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자를 안아보던 선인이 눈물을 ‘주르륵’



아시타 선인이 어린 태자를 안아 제자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고집 센 어린 제자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태자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태자는 어린 제자를 보고 싱긋 웃어주었습니다. 순간 어린 제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히말라야 깊은 산속.

그곳에서 아시타 선인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수도에만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열 몇 살 남짓의 어린 제자와 함께였습니다. 아시타 선인은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현자였고, 또한 하늘나라에까지 그 위명을 떨쳤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그는 지상의 그 어떤 사람도 갖지 못한 신통력은 물론이고, 앞을 보는 뛰어난 예지력까지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어린 제자는 달랐습니다. 그는 조그만 왕국의 국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리지만 온갖 책과 철학에 박식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린 그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당시 많은 현자들이 히말라야 골짜기에서 저마다의 수행 방식으로 수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각 수행처를 돌며 유행을 하였는데, 서로의 도력을 시험하는 일종의 도력 경진대회였던 셈이지요.

아시타의 어린 제자는 늘 스승을 자랑삼고, 자신의 학식을 자랑삼아, 위세를 부렸습니다. 다른 또래 제자들의 기를 꺾기 위해 온갖 허세를 부렸습니다. 눈을 감고 명상에 드는 모양, 팔을 뻗어 하늘을 가리키는 요가의 모양, 심지어 헛바람을 일으키며 도술을 하는 흉내까지 냈습니다.

“우리 스승님을 따를 사람이 있으면 나와라!”


“내가 우리 스승님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제자다!”

그런데도 아시타 선인은 빙긋 웃고만 있을 뿐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귀여웠던 것이지요. 아시타 선인은 제자가 재롱을 떨 때마다 손뼉을 치며 중얼거렸습니다.

“좋구나, 좋아!”

그러는 동안 어린 제자의 오만은 점점 더 커져갔습니다.

어느 날 아시타 선인이 혼자 설산 깊이 들어간 사이, 한 현자가 아시타 선인을 찾아왔습니다.

“너의 스승님은 어디 계시냐?”

하지만 어린 제자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현자는 다시 물었습니다.

“너의 스승님은 어디 계시냐?”

“......?”

몇 번을 물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급기야 현자의 온화한 얼굴은 험상궂게 변했습니다. 그런데도 어린 제자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늘 자신의 뒤에는 이 세상 누구도 두려워 않는 스승님이 계셨던 것이지요.

“우리 스승님은 당신 같은 사람은 볼 시간도 없을뿐더러, 지금은 저 멀리 하늘나라에 계십니다. 기어이 우리 스승님을 만나시려거든 저 푸른 허공으로 올라가 보시지요?”

현자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 놈!”

“저 놈!”

어린 제자는 감히 현자와 막말을 하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물론 선정에 든 아시타 선인은 그 광경을 보고 웃음 짓고 있었습니다. 그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세상의 현자여, 그만 돌아가시오!”

하늘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움직일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현자는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표표히 물러났습니다.

“히히히, 거봐요. 여기가 어디라고……. 역시 우리 스승님은 이 세상 최고야!”

바로 그 즈음 선정에 든 그는 천신들이‘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했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시타 선인은 곧 선정에 들어 삼십삼천의 신들이 천의를 흔들면서 부처님의 탄생을 찬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기뻐하며 어린 제자에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선정에 다시 들어 부처님 탄생을 기뻐하는 하늘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린 제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린 제자는 물었습니다.

“스승님, 신들이 이토록 기뻐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왜 천의를 흔들고 있습니까? 아수라와의 싸움에서 신들이 이기고 아수라가 졌다 해도 몸의 털이 서도록 저렇게 기뻐하지는 않았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희유한 일을 보았기에 신들은 그와 같이 기뻐합니까? 스승님, 나의 의심을 속히 풀어 주십시오.”

그 때 아시타 선인 대신 신들이 대답하였습니다.

“비할 데 없이 훌륭한 이승의 보배이신 보살이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이승에 태어나셨습니다. 룸비니의 석가족 마을에. 때문에 우리들은 기뻐하고 있습니다. 모든 중생 가운데 가장 높으신 이, 수소[牛]와 같은 사람, 생명을 가진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높으신 이, 수소와 같은 사람, 생명을 가진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높으신 이는 멀지 않아 선인이라고 이름 하는 숲에서 법륜을 굴리실 것입니다.”

아시타 선인은 어린 제자의 머리를 쓸어주면서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을 뵈러 가자!”

그러나 어린 제자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은 스승님이십니다. 이제 갓 태어난 어린 아이가 어찌 스승님보다 우월할 수 있습니까?”
“단 한 분, 그 분은 장차 너의 스승님이 될 것이다.”

아시타 선인은 한사코 고집을 부리는 제자를 데리고 카필라의 왕궁을 찾아갔습니다. 덕망 높은 선인이 찾아온 것을 기뻐한 정반왕은 곧 태자를 보도록 허락하였습니다. 백 살도 훨씬 넘어 백발이 성성한 선인은 태자를 팔에 안고 그 얼굴을 이모저모 유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응당 곁에 있던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그 모양을 지켜보았습니다. 한참 동안 말없이 태자의 얼굴만을 들여다보던 선인이 갑자기 눈물을 흘렸습니다. 왕을 비롯하여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어린 제자는 또 다시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 누구도 자신의 스승님을 능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스승님, 눈물을 거두세요.”

그러나 아시타 선인은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왕은 참다못해 선인에게 물었습니다.

“태자를 본 사람마다 크게 기뻐하며 야단인데, 선인은 왜 말 한마디 없이 울기만 하시오? 어디 그 까닭을 속 시원히 말해 보시오.”

그제야 선인은 입을 열었습니다.

“대왕님, 염려하실 일은 아닙니다. 이 분은 범상한 분이 아닙니다. 귀를 기울여 들으십시오. 이 왕자는 언젠가는 최고의 깨달음에 도달할 것입니다. 최고의 청정한 경지를 터득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고 그들의 이익을 위하여 법륜을 굴리실 것입니다. 그가 설하는 청정한 가르침은 세상에 널리 퍼질 것입니다. 제가 슬퍼하는 것은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아 부처님의 출현을 못 보게 된 것이 한스러워 그럽니다. 태자는 장차 모든 중생을 구제할 부처님이 되실 분입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한다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드문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너무도 늙었습니다. 태자가 도를 이루어 부처님이 되실 그때까지 살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슬퍼서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 데리고 온 어린 제자에게 간절히 당부했습니다.

“만약, 후에 눈뜬 이가 있어 깨달음을 얻어 진리의 길을 걷는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 너는 그곳을 찾아가 가르침을 묻고 그 스승 밑에서 청정한 행을 닦아라.”

“저는 아닙니다.”

어린 제자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시타 선인이 어린 태자를 안아 제자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순간 휘황한 광채가 사방을 밝혔습니다. 사람들은 놀라 그 자리에 엎드렸습니다. 그러나 고집 센 어린 제자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태자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태자는 어린 제자를 보고 싱긋 웃어주었습니다. 순간 어린 제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아, 부처님!”

그 어린 제자가 바로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의 한 분인 변론제일 가전연 존자입니다. 아시타 선인의 외조카로, 부처님은 훗날 법다움과 법답지 않음을 바르게 가려내는 변론은 가전연이 제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 아시타 선인, 가전연 존자, 이 세 분의 만남이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로 남겨진 부처님오신날의 5월. 온 세상이 축복으로만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우봉규 작가는 〈황금사과〉로 동양문학상을 받은 뒤 〈객사〉로 월간문학상을, 〈남태강곡〉으로 삼성문학상을, 〈갈매기야 훨훨 날아라〉로 계몽사 아동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희곡 〈눈꽃〉이 한국일보사 공모 광복 50주년 기념작에 당선되면서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2001년 2002년 서울국제공연제 공식 초청작 〈바리공주〉, 〈행복한 집〉 발표 이후, 우리나라 희곡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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