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복지·교육기관 역할 전통 이어
사회적 기능과 지역민 참여 높여야

▲ 경혜 스님, 김응철 교수, 박문수 교수, 조기룡 교수가 좌담하고 있다.(왼쪽부터 시계방향)

과거 사찰을 비롯한 종교시설은 기도와 수행의 공간이었다. 이같은 종교시설은 20세기 후반부터 변화를 시작해 21세기 문화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종교의 기본인 기도와 수행은 물론 문화·여가공간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대내외적으로 불교 사찰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살피고, 미래에 어떤 역할을 해야할 지를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5월 11일 본지 회의실에서 진행된 좌담에는 천태종 총무원 교무부장 경혜 스님, 김응철 중앙승가대 포교사회학과 교수, 박문수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부원장, 조기룡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가 참여했다. 편집자

김응철(이하 김) : 삼국시대 한반도에 전래된 불교는 국가의 종교로 번영하기도 했고, 모진 탄압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사찰의 역할 또한 변했습니다. 사찰이 과거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부터 얘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 천태종 총무원 교무부장 경혜 스님.

경혜 스님 : 불교 역사 속에서 사찰의 역할을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습니다. 불교가 출발할 때는 현실적 고통을 해결하고 미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이런 대 전제 속에서 불교는 민중들과 함께해왔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때도, 본질을 벗어나 외도를 한 적도 있습니다.

한국불교에서 사찰의 역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것이 ‘당간지주’입니다. 고찰에 가면 당간지주가 있습니다. 이 당간지주의 목적은 사찰이 있음을 알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자기의 목적에 따라 사찰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과거 사찰이 제 역할을 했을 때의 모습은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고민해야 할 부분을 충분히 품고 있다고 봅니다. 어쩌면 왜곡된 불교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조기룡(이하 조) : 사찰의 역할에 있어 분명 과거와는 다른 것이 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과연 변화가 있느냐’라는 의문도 듭니다. 넓게 보면 사찰이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지만, 신도들의 모습이 사찰의 모습으로 비치기도 하니까요. 신도들이 사찰을 찾아오는 이유는 아직도 ‘기복’적인 요소가 강합니다. 불교의 본질은 기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지만, 사찰을 유지하려면 기복을 벗어날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던지고 싶은 화두는 ‘앞으로 사찰의 역할에 있어 양적 성장을 이룬 사찰이 어떻게 지역사회와 공동체를 이루어야 하는가?’입니다. 수행하면서 봉사하는 자세로 양적 성장을 추구하고, 그것이 이뤄졌다면 지역사회에 회향하면서 함께 가야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박문수(이하 박) : 그리스도교(개신교+가톨릭)에는 3대 본질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 종교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들끼리 공동체를 이뤄서 사는 것, 즉 신앙공동체입니다. 셋째는 봉사입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종교는 봉사 부분에 있어 체면치레하는 정도였습니다.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는 한국 종교 일반이 취약했죠. 그리스도교를 제외한 불교나 유교, 천도교가 좀 더 취약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교는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정책, 일제시대에는 일본 불교로 순치시키려고 하는 불순한 의도, 이후로는 기독교 정권에 의해 외풍을 많이 타서 제 역할을 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입니다. 할 수 있는데 안 한 게 아니라 하고 싶어도 못 했던 것입니다. 불교가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때는 1970년대 이후라고 봅니다. 제가 조사한 바로는 불교가 사회적 역할 측면, 즉 사회복지 영역에서는 80년대 이후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130년간 한국사회에서 거의 일방적인 특혜에 의해 성장해 온 그리스도교의 복지사업과는 수평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역할을 고민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건 바람직하고 꼭 필요합니다.

▲ 박문수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원장.

김 : 이웃종교의 종교 본질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불교에도 전법ㆍ신행ㆍ구제라고 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사찰이 이런 것을 안 한 건 아닙니다만,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만큼의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21세기 사찰의 기능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불교는 사회적으로는 호국불교적 역할을 크게 강조했고, 이에 대한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전통사찰 중 상당수는 군사적 시설과 연계돼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북한산 남한산성 주변의 주요사찰 대부분이 승군의 주둔지였다는 겁니다. 조선시대에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했었죠. 사찰이 수륙재를 통해 사회적 헌신을 하는 기능도 컸습니다. 전염병이 돌면 사찰은 병원으로 바뀌었고, 기근이 들면 식량보급소로, 때로는 교육기관으로 전통적인 역할을 삼국시대 이후부터 계속해왔던 건 사실입니다. 문제는 사찰에 종교적 기능이 강화되면서 지난 100여 년 동안은 사회적 기능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부분이 큽니다. 이것이 한국불교가 풀어야 할 당연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조 : 해방 이후 사찰은 생존의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명맥이 끊어지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쳤던 것 같습니다. 양적으로 성장하기에 급급했었죠. 한국불교는 그동안 양적 성장을 많이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단위 사찰로 보면 굉장히 힘든 곳이 많은 것도 현실입니다. 양적 성장에 몰입하다보니 사회적 역할이 한정될 수밖에 없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김 : 한국불교를 이끌어가는 사찰은 상황에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사찰의 특징에 따라 달리 봐야 합니다. 요즘 문화의 시대입니다. 저는 문화포교의 시대라고 하는데, 그런면에서 보면 가톨릭이나 개신교에서는 굉장히 앞서 가고 있지 않나요?

박 : 제일 앞서가는 종교는 개신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문화사목이라고 하는 영역이 있긴 하지만, 불교와 성향이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현대적인 것을 도입하고, 젊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방편으로 활용하려고 할 때, 로마에서 내려오는 장중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성당이 시끄러워지거나 새롭게 시도하는 것에 대해 거부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예를 들면 근래 어느 젊은 신부님이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응용한 ‘성당스타일’을 패러디한 영상을 만들어 동영상 사이트에 올렸는데, 조회수가 많아졌어요. 그런데 얼마 못갔죠. 가톨릭 내에서의 반감 때문이었죠. 가톨릭은 이런 면에서 좀 더디고 전통에 안주하려 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개신교는 탄생부터 지금까지 새로운 환경에 가장 빨리 적응하는 종교입니다. 개신교의 그런 흐름 때문에 가톨릭도 위기의식을 느낍니다. ‘개신교가 젊은이들을 다 흡수하게 되면 우리(가톨릭)가 차지할 젊은이들이 없지 않은가, 뭘 해야 되지 않겠나’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개신교 때문에 그런 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보면 가톨릭의 청년사목이나 불교계의 청년들을 위한 행사들을 보면 개신교를 모방한 부분이 많습니다. 누가 뭐래도 지난 100년을 끌고 온 건 개신교였습니다. 배타적인 성향 때문에 이웃종교들과 문제를 일으키는 건 문제지만, 종교를 활성화시키고 젊게 만든 건 개신교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것 때문에 다른 종교들도 뭔가 해보려고 하는 자극을 받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김 : 가톨릭 교회에서 장례식 치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회적 활동의 한 영역으로 보이는데 어느 정도입니까?

박 : 성당에서 장례식을 치르거나 결혼식을 하는 것은 오랜 전통입니다. 장례를 주관하는 연령회라는 단체가 중심이죠. 지금처럼 젊은 사람 선교가 안 될 때 중년과 노년층을 끌어들이는 데 큰 몫을 하고 있죠. 이번에 교세 통계를 분석해보니 60세 이상 입교한 신자들의 숫자가 40세 이하의 2.5배나 되더군요. 과거에는 불교와 천주교의 신자층이 거의 겹치지 않았는데, 장례문화 때문에 불교로 흡수될 중노년층의 절반 정도가 가톨릭으로 오고 있습니다. 가톨릭이 불교에 가장 위협적인 종교가 된 셈이죠. 가톨릭에서는 장례문화가 일상적인 것이어서 사회적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예산을 적게 받고 자기부담을 높여 복지사업을 못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자기 역할을 하고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활동을 해야하는데, 그런 쪽이 좀 약한 것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15년 전에는 60세 이상의 비율이 12%(500만 기준)였는데, 지금은 560만인데 그 중 25%를 차지합니다. 그 부분을 유념해서 봐야 합니다.

▲ 김응철 중앙승가대 포교사회학과 교수.

김 : 가톨릭은 소규모로 모여서 하는 그룹홈 형태의 단체가 많습니다. 호스피스도 가톨릭에서 먼저 시작돼 지금은 의료복지서비스 영역으로 활용되고 제도화 됐죠. 가톨릭은 그런 분야에서 선구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개신교 교회에서는 문화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이 좋았어요. 과거에 극장 등 각종 전시 문화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던 시기에 교회는 그런 역할을 많이 했죠. 하지만 사찰은 내부 구조상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경혜 스님 : 천태종은 일반 신도들의 신행 생활을 위한 공간 확보가 필수적이었습니다. 사찰을 지을 때 신도들의 삶의 거리와 가능한 가까워야 한다는 판단이었죠. 시내에 위치해야 하고, 그들이 한꺼번에 모여서 신행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반드시 제공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사찰을 지을 때 기본적으로 여러 건물을 짓기보다는 하나의 공간이라도 넓게 만드는데 신경을 썼죠.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을 먼저 염두에 둔 거죠. 대중들과 문화활동을 하고 싶어도 공간적 제약이 따르기 마련인데 이에 대한 해결책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하드웨어만으로는 역부족이었죠. 소프트웨어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자기반성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현재는 소프트웨어를 개선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조 : 산사음악회로 대표되는 불교문화는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장점은 산사의 마당을 활용한다는 겁니다. 아쉬운 점은 대부분의 산사음악회가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하다는 겁니다. 나오는 가수도 프로그램 진행순서도 거의 비슷합니다. 산사음악회가 지역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축제가 됐으면 합니다. 가깝게는 불자들 중에서도 재능이 있는 분들이 있고, 지역 청소년들도 공간이 없어서 문화활동을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사찰을 문화축제의 공간으로 만들어가면 어떨까 싶어요.

박 : 개별교회나 여유있는 성당에서는 여유 공간을 넓혀서 카페로 활용합니다. 도서관도 제공합니다. 자체 프로그램을 저렴하게 또는 무료로 운영하는 곳이 있습니다만, 문제는 사람들이 잘 안온다는 겁니다. 그 이유를 살펴봤더니 ‘포(선)교의 의도’가 있다고 본 겁니다. 이제는 문화를 포(선)교의 수단으로 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종교기관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 있으면 사람들은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죠. 정말 그런 역할을 하고 싶으면 외부에 중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곳에 센터를 지어서 해야 합니다. 명상이나 템플스테이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포교환경 자체가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한국사회에서는 정공법으로는 안 된다는 뜻이지요. 우회적인 방법도 자기 색깔을 내면 안 됩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내놓는다는 자세가 아니면 문화포교나 문화사목은 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개신교나 천주교가 이를 먼저 경험해봤습니다. 불교는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경혜 스님 : 종교적인 색채를 가지고는 포(선)교가 어렵다고 하지만, 불교는 아니라고 봅니다. 불교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색깔에만 충실하면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정신적 피로를 느낀 이들이 종교에서 에너지를 회복하려 합니다. 희망의 메시지를 구하고자 하는 그들에게는 불교적인 정서가 필요합니다. 모범 선례가 혜자 스님이 주도하는 108산사순례기도회입니다. 단순히 108산사를 순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사람들이 생산한 농산물 장터를 여는 등 그들과 소통합니다. 불교의 장점을 지역민들에게 어필하는 거죠.

김 : 현대인의 문화소비욕구가 과거에는 보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자기가 체험하고 그 속에서 감동을 느끼고자 하는 욕구로 바뀌었습니다. 다행히 불교는 체험중심의 문화소비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긍정적입니다. 문제는 종교문화를 넘어 일반문화까지 체험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얼마나 갖추고 있느냐입니다. 각 종교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 조기룡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조 : 연구를 위해 템플스테이에 참여를 많이 했습니다. 반가웠던 것은 생각보다 템플스테이에 참가하는 연령이 젊다는 것이었죠. TV 예능프로그램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아쉬웠던 점은 진행자가 스토리텔링을 못해주는 거였습니다. 사회 각 계층에 맞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하고, 이를 담당할 전문 운영자들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김 : 불교의 측면에서 보면 수행이라고 하는 강점이 있는데, 철저한 수행을 중심으로 누구든지 수행할 수 있도록 열어놓고 그 체험 프로그램을 다양화해서 경험할 수 있게 한다면 미래의 포교 전략으로는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수행 포교를 할 때 불교가 세련되게 연구를 한다면 기회가 오지 않을까요. 모범 사례로는 어떤 곳이 있을까요?

: 파주 운정성당은 신도들에게 성당 내의 어떤 단체든 간에 가입하도록 하고 유도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 분야, 탈북자 돕는 통일 분야, 외국인 노동자 지원 단체 등 6개 그룹으로 나눠져 있는데, 성당 나오는 것 외에 한 달에 한 번씩 자기의 돈과 시간을 투자해 활동하도록 하는 겁니다. 운정성당에 매주 나오는 사람이 800명 가량 되는데. 700여 명이 단체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활동이 몇 년 지나니 지역 내에서 성당의 이미지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지역사회와 관계가 개선된 거죠. 포(선)교를 떠나 가난한 사람 등 사회적 약자들을 돌볼 때 타종교인이나 무종교인도 느끼는 바가 있어 개종하기도 합니다. 종교가 사회적 역할을 할 때 효과가 있다고 봅니다.

경혜 스님 : 배고픈 자에게 빵을 주는 것이 복지인지, 그 사람이 빵을 먹을 수 있도록 의지를 심어주는 게 복지인지, 이에 대한 원천적인 고민을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천태종 내의 모범사찰로는 부산 삼광사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가 삶에 희망의 메시지를 찾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고. 그것을 축적해 역량을 키웠죠. 삼광사는 종단이 나아갈 바를 알려주는 롤모델 중 한 곳입니다. 복지 시스템이나 역량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역량을 쌓는데 치중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느 시점에서 리턴 포인트를 잡느냐가 문제인데, 저희 종단에서는 꾸준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조 : 10년 전 조계종에 수행 프로그램 우수사찰이 있었는데, 현재도 잘 진행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분야별로 반 정도는 아직도 운영하고 있더군요. 반은 사라졌습니다. 왜 그런가 살펴봤더니 불자 수행 프로그램이 체계화 돼 있지 않았던 겁니다. 주지 스님에 따라서 달라진 거죠. 그러다보니 지속적 운영이 어려웠죠. 특히 많은 수행 프로그램이 수행 본연의 목적이 아닌 신도를 모으기 위해 사용됐기 때문에 지속성을 갖지 못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김 : 속초 신흥사와 포교당 원각사가 모범사례입니다. 원각사는 매년 지역 노인들에게 일요일마다 국수를 삶아 대접하는 봉사자인 국수행자를 모집합니다. 어떤 사람은 끓이고, 어떤 사람은 배식하는 등 역할이 나눠져 있죠. 그리고 올해로 5년째 가족행복문화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1박 2일 간 치러집니다. 신흥사는 몇 년 전 설호축구단을 창단한 데 이어 이번에는 설호야구단을 만들었죠. 사람들이 일요일마다 사찰에 안 가고 생활체육을 하러 간다는 것에 착안해, 사찰에서 생활체육 동호회를 만들어 후원하는 거죠. 요즘 불교계에서 관심 가져야할 분야가 생활체육입니다. 행복문화축제에는 축구팀 80개팀, 야구팀 70개팀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입니다. 참여하는 분들이 30대 이상인데 아이들도 오다보니 그들에 맞는 프로그램도 만들어 운영하고, 군인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죠. 이 때문에 속초ㆍ양양ㆍ고성지역의 포교지형이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모범사례는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김 : 앞으로 종교시설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박 : 천주교인의 평균 나이는 46.5세 정도입니다. 매주 미사에 참석하는 신도의 평균 나이는 15세이상 올라가죠. 1980대 이후 외부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제는 내부로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대내외적 역할이 동시에 요구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종교인들은 기복성향이 굉장히 강합니다. 수행과 봉사는 많지 않고, 기복이 과잉 비대한 상태죠. 이를 바꾸기 위한 여러 활동이 있었지만 아직도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수행과 봉사가 균형을 맞추며 가야합니다. 이 숙제를 푼다면 어느 종교든지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조 : 교단 내적으로는 수행에 기반한 정체성 확보가 필요합니다. 그게 종교의 본질이니까요. 외적으로는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공동체로 가야 합니다. 그것이 양적 성장을 회향에 질적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길이니까요.

경혜 스님 : 철저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를 통한 성취를 이뤄간다면 만족감이 높아지겠죠. 그러나 이것이 사회와 연계되지 못한다면 성취감이 반감될겁니다. 성당의 사례처럼 지혜와 복덕을 함께 구족해야 합니다. 사찰의 미래는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해 고민해야하는 문제가 아니라 이미 갖고 있는 불교의 본질을 사장시킨 것에 대한 반성하고 더불어 갈 수 있는 공동체로서의 공간으로 만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김 : 사찰 내적인 신행활동도 중요시해야 하지만 사회적 실천도 간과해선 안 됩니다. 이 둘을 함께할 수 있도록 사찰의 기능이 강화되면 좋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종교간의 벽도 허물어지고 있고, 대화가 더 풍요로워져야 하고 서로의 발전적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한 종교가 주도하는 시대는 갔습니다. 종교 간의 벽을 낮추고 서로 대화 소통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동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종단에만 매몰돼 있는 사고의 틀을 깰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찰 울타리부터 좀 낮춰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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