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간 투쟁 끝나도
민족·집단주의 이어져
자비사회 실현 절실 

역사에서 우리가 알고자하는 것은 무엇인가? 역사적 사건들이 왜,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가를 알고자 한다. 더불어 가장 궁금한 것은 역사의 의미와 그것을 움직이는 힘 그리고 방향일 것이다.

근대에 역사의 의미와 방향을 본격적으로 탐구하여 가장 발전된 역사철학이론을 확립한 사람은 독일의 철학자 헤겔(1770~1831)이었다. 그는 역사가 인간 정신의 자유 실현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향해 발전한다고 보았다. 그는 정반합(正反合)이라는 정신변증법을 창안하여 정신(正)이 그 대립자인 자연(反)과의 투쟁을 통하여 절대정신으로 변화(合)하는 변증법적 과정을 반복해서 역사가 발전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세계역사를 그리스 폴리스의 공공(公共)의 자유에서 로마 공화국의 시민권 개념을 거쳐 종교개혁의 개인자유로 그리고 현대국가의 시민적 자유로 발전해 가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그런데 마르크스(1818~1883)는 이런 정신변증법의 역사를 물질변증법의 역사로 바꿨다. 그는 역사발전의 동력을 정신이 아니라 물질이라고 보았고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서 야기되는 변증법적 투쟁을 역사로 이해했다.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가 노동자 계급에 의한 혁명으로 타파되어 공산주의사회가 이루어지면 역사가 끝난다고 보았다. 19세기와 20세기 중반까지는 소위 과학이면 모든 것이 통하던 과학주의의 시대였기 때문에 과학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이 역사철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역사철학이 한계를 드러내면서 헤겔이 다시 주목받았다. 먼저 모스크바 출신 프랑스 철학자 알렉상드르 코제브(1902-1968)가 마르크스주의에서 헤겔철학으로 전향했다. 그 영향을 받은 후쿠야마(1952~)도 냉전이 끝나면서 1989년 <역사의 종언>을 써서 헤겔의 역사철학을 부활시켰다.

그는 이념 투쟁으로서의 역사는 공산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의 승리로 끝났다고 주장했다. 후쿠야마는 역사의 진보를 추동하는 두 세력을 하나는 경제, 다른 하나는 헤겔이 언급한 ‘인정을 받기 위한 투쟁(struggle for recognition)’이라고 보았다.

공산주의가 자유민주주의를 이길 수 없었던 것은 이 두 가지 투쟁에서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다. 경제발전 분야에서 공산주의의 중앙통제 지시 경제는 자유민주주의의 시장경제를 이길 수 없었다. 또한 인정을 위한 투쟁에서도 공산주의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자유민주주가 개인 인권의 존중을 통해 발전시킨 인간에 대한 보편적 인정을 이길 수 없었다. 경제도 파탄에 이르고 사람대접도 받지 못하는 공산주의는 스스로 붕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가 붕괴했다고 해서 역사가 끝났다고 볼 수는 없다. 이념간의 투쟁의 역사는 끝났지만 이슬람 과격세력이나 극단적 민족주의 세력처럼 자기편의 구원만을 추구하는 집단주의의 보편적 인간성에 대한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모든 중생에게 불성(佛性)이 있어 극악한 존재인 일천재(一闡堤)까지도 성불할 수 있다고 설파한 붓다의 보편적 자비가 인간사회에서 실현될 때까지 인간 투쟁의 역사는 끝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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