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공덕으로 축생의 업보 벗어나 

 

명나라 세종 때 보은사 주지 스님은 말 한 필을 길러 마을에 볼 일이 있으면 그 말을 타고 오고가며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은 방울소리만 울릴 뿐 그저 묵묵히 걷기만 하였습니다.

“저 스님은 사람들도 알아듣지 못하는 경을 말을 위해서 독송하니 아마도 미치광이가 아닐까?”

“그러니까 보은사는 사람이 갈 절이 아니라 말이나 소가 가야 될 절이군.”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수군거리며 일절 보은사에 가지 않았습니다. 하여 절은 하루하루 쇠락해져 갔습니다. 그렇지만 주지 스님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절에도 단 한 사람, 스님과 말에게 먹을 것을 공양하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부처님께 귀의한 것이 아니라 절에서 외롭게 사는 스님과 말이 안쓰러워 마을 사람들 몰래 보은사를 찾아오곤 하였습니다. 그녀는 그저 그림자처럼 먹을 것을 놓고는 간단한 합장을 하고는 다시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물론 스님은 그 여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매일 말에게 〈법화경〉을 독송하고, 설법하였습니다. 그러면 말은 스님의 말을 알아듣는지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또 흘렀습니다.

이제 스님도 늙고, 말도 늙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여인은 도무지 늙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아마도 여인이 귀신에 홀려 그런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즈음 여인은 이상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 꿈은 스님이 기르는 말이 그녀를 찾아온 꿈이었습니다.

“은혜로우신 보살님, 저는 보은사 주지 스님이 기르는 말인데 인간으로 태어나서 불도를 구하고자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열 달 뒤, 그 때 뵙겠습니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깬 여인은 얼른 보은사로 달려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주지스님이 죽은 말을 위해 독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말에게 늘 해주던 독송이었습니다. 

방금 짜낸 소 젖은 싱싱하듯

재에 묻힌 불씨는 그대로 있듯

지은 업은 당장은 안 나타나지만

그늘에 숨어 있어 그를 따른다. 

여인은 처음으로 스님에게 말을 붙였습니다.

“스님, 말이 언제 죽었는지요?”

“어제 저녁에 축생의 법도에서 벗어났습니다.”

여인은 다시 물었습니다.

“축생의 법도에서 벗어났다면?”

“아마도 다른 윤회의 고리에 들어갔겠지요.”

여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이 임신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기쁜 일이었지요. 쏜살처럼 빠른 열 달이 흘렀습니다. 마침내 여인은 잘생긴 사내 아이 하나를 낳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여인의 바람대로 잘 자랐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이가 도무지 다른 아이들과 놀지도 않고, 고기도 일체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엄마인 여인은 그 까닭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다시 세월이 흘러 아이의 나이가 여덟 살이 될 무렵 여인은 주지 스님을 찾아 갔습니다.

“지금의 이 아이는 옛날 스님이 기르시던 그 말의 환생입니다. 이제 저와 말이 한 약속대로 스님에게 제 자식을 맡기겠습니다.”

스님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빙그레 웃었습니다. 여인의 아들은 그렇게 해서 주지 스님의 상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상좌 스님은 모든 것이 느리고 둔했습니다. 열 가지를 알려주면 한 가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여인은 스님 보기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항상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스님!”

“보살님, 그런 마음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이제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상좌는 전생에 축생의 업보를 받아 익힌 것이 없어서 그러하니 이제 전생에 들은 〈법화경〉을 익히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늘 말에게 독송했던 〈법화경〉을 설하였습니다. 그러자 상좌 스님의 눈이 확 떠졌습니다. 상좌 스님은 주지 스님이 한 독송을 그대로 따라 외며 합장을 하였습니다.

“방금 짜낸 소 젖은 싱싱하듯, 재에 묻힌 불씨는 그대로 있듯, 지은 업은 당장은 안 나타나지만 그늘에 숨어 있어 그를 따른다. 스님, 이제 모든 것이 생각납니다.”

“그렇다면 우선 현세의 어머니에게 예를 갖추거라. 네 어머니께서는 아둔한 너로 인하여 너를 낳은 이후 단 한 번도 제대로 잠을 이룬 적이 없단다.”

스님의 말이 떨어지자 상좌 스님이 여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합장을 하였습니다. 여인의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고맙고, 고맙구나. 아들아, 이제 스님께 예를 갖추도록 하여라!”

상좌 스님은 다시 스님께 예를 올렸습니다.

그 후 상좌 스님은 주지 스님의 모든 법을 전수받았습니다. 주지 스님의 젊은 시절처럼 늘 〈법화경〉을 수지 독송하였지요. 그러자 그 옛날처럼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상좌 스님을 놀리지 못했습니다. 보은사는 인근 마을은 물론 먼 곳에서도 찾는 아주 유명한 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상좌 스님은 늘 그대로였습니다. 그 사이 주지 스님이 돌아가시고, 마을의 여인마저 세상을 떠나자 상좌 스님은 깊은 산골로 들어갔습니다.

많은 수행자들이 그를 찾으러 산속을 헤맸습니다. 그러나 그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한 수행자가 기어이 그를 찾겠다고 그가 있음직한 산골짝을 헤매고 있을 무렵, 어디선가 낭랑한 독경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

지은 업은 당장은 안 나타나지만

그늘에 숨어 있어 그를 따른다. 

수행자는 부리나케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울울창창 산속에 조그만 호수가 있었습니다. 그 호숫가에 수행자가 찾던 상좌 스님이 〈법화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조심조심 수행자는 스님에게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스님이 독송을 하고 있는 사이 개구리 한 마리가 그 독송을 듣고 있다가 조용히 머리를 숙이고는 그대로 죽어버렸습니다. 보은사 주지 스님이 기르던 말처럼 개구리도 축생의 도에서 벗어났겠지요.

훗날 당나라의 대종사 수아 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부처님의 뜻이요 조사의 골수이며 내 마음의 경이다. 눈을 감고 명심하여 자세히 들으라. 제호의 맛이 좋아도 뱃속에 들어가면 곧 벌레다. 어찌 제호의 맛에 취하여 공부하지 않고 잠을 잘까 보냐. 수행자들이여 빨리 이치에 통달하라 하였습니다.

개구리가 전날 말의 마음을 알았을까요? 말이었던 스님이 훗날 개구리의 마음을 알았을까요? 돌고 도는 것이 세상의 이치요, 돌고 돌다가 다시 합쳐지는 것이 세상의 법도임을 미물인 말과 개구리도 깨우치는데, 하물며 우리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이제 한 해가 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새해가 오고 있습니다. 모쪼록 2015년은 말보다, 개구리보다 나은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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