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든 것을 이긴 자요, 일체를 아는 사람. 나는 모든 번뇌로부터 자유롭고 모든 굴레에서 벗어났노라. 스스로 욕망을 파괴하여 자유를 얻었고 위없는 지혜를 성취하였거늘 누구를 스승으로 삼으랴. 나에게는 스승이 없고 천상에서나 지상에서나 견줄 자 없도다. 나는 이 세상의 성자요, 가장 높은 스승이며 진리를 깨달은 부처이니라. 모든 감정으로부터 고요함을 얻었고 홀로 열반을 증득하였다. 이제 진리의 왕국을 세우고자 베나레스의 카시로 가노니 어둠의 세계 속에서 불사(不死)의 북을 울리리라.” 〈사분율〉제32, 〈증일아함경〉 제14 ‘고당품’ 

며칠 후면 불기2559년 부처님오신날입니다. 불기는 불멸기원(佛滅紀元), 즉 부처님이 열반하신 해를 기점으로 하고 있으므로 부처님은 이를 기준으로 볼 때 2641년 전 이즈음 네팔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부처님은 왕자의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세속의 모든 부귀영화를 떨쳐버리고 출가해 혹독한 고행정진으로 무상정등각을 성취하셨습니다. 이런 직후 깨달음을 전파하기 위해 베나레스의 카시로 가던 도중 길에서 사명외도(邪命外道) 우빠까를 만났습니다. 우빠까는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 여쭈었습니다.

“거룩하신 수행자여! 당신의 모습은 거룩하고 얼굴은 자신감에 빛나십니다. 당신의 스승은 누구시며, 당신은 누구를 벗삼아 공부하시었고, 무슨 법을 믿으십니까?”

이때 부처님이 우빠까의 질문에 대답하신 내용이 앞에 들려드린 게송입니다. 사명외도란 육사외도(六師外道)의 한 분파인 마칼리고살라(Makkhali Gosala)파로 모든 생명체의 운명은 숙명적으로 결정돼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빠까는 부처님의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고개를 저으며 딴 길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올해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우리는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참뜻을 바로 알아 진정으로 가슴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우빠까처럼 진리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어리석게 저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부처님은 우리에게 누구나 불성(佛性)이 있다고 설파하셨습니다. 〈열반경〉에 나오는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이 그것입니다. 불성이란 부처가 될 가능성, 혹은 깨달음의 성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래장(如來藏)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러나 불성을 단순히 부처를 이루는 바탕으로만 받아들여선 곤란합니다. 불성이란 다른 말로 현재의 삶에서 나의 진정한 행복을 성취하는데 필요한 자신만의 능력 또는 소질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러한 개개인의 능력을 일깨워주시기 위한 가르침으로 불성을 강조하셨습니다.

19세기 프랑스의 소설가 발자크는 “불행을 불행으로 끝내는 사람은 지혜가 없는 사람이다. 불행 앞에 우는 사람이 되지 말고 불행을 하나의 출발점으로 삼는 사람이 돼라. 불행은 예고 없이 도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불행을 딛고 그 속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할 힘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발자크가 제시한 ‘새로운 길을 발견할 힘’이 곧 불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성은 자신의 능력과 소질찾기라 해도 무방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어떤 능력과 소질이 있는지 발견하지 못하면 불행하고 어리석은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일찍이 자신에게 어떠한 재능이 있는지 찾아낸 사람은 이를 꾸준히 갈고 닦아 궁극에는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한편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개인의 능력과 소질을 조기에 발굴하기 위해선 국가차원의 지원도 뒷받침돼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흔히 말하는 ‘인재강국 건설’도 개인의 능력을 찾아내 교육을 통해서 인재로 키워내는 사업을 일컫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 해도 갈고 닦는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없느니만 못합니다. 불성을 닦으라는 경전의 말씀도 이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모든 중생은 불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남녀노소·빈부귀천의 구별없이 모두 평등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깨달음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 즉 스스로 현실의 불합리성을 극복하고 자신의 세계를 새롭게 건설하려는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다른 이와의 차별성을 이겨낼 도리가 없다는 점도 확실히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능력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뼈를 깎는 정진과 각고의 노력입니다. 어설프게 자신의 능력만 믿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는 우리 주위에 비일비재합니다.  

부처님의 제자 주리반특에 대해선 불자 여러분도 익히 알고 계실 것입니다. 주리반특은 지적 장애를 갖고 있다 보니 주위의 놀림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아무리 쉬운 진리의 말씀도 깨닫지 못하자 부처님은 ‘먼지를 털고 때를 없애라’는 한 구절만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리반특은 이 한 구절을 정성껏 열심히 외고 또 외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로소 이 게송이 무명을 비우고 버린다는 의미임을 깨달았습니다. 아라한의 경지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불성을 찾아내는 노력은 곧 사회와 세계를 맑히는 과정입니다. 내 안에 있는 불성을 찾아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참뜻을 기립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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