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보살 옆에 두고 어리석게 다른 스승 찾아

      

수나라(隨) 때 병주(井州)사람 고수절(高守節)의 집안에서는 대대로 불법을 신봉했는데, 수절은 특히 정성이 지극하였습니다. 수절이 17살 무렵 대도(大都)에 갔었는데, 길에서 한 사문(沙門)을 만났습니다.

“그대는 어디로 가는가?”

“예. 저는 딱히 갈 곳이 없습니다.”

“오호, 갈 곳이 없다?”

“실은 어리석은 저를 받아줄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만......”

“나는 해운(海雲)이라고 한다네.”

수절은 물끄러미 스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나이는 60살쯤 되어 보였지만, 수절의 눈에 어떤 특이함이나 고결함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스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대는 경을 외울 줄 아느냐?”

“저는 진심으로 배우고자 합니다.”

스님은 두 말 없이 그를 데리고 오대산으로 갔습니다. 첩첩산중, 어느 한 곳에 이르니 암자 셋이 있었는데, 겨우 몸을 들여놓을 만했습니다. 스님은 수절을 암자에 머물러 있게 하고 〈법화경〉을 가르쳐주어 외우게 하고, 밖에 나가 탁발해다가 수절의 의식(衣食)까지 대어 주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이상하게도 가끔 한 호승(胡僧)이 와서 해운 스님과 한참씩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가곤 했습니다.

수절은 정말 궁금했습니다. 그렇지만 물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스승과 그 호승은 밤이면 은밀히 무슨 말인가를 나누곤 했으니까요. 그러나 그렇게 훔쳐보는 것도 한두 번, 수절의 마음속엔 이상한 의심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스승님이 사도에 빠져 밤이면 밤마다 귀신을 만나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생각으로 수절은 어이없게도 안색까지 창백해져갔습니다. 마침내 수절은 절을 떠나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수절은 결국 스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제 절을 떠나야겠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지요. 그런데 스님이 먼저 수절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그 호승을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빙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 분은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蓄薩)이시다. 그러니 의심하지 말고 이곳에 머물도록 하여라.”

스님은 수절의 마음을 모두 아는 듯이 말씀하셨고, 하여 수절도 암자를 떠나는 계획을 뒤로 미루기로 하였습니다. 그 후로도 수절은 스님에게서 문수보살님이 오셨다가 가셨다는 말씀을 여러 번 들었으나 그 뜻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스님이 수절더러 산 아래로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당부하는 말씀이 이상하였습니다. 스님은 느닷없이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본래 여자란 모든 악의 근본이다. 여자는 보리(菩提)의 도를 깨뜨리고 열반(混槃)의 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니, 너는 여인에 대해 항상 깊이 삼가야한다.”

아무런 생각이 없던 수절인지라 그저 건성으로 공손히 대답하였습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만 산 아래로 내려가다가 도중에서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수절은 그만 눈을 질끈 감고 말았습니다. 그 여인의 용모가 너무 아름다웠던 것입니다. 그녀는 하얀 말을 타고 있었습니다.

“아뿔싸, 그래서 스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군.”

성실한 수절은 중얼거리며 얼른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이 수절을 따라붙었습니다. 

“몸이 갑자기 아파 말에서 내려야겠는데 이 말이 마구 뛰고 발길질을 잘하여 내릴 수가 없으니 저를 좀 부축해 내려 주세요.” 

그러나 수절은 스승이 경계한 말을 생각하고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길을 재촉했습니다. 여인이 몇 마장을 뒤쫓아와 간절히 애원했으나 수절은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두 눈을 감은 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디쯤인가? 살며시 눈을 뜨고 뒤를 돌아보니 여인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암자로 돌아온 수절은 담담하게 그 일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너는 참으로 장부로구나. 그렇지만 그 여인은 문수사리보살이시다.”

그런데도 수절은 반복되는 스님의 말씀이 농담이라고 여겼습니다. 그 후 수절은 3년 동안 꾸준히 〈법화경〉을 독송하여 그 깊은 뜻을 자세히 터득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수도 장안에서 수승한 스님들에게 도첩(度牒)을 준다는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스님이 되리라 생각하고, 아침저녁으로 그 방편을 스승에게 물어본 다음 장안으로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왜 굳이 법을 장안에서 찾으러 하느냐?”

스승이 그렇게 묻자 수절은 대답하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습니다. 사실 마음속에는 이 산골 구석에서 존경하는 스승이긴 하지만, 이름이 없는 스님에게 배우는 것보다는 장안의 명망있는 스님들에게 법을 배우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것입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법화경〉을 외워 대승의 종자를 이미 성취하였다. 네가 꼭 가고자 하거든 가서 좋은 스승에게 의논하여라. 이번에 서로 이별하면,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니. 너는 서울에 가거든 신정도량(禪定道場)으로 가서 와륜선사(臥倫禪師)께 의지하여라.”

그러나 수절은 결국 장안으로 가지 못하고 도중에 와륜 선사를 찾게 되었습니다. 장안에서의 꿈을 이루지 못한 수절은 침통한 몰골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선사가 물었습니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

“오대산에서 왔습니다. 스승님께서 저를 선사님의 제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스승의 이름이 무엇이냐?”

“해운 스님이십니다.”

“누구?”

와륜선사는 자기의 귀를 의심하는 듯 놀라서 다시 물었습니다.

“저의 스승님은 첩첩산골 오대산에 계시는 해운 스님이십니다.” 그 말을 듣고 와륜선사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탄식했습니다. 

“오대산은 문수보살이 계시는 곳이고, 해운 스님은 화엄경에 나오는 선재동자라 제삼선지식(第三善知識)인데, 너는 어찌하여 그 성인을 버렸느냐? 천겁 만겁에도 만나 뵐 수 없는데 어찌하여 그런 잘못을 저질렀느냐?”

수절은 깜짝 놀랐습니다.

비로소 해운 스님이 했던 모든 말씀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아하, 그 분을 옆에 두고 다른 스승을 찾는다고 안달을 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이 뼈에 저렸습니다. 정성과 힘을 다해 모시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그러나 밤을 새워 돌아온 오대산에는 암자도, 스님도 이미 자취가 없었습니다. 수절은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이제는 아무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혹여 오늘의 우리 곁에 해운 스님 같은 분은 계시지 않을까요?

우리는 바로 우리 옆에 문수보살님이나, 선재동자를 두고 헛되이 다른 스승을 찾는다고 법석을 떨고 있지는 않은지요?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곁에 있는 모든 분들을 문수보살님이나 선재동자로 여기면 어떨까요? 헤아릴 수 없는 문수보살님과 선재동자를 모시고 사는 우리들, 너무도 행복하지 않을까요? 기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문수보살님이나 선재동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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