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염송 공덕, 성난 바다서 횡액 면해

 

관세음보살님을 모신 절강성의 보타산(普陀山)은 지장보살님을 모신 안휘의 구화산(九華山), 보현보살님을 모신 사천성의 아미산(峨眉山), 문수보살님을 모신 오대산(五臺山)과 더불어 중국 4대 불산 중의 하나로 ‘중국 제1 불교 왕국’, ‘해천 불교 왕국’, ‘해상 선상’, ‘남해 불교 왕국’, ‘해상 봉래절’로 불리기도 합니다. 

드디어 장수가 탄 배도 출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장수는 손자를 끼고 〈법화경〉을 암송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장수가 〈법화경〉을 암송하자 그렇게 심하게 파도가 치던 바다가 잠잠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명나라 때 소주 사람 장수는 항상 〈법화경〉을 지송했고 수행하는 스님께 공양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어느 해 봄, 보타낙가산으로 가서 관세음보살님께 기도를 드려 볼까 하고 8살 먹은 손자를 데리고 떠났습니다. 보타낙가는 관세음보살이 거주하는 곳이란 뜻의 범어 ‘포탈라카(potalaka)’를 음역한 것입니다. 인도에서 관세음보살 신앙이 형성된 시기는 1세기말 무렵입니다. 그 후로 인도는 물론 중국과 한국ㆍ일본ㆍ티베트에서 널리 신봉했으며 그런 까닭에 관세음보살님의 거주지는 곳곳에 등장합니다.

인도에서는 남쪽 끝의 마라야산 동쪽 구릉지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화엄경〉‘입법계품’에 선재동자(善財童子)가 구도를 위해 세상을 돌아다니던 중 보타낙가산에 도착하는 구절이 나오는데, 바다에 접한 아름다운 곳이라 했습니다. 중국의 승려인 현장도 인도에 다녀와서 스리랑카로 가는 바닷길 가까이에 이 산이 있다고 기록한 바 있습니다.

중국의 보타낙가산은 절강성 동쪽 바다 가운데 주산군도 500여 개의 섬 중 작은 섬으로 해발 291m이며, 산과 들은 높지 않지만 기세가 웅장합니다. 물은 깊지 않지만 파도 소리가 요란하며 나무가 많아 특이한 풍경을 이루는 곳이지요. 계수나무, 녹나무 등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을 모신 절강성의 보타산(普陀山)은 지장보살님을 모신 안휘의 구화산(九華山), 보현보살님을 모신 사천성의 아미산(峨眉山), 문수보살님을 모신 오대산(五臺山)과 더불어 중국 4대 불산 중의 하나로 ‘중국 제1 불교 왕국’, ‘해천 불교 왕국’, ‘해상 선상’, ‘남해 불교 왕국’, ‘해상 봉래절’로 불리기도 합니다.

중국의 옛 시인들도 ‘산과 호수의 으뜸은 서호에 있고, 산과 강의 명승은 계림에 있고, 산과 바다의 절경은 보타에 있다’고 노래했습니다. 보타산은 보타낙가산의 준말로, 보타산과 낙가산 두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하여 불자라면 누구나 한번 참배하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지요. 그렇지만 그곳을 참배하는 일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이야 자동차, 혹은 배나 비행기가 있어 그리 어렵지 않지만 그러한 것들이 없던 그 옛날에는 목숨을 담보로 하는 험한 길이었습니다.

그러한 곳을 혼자도 아니고, 손자를 데리고 떠나는 길, 장수는 행복했지만 불안했습니다. 나뭇잎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즐거운 봄길, 그러나 장수는 손자의 손을 잡고 〈법화경〉의 구절들을 암송하며 길을 재촉했습니다. 사실 그 암송은 두 사람 참배 길의 무사안전을 바라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드디어 항주, 그는 조금이라도 빨리 보타낙가산으로 가기 위해 육로인 서릉을 피해 곧바로 가는 바닷길을 택했습니다.

그 때 해안에는 배들이 널려 있었는데 장수가 어떤 한 배에 오르고자 하니 마침 그 어린 손자가 배를 넘겨다 본 즉, 배에 가득 찬 사람들이 모두 포승으로 손발이 묶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손자는 장수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그 배는 안 됩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자세히 보십시오. 배에 있는 사람들이 포승줄에 묶여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장수의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누가 묶여 있단 말이냐?”

“할아버지, 제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장수는 이상했지만 손자를 믿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음 배에 오르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또 손자가 만류했습니다.

“할아버지, 그 배도 앞의 배처럼 불상지조(不祥之兆)가 있습니다.”

장수는 굳이 손자에게 그 이유를 되묻지 않았습니다. 까닭은 모르지만 손자의 말에는 이상한 힘이 있었습니다. 장수는 곧바로 다음 배를 살펴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손자가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할아버지, 이 배는 아무 일 없습니다.”

그러나 장수는 이 배도 불안했습니다.

“아니다. 어쩐지 이 배도 불안하다. 그러니 다른 배도 좀 알아보자......”

그런데 뜻밖에도 사공 같은 사나이가 뱃머리로 쑥 나서며 말했습니다.

“이 배가 안전하니 노인장은 어서 오르시오.”

그리고는 누군가 등 뒤에서 장수와 손자를 배 위로 밀어주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장수는 여러 가지 이상한 징조에 놀라 급히 손자를 끼고 그 배로 뛰어올랐습니다. 그런데 배 위에서 살펴보니 이 배로 올라오라고 부르던 사람과 등 뒤에서 밀어주던 사람,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로고.”

“할아버지, 이 배는 안전합니다.”

이윽고 배들이 해안에서 출발하여 중류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날이 저물고 사방이 캄캄해지면서 그만 폭풍이 일어났습니다. 물결은 눈빛처럼 뱃전에 와 부딪치고 모진 바람이 일어 먼저의 두 척 배는 그만 그 자리에서 전복되고 말았습니다.

“사람 살려!”

“살려주세요!”

도처에서 그 소리가 들리는데도 캄캄한 바닷가에서 그들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드디어 장수가 탄 배도 출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장수는 손자를 끼고 〈법화경〉을 암송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장수가 〈법화경〉을 암송하자 그렇게 심하게 파도가 치던 바다가 잠잠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 다른 사람들도 그 뜻을 알고 모두 합창으로 장수가 외는 〈법화경〉을 따라 외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 파도가 멎었습니다.”

“모두 관세음보살님 덕분이다.”

불행하게도 침몰한 두 배에 탔던 사람은 한 명도 살아나지 못하였고, 오직 장수가 탄 배만 순풍을 만나 편안히 육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튿날 그곳의 현령이 하인들을 데리고 달려 나와서 수십 명의 송장을 건져 내어 검시하여 본 결과 그들은 모두 인신매매를 업으로 삼는 자들이었습니다. 사람을 팔아 번 돈으로 도박을 하여 재산을 탕진하는 못된 악당들이었던 것이지요.

장수는 탄식하였습니다.

“저런 불량한 자들이 배에 탔으니 어찌 천지신명이 미워하지 않겠느냐. 다만 그중 선량한 사람들도 몇 있어 함께 횡사한 것이 애석하구나.”

장수가 〈법화경〉에 인연을 맺고 있어 횡액을 면한 것은 두말할 것이 없지만, 배안의 불상지조를 손자에게만 보여준 것이 이상하여 장수는 손자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어떻게 그것을 알았느냐?”

“할아버지, 저는 어제 꿈속에 이미 오늘의 일을 다 보았습니다.”

“응?”

“꿈속에 관세음보살님의 시자가 나타나 오늘 일어날 일을 다 말씀해주셨습니다. 다만 미리 할아버지에게 알려드리면 큰 혼란이 일어나니 비밀로 하라고 하셨지요.”

그제야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마도 손자가 자신에게 먼저 오늘 일을 말했다면 자신은 모든 사람을 살리려고 소동을 피웠을 테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그 누구도 자신의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지요. 장수는 손자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사람이 지은 업은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도 구제할 수가 없단다.”

그 후 장수와 손자는 아름다운 보타낙가산의 모든 절들을 참배하고 집으로 돌아와 오로지 부처님과 〈법화경〉을 의지해 평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중국의 보타낙가산은 이러한 전설과 전설이 덧쌓여 오늘날 우리나라 불자들은 물론 일본이나 유럽의 사람들도 많이 찾는 세계의 명승지가 되었습니다. 인도나 중국처럼 우리나라의 강화 낙가산 보문사도 이러한 유래에서 생겨난 절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중국의 보타낙가산이 아니더라도 가까운 강화 낙가산을 다녀오는 것은 어떨지요? 그곳에 가면 분명 두 팔 두 손을 모두 벌린 관세음보살님이 한껏 반겨 맞아 주시겠지요.우봉규/작가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