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절한 무명 제자 〈법화경〉 공덕으로 환생

 

수나라에 혜초라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착실히 수행을 하였지요. 그는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따르는 제자가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름도 없는 어느 한 제자를 무척 아꼈습니다. 그런데 다른 제자에게는 모두 법명을 내렸지만, 이상하게도 그 한 제자에게만은 법명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하여 그 제자는 늘 다른 제자들의 놀림감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못났으면 이름도 없나?”

“그러면 저 친구는 어떻게 불러야 돼?”

그런데도 혜초 스님은 물론이고, 그 제자 또한 아무렇지도 않게 지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그것이 무척 궁금했습니다.

“스승님, 왜 저 제자에게는 법명을 내리지 않는지요?”

“스승님, 왜 모든 법 지식을 오로지 저 제자에게만 전수하시려고 하십니까?”

그러나 스님은 늘 아무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저 그런 질문을 받으면 쓸쓸한 웃음으로 대신하였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그 이름 없는 제자는 혜초 스님 버금가게 〈법화경〉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자나 깨나 오직 〈법화경〉만을 독송하였습니다. 오죽하면 스님이 건강을 걱정하여 말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그 제자가 나이 스물이 되어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비록 속세를 떠났지만 누구보다도 인정이 많았던 스님이 이상하게도 사랑하던 제자가 그 명을 다했는데 슬픈 표정 한번 짓지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제자의 육신을 태우고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했던 것입니다.

다시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스님, 그 흔한 이름마저 갖지 못하고 죽은 제자가 불쌍하지도 않습니까?”

“그가 이름 없이 죽어 과연 다음 세상을 다시 찾아갈 수 있을까요?”

그러자 스님이 천천히 대답했습니다.

“그건 우리 소관이 아니다. 세상 이치의 뜻은 부처님도 어쩔 수 없단다. 모름지기 너희들은 그 이름에 연연하지 말고 하늘의 뜻에 연연하거라.”

“그 하늘의 뜻이 무엇입니까?”

“아마도 그건 〈법화경〉 한 구절 한 구절에 모두 나와 있을 것이다. 죽은 녀석은 능히 〈법화경〉에 통달했을 터, 너희들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 때가 되면 그의 소식을 내가 너희들에게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믿는 제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혜초 스님의 법력이 높다고 하나 죽은 사람의 소식은 알 수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지요. 스님은 그런 제자들의 시선은 아랑곳않고 정성을 다해 그 제자의 49재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을 다 물린 뒤 조용히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스님은 잠자리에 들자마자 비몽사몽 간에 태산부군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태산부군이란 중국 태산(泰山)의 산신으로 사람의 수명(壽命)과 복록(福祿)을 다스리는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스님은 조용히 물었습니다.

“이름 없는 소승의 제자 하나가 일찍 죽었사온데 지금 어느 곳에 있습니까?”

그러자 태산부군이 빙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죄와 복이 모두 없는 까닭에 아직 미결로 이곳에 있노라.”

이에 혜초 스님이 다시 말했습니다.

“어려운 일이오나 살아생전 내 그에게 이름 하나를 지어주지 못해 가슴이 아픕니다. 제가 그를 만나 이름 하나를 내리려 합니다. 허락해 주실 수 있는지요?”

“이곳의 이치나 세상의 이치로는 허락되지 않는 일이나 그대의 수행공덕을 내 모를 리 있겠소. 속히 만나 회포를 풀도록 하시오.”

혜초 스님은 사자의 안내로 동쪽으로 수십 보를 걸어가다가 이윽고 그 제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자는 가볍게 합장하며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오히려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을 단 혜초 스님이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래, 이곳에서의 너의 고와 낙이 어떠하냐?”

제자가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다만 얽매어 있어 자유로운 행동을 못할 뿐이고 고와 낙이라는 것은 아무 감상도 없습니다.

어느 곳에 태어나고자 하나 아직 결정되지 않고 있으니 스님께서 제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자 스님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내 너에게 이름 하나도 주지 못했는데 어찌 너를 제도한단 말이냐?”

“스승님이 제게 이름을 주지 않은 까닭을 알고 있습니다. 제 어찌 스승님을 원망하겠습니까?”

“그 까닭이 무엇이냐?”

“이 세상 누군들 처음부터 이름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모두 껍데기에 불과한 것, 더구나 저는 어차피 스무 살에 이승과의 인연을 끊었어야 할 몸, 이름을 갖지 않는 것이 본래의 저로 돌아가는 가장 쉬운 방편이 아니었겠습니까?”

혜초 스님은 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제자가 반듯하게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제야 그는 웃으며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어떤 공덕을 지어야 하겠는가?”

제자가 간곡하게 말했습니다.

“〈법화경〉 한 벌을 조성하시고 회향재로 일백 명 스님들께 만발공양 시켜 주소서.”

“내 어찌 너의 청을 거절하겠느냐? 너의 원대로 실행하마.”

스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제자를 바라보니 한바탕 꿈이었습니다. 하여 혜초 스님은 꿈에서 약속한 대로 〈법화경〉 한 벌을 쓰고, 수행하는 스님 일백 명에게 공양하여 마치기를 다한 후 다시 꿈을 얻어 태산부군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경을 쓰고 재를 올린 사연을 태산부군에게 말하였습니다. 태산부군이 가볍게 박수를 치며 응답하였습니다.

“잘 하였소. 그대의 제자는 스님이 경을 쓸 적에 〈묘법연화경〉의 묘자를 막 쓰고 나자마자 좋은 곳에 태어났습니다. 제군이라는 땅에 사는 왕무라는 사람의 아들로 태어났으니 세 살 먹거든 한번 찾아보시오.”

그 후 3년이 지난 뒤에 혜초 스님은 왕씨 집을 찾아갔습니다.

당연히 그 부모가 뛰어나왔습니다.

“거룩하신 스님께서 웬 일이신지요? 혹여라도 저희들이 무언가 잘못한 것이라도?”

“아닙니다. 이 집에 세 살 박이 아이가 하나 있지요?”

“그렇습니다. 올해가 꼭 세 살이지요.”

“그 아이를 볼 수 있겠습니까?”

곧바로 그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나왔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아아앙!”

“아아앙!”

아이가 울면서 혜초 스님의 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부모들은 도무지 까닭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

“......?”

혜초 스님이 아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보듬자 아이가 울음을 딱 그쳤습니다. 혜초 스님은 영문을 몰라 하는 부모에게 그동안의 사연을 모두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 부모들이 모두 혜초 스님에게 합장했습니다.

“제가 이름을 지어주지 못해 늘 가슴 아팠는데, 이제 이 아이가 자라 저를 찾아오면 그 때는 이 아이에게 맞는 이름을 지어주렵니다. 모쪼록 이번 생에는 건강하고 복 있게 자라도록 애써주십시오.”

그 부모들이 혜초 스님의 말씀을 금과옥조처럼 여겨 아이를 잘 키운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겠지요. 훗날 그 아이가 스스로 출가하여 다시 혜초 스님을 섬겼다 하니, 전생과 후생을 넘나드는 스승과 제자의 참 사랑이 우리를 웃게 합니다.

지금은 졸업의 시절, 참다운 스승과 제자의 도리가 혜초 스님과 ‘이름 없는 제자’의 가없는 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