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외운 공덕으로 명부서 살아 돌아와

 

당나라 무덕(武德) 연중(서기 618~626)에 감문교위 이산룡은 모진 병으로 죽었으나 이상하게도 가슴이 따뜻하였습니다. 하여 그 가족들이 차마 염습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즈음 산룡의 넋은 명부에 들어가 어느 관청에 이르렀는데 그 집 정원은 굉장히 넓고 죄수 수천 명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칼도 차고 고랑도 채워진 채 모두 복면을 하고 서 있었지요. 그리고 뜰의 대청 위에는 염라대왕이 높은 걸상에 앉고 좌우로는 많은 관원이 시위하고 있었습니다.

염왕이 그를 보고 대뜸 물었습니다.

“너는 평생에 무슨 복업을 닦았는가?”

산룡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우리 고을 사람들이 부처님께 재를 올릴 때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그 시주에 동참하였습니다.”

이에 염라대왕이 다시 물었습니다.

“너 혼자 선업을 닦은 일은 없는가?”

“<법화경> 두 권을 늘 지송하여 왔습니다.”

그러자 염왕이 놀라며 그를 뜰로 오르라 하여 올라서니, 그곳에 동북간으로 높은 자리가 하나 있는데, 염왕은 그곳에서 산룡에게 <법화경>을 외워줄 것을 청하였습니다.

그는 바로 <묘법연화경> 서품을 외웠습니다. 

괴로움, 고통, 질병 등은
스스로가 있다고 여기며
확신하는 관념 덩어리의
마음이 만들어낸 거짓이다

말과 글을 배우면서
이것은 옳은 것이고…
이것은 틀린 것이고…
이것은 이렇게 해야 되고
이것은 저렇게 해야 되고 

스스로가 만들고 있는
이러한 관념 덩어리들은
지식이 높게 쌓일수록…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자기 확신이 강할수록…
관념 덩어리는 점점 커지며
커지는 만큼 스스로에게
고통과 질병으로 돌아온다. 

그러자 염왕이 일어나 공손히 합장 예배하며 말했습니다.

“존경하는 법사시여, 그만 그치소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뜰 아래를 돌아보니 아까 가득 차 있던 죄인들이 한 명도 없는지라 놀라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을 아는지 염왕이 천천히 말을 이었습니다.

“그대의 경을 지송하는 복이 단지 자기 자신에게 좋은 것만이 아니라, 뜰 아래 있던 여러 죄수들까지도 모두 경의 제목 외움만을 듣고도 모두 그 죄를 면하게 된 것이니 어찌 그대를 착하다 하지 않으리오. 이제 그대를 풀어주어 인간으로 돌아가게 하오리라.”

하여 산룡이 그곳에서 수십 보 쯤 걸어 나오는데 염왕이 다시 부르며 시위 관리들을 보고 웃으며 명령했습니다.

“이 분을 모시고 지옥을 다녀오라!”

관리들이 염왕의 명을 받들어 그를 데리고 동쪽으로 백여 보를 걸으니 문득 높다란 성벽이 보이는데, 무쇠로 쌓여 있는 그 성벽 가장자리로 많은 구멍이 뚫려 있어 모든 남녀가 땅에서부터 그 구멍으로 날아들었지만 다시는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산룡은 차마 눈을 뜨고 그 광경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관리가 말했습니다.

“이곳이 무간지옥입니다. 각각 사람마다 지은 업에 따라 옥에 들어가 죄를 받는 곳입니다.”

산룡은 한편 슬프고, 한편 겁이 나서 나무불 세 글자를 염불하고 또 한 곳에 이르니 커다란 가마가 있어 불이 활활 타며 물이 펄펄 끓는데, 그곳의 모든 사람이 앉아서 졸고 있었습니다.

“그대들은 웬 사람인가?”

산룡이 물은즉 그들이 한결같이 대답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죄가 많아 이 끓는 가마 속으로 들어갈 터인데 그대가 나무불 세 글자를 지송하여 주신 공덕으로 옥중 죄인과 같이 하루 쉬라는 명을 얻어 듣고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여 이와 같이 앉아 졸고 있습니다.”

이에 산룡이 더 구경할 마음이 없어 걸음을 급히 하여 인간으로 나왔는데, 문득 세 사람이 앞을 가로막고 나서며 말했습니다.

“염라대왕께서 그대를 풀어주나 우리들의 수고는 잊으면 안 될 겁니다.”

산룡이 그 말뜻을 알지 못해 응답을 하지 못하자 옆의 관리가 설명을 하여 주었습니다.

“저 사람들은 일전에 그대를 명부로 잡아온 자들입니다. 한 사람은 포승를 맡은 자니 붉은 줄로 그대를 묶은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방망이를 맡은 자니 방망이로 그대를 때린 사람이며, 마지막 한 사람은 자루 임자로 자루를 가지고 그대의 혼을 잡아넣은 사람입니다. 오늘 그대가 인간으로 환생함을 보고 무슨 보수를 청하는 모양입니다.”

산룡은 겁이 나서 고개를 숙이며 말했습니다.

“미처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청컨대 집으로 돌아가서 물품을 준비하겠으니 어느 곳에서 보내 드리리까?”

“물가나 나무 밑 모두 좋습니다.”

산룡이 황급히 그들을 하직하여 돌아오니 집안은 곡성이 낭자하고 장례 준비로 정신이 없던 터였습니다. 산룡은 그들을 바라보며 살짝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습니다.

“귀신이야!”

“귀신이 나타났다!”

그러나 산룡은 웃으며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동안의 일을 낱낱이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항상 〈법화경〉 구절을 독송한 까닭이니 그대들도 앞으로 밤낮으로 〈법화경〉을 수지독송 하도록 하시오.”

그런데 그 후로 그렇게 잘 외웠던 〈법화경〉 구절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지요. 그 사이 산룡의 안색은 꼭 죽은 사람처럼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산룡이 다시 죽음의 길로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

그 날도 산룡은 등잔불을 켜놓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부처님 말씀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산룡은 죽어 염왕을 만나던 일과,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아뿔싸! 산룡은 자신의 무릎을 쳤습니다. 마지막 헤어졌던 세 사람과의 약속을 깜빡 잊은 것입니다. 산룡은 정성껏 기도를 마친 다음 잠을 청했습니다. 물론 오랜만에 단잠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산룡은 다음 날 모든 집안의 권속을 이끌고 종이로 돈을 만들고 비단과 여러 가지 음식을 갖추어 물가에 나가서 위채를 불사르며 기도했습니다.

“이승과 저승을 막론하고 부처님 말씀보다 더 중요한 일이 사람들과의 약속이거늘 제가 염국에서 살아 돌아온 들뜬 마음에 그만 그대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니...”

그러자 갑자기 세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대가 늦게나마 우리와의 약속을 잊지 않고 이제 좋은 물품을 가져다주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대는 그대의 수명을 다 누리고 훗날 다시 우리를 만나게 될 것이오.”

두 말할 것도 없이 산룡은 천수를 다하였고, 그의 권속들 또한 전쟁의 참화와 병마로부터 벗어나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합니다. 세상의 이치를 손톱만큼도 모르면서 마치 모든 것을 아는 양 자기 주장만을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주먹을 쥐고,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가슴에 명예라는 헛된 명찰을 달고 그림자 춤을 추는 이들이 이제 가슴에 손을 얹고 부처님의 말씀 한 구절을 되새기는 그런 연대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아마도 돌아오는 봄은 작년보다는 좀 더 따뜻한 날들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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