황생이라는 사람은 아내 안 씨와 금슬이 좋았는데, 어느 해 병란(兵亂)을 만나서 부부가 서로 손을 잡고 피난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다 캄캄한 밤, 어느 마을에 이르자 정체를 알 수 없는 병사들이 나타나 보이는 사람은 모두 칼로 내려치고 있었습니다.

“살려주세요!”

“악!”

사람들의 신음소리와 비명소리가 가득했습니다. 두 사람은 우선 살기 위해 그만 손을 놓고 말았습니다.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두 사람은 오직 살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남편은 동쪽으로 아내는 서쪽으로 내달렸던 것입니다.

아내는 눈물을 흘리면서 혼자 도망을 가다가 마침 산길 옆 성황당이 보이므로 급하게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인기척이 들려왔습니다. 아내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아 자신도 모르게 외쳤습니다.

“관세음보살님! 저를 살려주세요!”

아내가 그렇게 외치며 깜짝 놀라 막 돌아 서려고 하는데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부인 겁내지 마시오. 저는 스님입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부처님 제자인 제가 어찌 거짓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극악무도한 병사들을 피해 오신 것 같은데 이제 안심하십시오.”

아내는 그제야 마음을 놓고 들어가서 스님에게 합장을 하였습니다.

“지금 움직이면 동서남북을 분간할 수 없어 오히려 위난을 당할 수 있으니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난리 중에 그만 남편과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어찌해야 할지요?”

“일심으로 관세음보살님을 외치는 것을 보니 아마도 남편분께서도 무사하실 듯합니다. 남편분도 그렇게 관세음보살님과 부처님을 따르는 분입니까?”

“예. 저희 남편은 항상 〈법화경〉을 독송한답니다.”

“그러면 안심하십시오. 필시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날이 밝았습니다.

다시 스님이 말했습니다.

“전장은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일단 남편을 찾는 것은 뒤로 미루시고 저를 따라오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러나 부인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남편이 없다면 저도 죽은 목숨과 다름없습니다. 저는 전장이 아니라 지옥이라도 갈 것입니다. 어제는 너무 황망한 나머지 남편의 손을 놓았지만 이제는 남편을 찾아 나서야겠습니다.”

“부인의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어제 만난 병사들은 기실 병사들이 아닙니다. 모든 살아있는 사람들을 죽여 재물을 빼앗는 흉악한 산적들입니다. 운이 좋아 남편이 살아있다면 반드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남편을 찾으러 어제의 그 길로 나간다면 부인에게 돌아오는 것은 오직 죽음뿐입니다. 그것을 남편이 원할까요?”

스님이 그렇게 타이르자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동행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젊은 남녀가 함께 길을 가자면 불편함이 많을 것이니, 나의 바랑 속에 남복과 장삼이 한 벌 남아 있습니다. 변복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잠시 생각한 아내는 고개를 다시 끄덕였습니다.

“경황 중이니 그것도 좋을 듯합니다.”

그렇게 남장을 한 아내는 스님의 뒤를 따라 깊은 산 속의 절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한편 황생은 아내를 잃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난리 중에 견디기 어려운 고초를 당할 것이다. 아니면 죽었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그 시체라도 내가 보아야 단념을 할 것이다.”

그는 인근 마을 모두를 뒤졌으나 아내의 행방을 찾을 길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수없는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유리걸식을 하면서 아내를 찾았습니다. 오직 〈법화경〉 독송을 하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3년이란 세월은 속절없이 지나가버렸습니다. 이제는 정말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죽더라도 사랑하는 아내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 마침 절친한 친구가 절강 땅에서 벼슬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대뜸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친구가 높은 벼슬아치인 만큼 그에게 부탁하면 반드시 아내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는 마음이 급했습니다. 그는 병들고 지친 몸을 이끌고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절강으로 가는 어느 해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또다시 무도한 일단의 군사가 몰려와 사공이 배를 젓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황생은 다시 병사들을 피해 숲속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황생이 숨은 후미진 곳 썩은 버드나무 속에 이상한 보자기가 보였습니다. 황생은 얼른 그것을 집어다가 펼쳐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그 보자기 속에는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늘이 나를 불쌍히 생각하고 내려줌이다.”

황생은 뛸 듯이 기뻤습니다. 아내를 찾느라 모든 돈을 탕진한 그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재물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 돈 옆에 역시 이상한 권선문 책자 한 권이 있는데 선남선녀로서 보시한 성명이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황생은 깜짝 놀라며 다시 생각하였습니다.

“내버린 돈이라고 가질 것이 못된다. 부처님을 생각해야지.”

그는 그 나무 등걸에서 잠을 자며 돈 잃은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틀이 지나자 어떤 늙은 비구니 스님이 나타나 주위를 서성거리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황생이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인 일로 그리 슬피 우십니까?”

비구니 스님이 역시 울며 대답했습니다.

“내가 관세음보살님의 화상을 모셔놓고 〈법화경〉을 인출해서 선남선녀에게 법보시도 하여 주고 나는 관음상 앞에서 수지독송하여 볼까하고 각처 시주에게 삼천환이라는 돈을 얻어 가지고 돌아오는 도중에 마침 이곳에 이른즉 난데없는 군졸이 달려오므로 창황망조(蒼黃罔措) 하여 돈이 들어 있는 권선책 보자기를 저 썩은 나무속에 감추어 두고 잠깐 몸을 피하였었는데, 이제 돌아본즉 그 보자기가 없어졌습니다. 무슨 얼굴로 절에 가서 부처님을 뵈오며 시주한 선남선녀의 안면을 대하오리까? 나는 그만 이곳에서 죽고자 하옵니다.”

황생은 빙긋 웃었습니다.

“아니 왜 웃으십니까?”

황생이 보자기를 내놓으며 말했습니다.

“이 보자기를 내가 주워 가지고 이틀 동안이나 주인을 기다렸습니다. 그 주인이 바로 스님이셨군요?”

그러자 스님은 너무 기쁘고 고마워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나의 목숨을 살려준 은혜를 생각하면 차마 이별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있는 절이 이곳에서 이십 리 가량이니 같이 우리 절로 가셔서 하룻밤을 쉬시고, 저는 부처님께 나아가 그대의 선덕을 아뢰며 복을 빌어 드리고자 하옵니다.”

황생은 그렇게 하기로 하고 스님을 따라 갔습니다. 이윽고 날이 저물어서야 산문에 도달하여 스님이 문을 열어 달라고 외쳤는데, 뜻밖에도 대답하고 나오는 사람은 곧 황생의 아내였습니다.

“여보!”

“부인!”

두 사람은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하면서 손을 잡고 들어가 얼싸 안았습니다. 두 사람의 뺨에서 나오는 눈물이 작은 도랑을 이루었지요.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사랑, 그리고 그들을 엮어준 관세음보살님.

성황당에서 아내가 만났던 그 젊은 비구 스님과 썩은 버드나무 밑에서 남편이 만났던 늙은 비구니 스님이 모두 관세음보살님의 화현이라는 사실을 우리 불자님들은 이미 짐작하셨겠지요? 가없는 남편과 아내의 사랑이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와 어우러진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꼭 옛날의 이야기가 아닌 오늘날의 이야기로 수많이 재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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