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찰녀 꼬임 빠졌지만 독경소리가 목숨 구해

 

어느 깊은 산속의 산사.

한 젊은 스님이 신실히 수행하며 늘 〈법화경〉을 외웠습니다. 그는 그것이 한없이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그의 얼굴은 항상 빛났고, 그의 음성은 늘 맑았습니다. 

약왕이여, 그대는 이 대중 가운데 한량없는 모든 천·용왕·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인·비인과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와 성문 구하는 이와 벽지불 구하는 이와 불도 구하는 이를 보는가. 이와 같은 무리들이 다 부처님 앞에서 〈법화경〉의 한 게송 한 구절이라도 듣고 일념으로 따라 기뻐하는 이는 내가 다 수기를 주리니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그런데 그런 그를 흠모하는 나찰녀가 산사 옆에 살고 있었습니다. 나찰녀는 어떻게든 그 젊은 스님을 무너뜨리고 싶었습니다. 나찰녀는 아름다운 여자로 변신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젊은 스님이 경행하는 길목에 서 있었습니다. 이윽고 스님이 나타나자 하얗게 웃으며 그의 발걸음을 막았습니다.

“누, 누구시오?”

스님은 깜짝 놀라 주춤 물러섰습니다.

“놀라시기는요? 스님은 절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언제나 스님 한 분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한 마디로 스님의 고귀한 품성과 인격을 흠모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녀는 얼굴에 한 가득 웃음을 띠며 교태를 떨었습니다. 스님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처음 보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일단 정신을 차려야 했습니다. 그는 무심결에 다시 〈법화경〉을 외우기 위해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약왕이여, 그대는......”

그것을 보고 가만있을 나찰녀가 아니었지요.

“아무리 도를 닦는 스님이지만 어떻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렇게 나타난 젊은 아낙의 순정을 물리치시는지요? 그대가 따르는 부처님이라는 분은 결국 연약한 여인의 순정마저 저버리라고 가르치는 못난 분이십니까?”

스님은 머릿속을 맴도는 부처님 말씀이 많았지만, 그 말들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이미 스님은 눈앞에 나타난 아리따운 여인에게 온 정신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아무 말씀 마시고, 저를 따라오세요.”

“안됩니다. 저는 부처님을 따르는......”

그가 억지로 말했지만 나찰녀는 배시시 웃었습니다.

“스님의 마음은 이미 제게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주어진 본능에 충실해야 합니다. 무엇이 잘 살고, 무엇이 잘못 사는 것입니까? 자기 자신조차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자, 저를 따라오세요.”

말을 마치자 나찰녀는 스님의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젊은 스님, 더구나 세상에서 처음 보는 아름다움에 취한 스님은 어두운 숲속으로 나찰녀를 따라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불경스럽게도 그만 색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색을 범하고 나자, 정신이 몽롱해져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별이 총총한 밤.

이제 스님을 무너뜨렸다고 생각한 나찰녀는 스님을 편안히 잡아먹기 위해 공중을 날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나찰녀의 등에는 스님이 업혀있었지요. 나찰녀의 등에 업힌 스님은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넋을 놓고 있었습니다. 나찰녀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굴로 가기 위해 빠르게 날았습니다. 그러다가 마침 아득히 먼 어느 절 위를 날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절에서 희미하게 누군가 〈법화경〉을 외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찰녀의 등에 업힌 스님은 그 소리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법화경〉을 외우게 되었습니다.

“또 여래가 멸도한 후에라도 어떤 사람이 〈법화경〉의 한 게송 한 구절이라도 듣고...”

“앗, 안 된다!”

나찰녀는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쳤습니다.

정신을 완전히 회복한 스님이 계속해서 다음 구절을 외웠습니다.

“일면으로 따라 기뻐하는 이에게는 내가 또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를 주리라.”

그러자 나찰녀는 등에 업은 스님이 점점 무거워져서 차츰 아래로 내려가 땅에 닿게 되었습니다. 나찰녀는 어느 사이 본래의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스님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법화경〉을 계속 외웠습니다.

“네가 나를 이렇게 욕보이다니 어디 두고 보자!”

나찰녀는 독경을 하는 스님을 쏘아보다가 마침내 달아나 버렸습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스님은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캄캄한 밤의 첩첩산중, 도무지 알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얼마나 헤맸을까?

반짝반짝.

반짝반짝.

조그만 산사의 등불이 보였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스님은 가까스로 산사 마당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스님이 깨어났을 때는 아늑한 방, 여러 분의 스님들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주지스님인 듯한 노스님이 물었습니다.

“도대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젊은 비구가 예까지 찾아왔나?”

“......?”

꿀 먹은 벙어리, 스님은 그동안에 일어났던 일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답답한 다른 스님들이 웅성거렸습니다.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아무런 장구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를 찾아왔겠습니까. 이 밤중에?”

“어쩐지 이 스님의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납니다.”

“혹시 사람이 아니고 우리를 해하려고 하는 귀신은 아닐런지요?”

젊은 스님은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일어나 모든 스님들께 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합장한 채로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지난 밤, 우리 절 경내를 거닐다가 아름다운 여인으로 분한 나찰녀의 꼬임에 빠져 그만 색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스님은 울고 있었습니다.

“그대가 있는 절이 어디더냐?”

“예. 울울산 향림사입니다.”

“뭐야? 그곳은 여기서 3000리가 넘는다.”

스님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죽을 죄를 졌습니다.”

그러나 많은 스님들의 태도는 냉랭했습니다.

“노스님, 불제자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중죄를 지은 자입니다.”

“이미 불제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자를 이곳에 두면 우리까지......”

젊은 스님은 천천히 일어났습니다.

“제가 어찌 이 청정한 곳을 더럽힐 수 있겠습니까?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스님들께서는 안심하소서.”

스님은 다시 한 번 모든 스님들에게 절을 하고 방문을 열었습니다.

“지금 이곳을 나가면 너는 필시 산짐승의 밥이 될 것이야.”

노스님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제가 지금 배고픈 산짐승의 밥이 된다면 그것으로 고마운 일이지요. 이제 저는 이곳을 떠나 저의 생명을 하늘의 운수에 맡기고자 합니다. 세세생생 내 어찌 두 번 다시 부처님 얼굴을 뵐 수 있겠습니까?”

젊은 스님의 목소리는 한없이 떨렸습니다.

“너의 못난 행덕은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이는 악귀에게 유혹된 것이고 자기 본심에서 한 일이 아니며, 이미 귀난(鬼難)을 면하고 〈법화경〉의 위력이 나타났으니, 이 절에 머물러 평생을 참회하도록 하여라.”

젊은 스님의 눈에서 비로소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단 한 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 어디 이 젊은 스님뿐이겠습니까? 그런데도 참회는커녕 시절 탓, 남 탓을 일삼는 오늘의 세태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부처님 말씀을 되새깁니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 누구보다도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말입니다.

‘天上天下 唯我獨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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