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서 어르신에 무료급식 봉사
“작은 정성 모아 365일 따뜻한 점심 대접”

▲ 강위동 원각복지회 후원회장은 탑골공원 원각사 무료급식소 월 운영비 1500만원을 조달하기 위해 매일같이 지인들을 만나 급식소 홍보를 한다.

유복자로 태어나 자수성가 매달려
뒤늦게 귀의한 불교, 마음 넓어져

“남편 잡아먹고 무슨 낯짝으로 여길 찾아온 게냐? 썩 나가거라!”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읜 며느리에게 시아버지를 비롯한 시댁 식구들은 냉담했다. 남편이 세상을 뜬 게 며느리 탓은 아니었지만 시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먹먹한 가슴을 달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딸만 낳아 이혼시키려고 했던 시아버지에게 “집사람 잘못이 아니다”며 감싸줬던 남편의 빈자리는 그렇게 컸다.

서울 탑골공원에서 무료급식 봉사를 하는 강위동(72) 원각복지회 후원회장의 어머니 이야기다. 유복자이자 장남으로 태어난 강 회장은 아버지 얼굴을 사진으로만 보며 자랐다. 부모가 함께 일본에서 공부를 했는데 아버지는 일본군에 징집됐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한국에 돌아온 어머니는 시댁을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 손주들을 위해 도와줄 법도 했지만 시아버지는 단호했다. 이후 어머니는 구멍가게를 하며 자식들을 키웠다. 그러면서도 장남인 강 회장에게는 ‘애비 없는 자식’이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엄하게 대했다.

“어머니께서는 대나무 회초리를 항상 액자 뒤에 숨겨 놓으셨어요. 제가 뭔가 잘못했을 때는 그 회초리로 종아리를 사정없이 때리셨죠. 새벽에 일어나시면 제 이불을 걷어버리고 ‘나가서 길이라도 쓸어라’라고 말씀하셨어요. 아버지 없이 키운 자식이라는 소리 안 듣게 하려고요.”

어린 강위동은 성실함과 예의범절을 강조한 어머니 덕분에 이웃어른들에게 많은 칭찬을 들으며 자랐다. 하지만 자신의 성실함만으로는 어려운 가정형편을 해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마음속에는 늘 ‘자수성가’에 대한 꿈이 박혀 있었다. 

등산하며 불교 가까워져

강 회장은 성당 부속유치원을 다녔다. 고등ㆍ대학생 때는 하숙을 했는데 집주인이 교회 집사였다. 이런 인연으로 교회도 다녀봤지만 자신과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이모들의 권유에 못 이겨 성당을 다녔을 때도 함께하지 않았다.

여행을 좋아했던 강 회장은 20대 초, 무전여행 도중 논산에 있는 한 교회에 들러 하룻밤만 묵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왜 여길 왔냐”는 냉대뿐이었다. 종교에 한 걸음 다가가볼까 하던 마음이 사그라졌다. 이후 주야장천 산을 다니기 시작해 산악인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산들바람과 새소리에 취해 산을 오르다보면 늘 절과 마주하게 됐다. 건축양식 같은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그였지만 전각의 유려한 처마나 창살무늬 등을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저 산이 좋아 다니다가 불교에 관심과 호감이 생겨버렸다.

“저는 그때 산악인이었어요.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경쟁해야 하는 스포츠와 달리 사람을 배려한다는 게 마음에 들었어요. 특히 산은 자기성찰의 기회를 줍니다. 산에 머물 때는 그 시간동안 나와 가족, 지인에 대해 많은 것을 돌아보게 됩니다. 어쩌면 불교 사상과 많이 닮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요즘도 산에 가면 친구들한테 20분은 묵언 산행을 하자고 권유하고 있어요.”

강 회장이 제대로 절에 다니기 시작한 건 30대 중반 무렵,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여 불자회를 결성해 함께 창립멤버로 활동하면서부터다. 설악산에서 산악대장ㆍ대원으로 인연을 맺은 아내와 한 달에 한 번씩 사찰 순례를 다녔다. 이때까지만 해도 강 회장은 불교가 친숙했을 뿐, 신심이 깊진 않았다. 반면 아내는 점차 불교 심취해 서울 목동에 위치한 법안정사에서 꾸준히 신행활동을 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며 경제적 성공에 한 걸음씩 다가가던 그가 불교에 본격적으로 빠져든 건 한참 뒤다. 중년의 나이에 심곡암 주지 원경 스님을 만난 게 계기가 됐다. 그의 눈에는 원경 스님의 행동 하나하나가 ‘자비행’으로 보였다.

“저는 50대에 불교에 귀의했으니 늦깎이 불자죠. 그전까지 절에 많이 다니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푹 빠지지 못했어요. 그러다 심곡암에서 원경 스님을 뵙고 많은 걸 느꼈습니다. 일일이 다 설명할 순 없지만 불교가 어떤 것인지를 몸소 보여주시는 것 같았어요.”

원경 스님의 행동은 ‘자수성가’를 목표로 앞만 보고 달려온 그에게 ‘베풂’의 소중함을 일깨워줬다. 강 회장은 이후 <명심보감> ‘계성편(戒性篇)’에 나오는 ‘인일시지분 면백일지우(忍一時之忿 免百日之憂)’를 매일 아침 되새겼다. ‘순간의 화를 참으면 100일의 근심을 면한다’는 가르침은 그가 마음을 넓게 쓰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무료급식소 운영비 조달

“얼마 전 본 영화 대사처럼 ‘90살까지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살다 죽는 것보단 34살에 죽더라도 오랫동안 기억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봐요.”

최근 개봉한 영화 ‘위플래쉬(Whiplash) ’에서 주인공 앤드류(마일즈 텔러 분)가 친척들과 말다툼을 벌이면서 ‘성공’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대사다. 강 회장은 요즘 이 대사를 화두처럼 품고 있다. 고희를 넘긴 그는 이 대사를 나 자신만을 위한 윤택한 삶보다 남에게 도움이 되는 나누는 삶을 사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5년 전부터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 봉사를 해오고 있다. 그러던 중 최근 원각사 보리 스님의 건강 악화로 무료급식이 중단 위기에 처하자 이를 이어나가기 위해 마음을 냈다.

“원각사 무료급식 봉사를 매달 한 번씩 5~6년 정도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문을 닫는다는 얘기가 들리더라고요. 그것도 다른 스님이 이어서 하는 게 아니라 아예 사라진다고 말이에요. 그래서 이 자리에 뭐가 들어오느냐고 물어보니 카페라고 하더군요. 말도 안 되는 일이죠. 마침 나이 먹고 회향을 잘해야 하는데 어떤 일을 할까 고민하던 때여서 제가 나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3월 초, 22년간 원각사 무료급식소를 맡아온 보리 스님은 건강 악화로 인해 더 이상 운영할 수 없게 됐고, 결국 건물주는 카페를 하겠다는 사람과 임대계약을 맺었다. 강 회장이 계약자를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니 “위약금 2000만원을 달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영리사업이 아닌 복지활동을 위한 것이라며 부탁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비용도 비용이었지만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고민하던 강 회장은 원경 스님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그러자 스님은 흔쾌히 손을 내밀었다. 먼저 무료급식소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서울시 비영리 민간단체 ‘원각복지회’를 조직하고 후원자 모집에 나섰다. 더불어 임대보증금과 위약금, 리모델링비 등을 심곡암에서 부담하며 적극 지원했다.

강 회장은 무료급식소 기반이 마련되자 매달 운영비 1500만원을 책임지기로 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산악인으로 활동하며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게 무료급식소를 알려 후원을 이끌어내고 있다. 강 회장은 혹시라도 후원이 부족해 운영비가 모자랄 것을 대비해 사비를 털어 마련해놓기까지 했다. 지난 4월 1일 원각사 무료급식소가 문을 다시 여는 데 그의 공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가장 큰 걱정은 일시적으로 반짝했다 끝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죽을 때까지 10년이고 20년이고 열심히 해야죠. 정기후원이 아직 자리 잡지 못해서 매달 1500만원을 모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잠 못 드는 날도 있어요. 그래도 아내는 저에게 정말 잘한 일이라며 용기를 북돋아줍니다.”

이와는 별도로 강 회장은 나눔 활동도 펼쳐오고 있다. 그는 사업가이기도 하지만 세계 고산(高山)들을 오른 전문 산악인이다. 그동안 일본 북알프스(3190m)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 등을 올랐다. 2006년에는 60대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히말라야 칼라파트르(5550m)에 아내와 함께 올라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강 회장은 히말라야에 오르기 전 국내기업들의 사기(社旗)를 받아 챙긴다. 그리고 정상에 올라 깃발을 꽂아 기업 홍보를 해준다. 이를 대가로 받은 금액은 ‘자비를나르는수레꾼이’나 ‘엄홍길휴먼재단’ 등에 전액 기부하고 있다. 기부금 영수증도 자신의 이름이 아닌 기업으로 끊어 보낸다. 일종의 무주상보시를 실천하는 셈이다. 

사회의 지속적 후원 절실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은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어르신들을 돕기 위한 보시행이다. 강 회장이 여기에 뛰어든 것도 인생의 황혼기에 바른 회향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이런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천시일반(千匙一飯)’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 이상 기부하면 가입되는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가 있잖아요. 이렇게 큰돈을 기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꾸준하게 봉사하고 후원금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명절이나 연말에만 집중하지 않고 사람들이 평소에 돕는 것 말이죠. 원각사 무료급식이 십시일반이 아닌 천시일반으로 운영됐으면 좋겠어요.”

원각사 무료급식소는 강 회장과 심곡암의 지원이 있어 당장 문제가 생길 일은 없겠지만 정기후원자를 조속히 확보하지 못한다면 운영에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다. 현재 원각복지회에 정기후원을 하고 있는 사람은 100명 안팎. 월 1500만원의 비용이 충당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정기후원자 1000명 정도 힘을 보태야 한다. 게다가 앞서 보리 스님과 무료급식소를 이끌던 자원봉사자 중에 3분의 1이 연로해 그만둔 상황이어서 이를 대체할 봉사인력도 시급하다.

“중국 한시 중에 장구령(張九齡, 678~ 740)의 ‘조경견백발(照鏡見白髮)’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지난날 청운의 뜻 이루지 못한 채 백발노인이 되었구나. 이 몸과 거울 속 그림자가 서로 가여워함을 그 누가 알리오’라는 뜻이죠. 나이 먹은 사람들이 갖는 한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걸 보면서 ‘나는 그리 살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많은 분들이 동참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매일 150~200명의 어르신들이 점심을 해결하고 있는 탑골공원 원각사 무료급식소가 하루 빨리 안정적인 운영을 하기 위해서는 불자들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후원 및 자원봉사 문의 02)762-4044

▲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 심곡암 주지 원경 스님과 자원봉사자들이 배식봉사를 하고 있다.
▲ 원각사 무료급식소 전경. 4월 1일부터 무료급식을 재개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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