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사 진향다도회 찻잎 따기

▲ 진해 해장사 진향다도회 회원들이 장복산 시루봉 등산로에서 찻잎을 따고 있다.

우리나라 차 재배지로는 전남 보성과 경남 하동, 제주도가 손꼽히지만 자연 그대로의 야생차밭은 흔치 않다. 면적은 넓지 않지만 경남 진해에는 야생의 모습 그대로의 차나무 군락지가 있다. 이 차밭은 진해시가 산불방지를 위해 1997년부터 2008년까지 진해시민회관에서 장복산 진흥사에 이르는 산책로에 내화성이 강한 차나무를 파종한 게 시발점이다.

진해 해장사 진향다도회는 매년 봄이 되면 3개월간 장복산 시루봉 등산로를 오르내리며 찻잎을 딴다. 4월 23일 직접 찻잎을 따러 가는 진향다도회 회원들과 동행했다.

해장사에서 시루봉 등산로 입구까지는 차로 5분 남짓. 밭으로 이동하며 옆자리에 앉은 이유순 다도회장에게 찻잎 수확은 언제가 적당한지 물었다. 이유순 다도회장은 “옛날부터 곡우 3~4일 전후에 딴 차가 가장 좋은 차”라며 “평균기온이 20도 이하일 때 수확한 차가 가장 맛있고, 기온이 그 이상 올라가면 차 맛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차나무 밭을 향했다. 10여 분을 오르자 앞서 산에 오르던 시민들이 등산로 좌우에 펼쳐진 녹차밭으로 들어가 찻잎을 따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 쳐다보고 있으니 진향다도회 회원들도 그들 속으로 들어갔다.

녹차 만들기는 찻잎 따기인 ‘채다’부터 시작한다. “1창 2기만 기억하세요. 창은 뾰족한 새순이고 기는 잎이에요. 이파리가 좀 크고 억새면 1창 1기만 따고, 작고 부드러우면 1창 2기를 따면 됩니다. 어렵지 않겠죠?”라며 찻잎 따는 요령을 설명해 준다.

차나무 새순은 손가락 한 마디 길이의 움 하나가 창끝처럼 뾰족하게 올라오고, 그 아래에 작은 잎 1~2개가 막 줄기를 뚫고 나온 듯 기지개를 켠 형태다. 다도회원들은 찻잎을 톡톡 따서 부지런히 앞치마 주머니에 골라 담는다. 찻잎을 따면서도 강학순 다도반 사범은 회원들을 위한 강의를 멈추지 않는다.

“차나무는 늦게 딸수록 잎 크기가 커지고 맛이 떨어져요. 수확기에 따라 이름을 달리 부르는데 화개의 경우 곡우 무렵이 우전, 곡우와 입하 사이인 5월 초순은 세작, 5월 중순은 중작, 5월 하순은 대작이라고 합니다. 이후 가을까지 따는 찻잎은 티백, 차 추출물 함유 생활용품의 원료가 됩니다.”

오전나절 부지런히 찻잎을 딴 다도회원들의 앞치마 주머니가 볼록해졌다. 이들은 찻잎 따기를 마친 뒤 해장사로 돌아왔다. 절에 도착한 회원들은 서둘러 공양간으로 이동했다. 넓은 식탁 위에 방금 따온 찻잎을 펼쳤다. 그늘진 곳에 널어놓아 수분을 증발시키기 위해서다. 이 과정을 ‘탄방’이라 부른다.

점심을 먹고 한 숨 돌리려는데 회원들이 다시 앞치마를 두른다. 장갑을 끼고 가스 불을 달궈 표면온도가 300~400℃에 달하는 솥에 찻잎을 넣고 살살 덖기 시작했다. 덖는 과정은 차의 품질을 결정하는 첫 번째 관문이다. 선별한 찻잎을 뜨거운 무쇠 솥에 넣고 타지 않을 정도로 덖는다. 조금만 한눈을 팔거나 주걱질을 해주지 않으면 찻잎이 금세 타버린다.

몇 백도에 달하는 솥에 손을 넣고 찻잎을 덖는 이 회장에게 뜨겁지 않은지 물었다. “사실 차 맛은 좋은 찻잎을 따는 게 우선이지만, 그것을 덖어내는 손맛에 달려있다. 강한 열기로 순식간에 골고루 익혀내야 찻잎 본래의 맑은 색과 향이 살아나온다. 너무 익히면 잎이 누렇게 되고 설익히면 어두운 빛이 돈다. 찻잎을 뜨거운 무쇠 솥에서 익히면 효소의 촉진작용을 억제하는 것은 물론 맛도 구수해진다”며 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뜨거움을 견디는 이유를 설명했다.

찻잎이 익자 공양간 안은 구수한 차향으로 가득했다. 덖은 찻잎은 키질로 옥석을 가린다. 타버린 찻잎 부스러기나 이물질을 날려 보낸 다음에는 비비기 과정에 들어간다. 이 작업을 ‘유념’이라고 한다. 멍석이나 광목천 위에 물기가 어느 정도 빠진 찻잎을 올려놓고 맨 손으로 국수 반죽 치대듯, 경단 빚듯 가볍게 움켜쥐며 굴린다.

유념 과정을 맡은 정효순 총무는 “차의 조직을 적당히 파괴시켜 모양을 만들고 부피를 줄이는 과정”이라며 “차의 성분이 잘 우러나도록 약하게, 강하게, 다시 약하게 적당히 비벼주는 게 중요하다”며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다.

비빈 찻잎들이 서로 뭉치지 않도록 털고 난 다음에는 일정 시간 건조시키는데 수분이 어느 정도 마른다음 다시 덖는다. 처음보다는 약한 불로, 손길도 더 부드럽게 해야 차가 바스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다섯 번을 반복하니 은은하고 맑은 향을 듬뿍 품은 차가 완성됐다.

제다를 마친 뒤 깊고 그윽한 차 한 잔을 내줬다. 이 날 맛본 차는 전날 다도회원들이 작업한 녹차였다. 차에 대해 문외한이라도 감탄을 자아낼 만큼 깊은 풍미를 품고 있었다. 자극을 주지 않으면서도 미각과 후각을 사로잡는 오묘한 맛이었다.

다도회원들도 서로 차 품평의 시간을 가졌다. 박현숙 회원은 “녹차를 마실 때는 차를 우리는 물 온도가 매우 중요한데 고급 녹차일수록 60도 정도의 낮은 온도로 우리는 것이 좋다. 우리는 시간이 너무 길면 떫은맛이 강해지며 물 온도가 너무 높으면 쓴맛이 강해지기 때문에 물 온도와 시간 조절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정의 달 5월, 가족끼리 보성이나 하동으로 찻잎을 따러 가는 것도 좋겠지만, 진해 시민과 관광객에게 무료로 개방한 녹차 밭을 따라 등산을 즐기며 찻잎을 따보는 경험을 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 차 덖는 과정.
▲ 찻잎을 비비는 작업(유념 과정).

17c 이후 부유층 즐겨…전쟁 도화선 되기도

▲ 양흥식(동국대 박사·차문화사상연구원장)

서양의 대표 발효차, 홍차

“둥글고 매끄럽고 색채가 풍부한, 작은 홍차 다완의 풍경은 즐겁고 풍요로운 기분을 자아낸다. 미묘한 흙으로 만든 찻잔은 마치 대지(大地)처럼 꽃이나 새, 사람을 묘사하고 있다.”

1834년 런던의 한 신문에 실린 홍차에 관한 글이다. 차가 유럽에 알려진 것은 16세기 무렵이다. 유럽인들은 초기 동양의 향신료나 귀중한 보물을 찾아 인도를 거쳐 중국과 일본으로 진출했으나 17세기 들어서 차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유럽에 들어간 차는 귀족이나 부유한 계층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아 프랑스·독일·영국으로 확산돼 세계인의 음료가 되었다.

이즈음, 동양의 차는 녹차(Green tea)로 불리고, 서양의 차는 홍차(Black tea)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차 소비량도 홍차가 세계 차생산량의 80%정도를 차지하게 됐다. 옆 지면을 통해 녹차(발효차 포함)에 대해 알아본 것을 감안, 여기서는 홍차를 대표하는 명차에 대해 알아보겠다.

기문(祁門) 홍차는 인도의 다즐링, 스리랑카의 우바와 함께 세계 3대 홍차 중의 하나로 꼽히는데 중국 남동부 안휘성에서 생산된다. 안휘성은 온난하면서 연중 200일은 비가 내리고, 산간지역은 일교차가 커서 차나무를 재배하기 적합한 기후풍토이다. 지역이 다른 만큼 인도나 스리랑카와는 또 다른 맛이 난다. 원래 기문에서는 녹차를 생산했지만 1875년부터 홍차에 주력하고 있다. 이 차는 영국인을 매료시킨 벌꿀과 같은 감미로운, 난초향을 연상시키는 세련된 향이 특징이다. 그리고 바디감(진한 맛과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 느낌)이 분명한 상쾌한 떫은맛과 단맛을 겸비하고 있다.

두 번째는 다즐링(Darjeeling)홍차다. 세계 1위 홍차 생산국이며, 동시에 소비국인 인도의 차다. 인도 히말라야 산악지대인 다즐링 지역에서 재배된다. 이 지역의 80여 개 다원에는 중국종과 아삼종의 교배종인 크로날종이 많이 재배되는데, 시원스러운 맛과 향기가 은은한 맛을 내는 게 특징이다. 주로 4~5월에 좋은 품질의 차들이 생산된다.

마지막으로 우바(Uva)홍차다. 스리랑카의 홍차이야기는 커피로부터 시작된다. 1860년대에 발생한 커피 녹병은 농장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삶까지 파괴했다. 그러나 제임스 테일러가 차를 심기 위해 땅을 개척한 뒤로 스리랑카는 차의 섬이 되었다. 우바의 환경은 과일 향과 자극적인 떫은 맛, 그리고 짙은 탕색이 특징인데 밀크티와 잘 어울린다. 찻잎은 6~9월에 딴 것이 최고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아무리 좋은 홍차라도 그 차가 왜 좋은지를 알지 못하면 좋은 차도 좋게 보이지 않는다. 좋은 홍차의 구별은 크게 두 가지. 첫 번째, 잔에 아무것도 섞지 않은 홍차만 우려서 빛깔·맛·향기를 평가한다. 두 번째, 개인 기호에 맞게 우유를 타서 빛깔·맛·향기를 체크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마시는 기준을 정하면 된다.

먼저 빛깔은 일반적으로 선명하면서도 진한 등황색으로 투명감이 있어야 한다. 향기는 차의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차나무의 수종이나 생산지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향기의 맑은 정도나 지속성이 품질의 등급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 그리고 맛은 차를 입에 머금었을 때, 혀로 느끼는 맛과 입안에서부터 코로 거쳐 밖으로 되돌아 나오는 향기가 조화로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밀크티를 만들었을 때 빛깔은 갈색 톤으로 변해서 광택이 있으면 좋은 차라고 할 수 있다.

영국에서 홍차를 유행시킨 사람은 영국 찰스 2세와 결혼한 포르투갈 출신의 캐서린이다. 그녀는 차와 설탕을 혼수품으로 가져갔는데, 이후 홍차는 서민들까지 퍼져 오후에 차를 즐기는 애프터눈티(afternoon tea)가 보편화됐다.

홍차의 대중화는 국제적인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첫 번째로는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된 보스톤차 사건(1773)이다. 1773년 12월 16일 미국 보스턴 항구에서 어둠을 틈 타 인디언으로 위장한 미국의 식민지 반군은 영국 동인도회사 소유의 값비싼 차를 싣고 있던 배에 올라 차를 바다에 빠트렸다. 영국의 관세 정책에 반대한 미국 상인들의 반발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영국 정부는 보스턴에 함대를 보내게 되었으며, 결국 1775년 미국 독립전쟁이 일어나게 한 가지 원인이 됐다. 오늘날 미국은 차 수입에 대해서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아편전쟁(1839)이다. 18세기 말 영국 차 시장이 확대되면서 중국으로 대량의 은이 유출되자 인도산 아편을 중국에 팔아 은을 회수했다. 그러자 중국 정부는 아편을 금지시켰다. 이에 영국이 보복으로 일으킨 전쟁이 바로 아편전쟁 (1839~1842)이다. 이 전쟁은 중국이 문호를 개방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아이스티(Ice tea)는 1904년 미국에서 개최된 국제박람회에서 홍차를 홍보하던 상인이 더워서 차에 관심을 갖지 않자 얼음조각을 넣고 나눠주면서 큰 인기를 누리게 된 것이 유래가 됐다고 한다. 이렇게 홍차는 격동과 화려함을 거쳐 사계절 즐기는 차가 되었다. 다양한 홍차를 즐기는 방법을 하나씩 알아 가면 계절과 분위기에 맞게 차를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녹차든, 홍차든 모든 차는 다양한 맛을 낸다. 발효 정도, 만드는 방법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발효시키지 않은 풋풋하고 싱그러운 녹차를 즐겨 마신다면, 유럽은 향긋한 향을 내는 홍차가 문화로 정착했다. 요즘처럼 건조하고 일교차가 심할 때에는 기관지를 보호해주는 효능이 있는 발효차가 좋을 듯하다.

녹차와 홍차 모두 차 속에 있는 카테킨 성분이나 폴리페놀 성분이 유해산소의 활동을 억제해준다. 또 콜레스테롤 농도를 감소시켜주는 역할과 함께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어 건강음료라고 부를 만하다. 이 중 홍차는 다양한 꽃차 종류와 브랜딩 할 경우, 입맛 까다로운 사람들의 기호도 맞출 수 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