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노인 가르침에 속세 떠나 자취 감춰

 

“도력은 무슨 도력, 매일 먹고 자는 일 아니면 하산하여 탁발이나 하는 것이 고작인 스님을 바라보고 3년씩이나 기다린 내가 어리석었지.”

〈법화경〉 강의로 신통자재하다는 어느 스님을 찾아 영축산 토굴에 가서 삭발한 연회 스님은 이제나 저제나 하고 〈법화경〉 강설을 기다리다 결국은 절을 떠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3년이 되도록 죽도록 나무하고 밥만 했던 것이지요. 너무 분했습니다. 부처님 법을 공부하기 위해 이 산중까지 찾아왔는데 공부는 커녕 쓸데없는 허드렛일만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 참담한 심경을 어디 하소연 할 데도 없었습니다. 연회 스님은 뒤도 돌아보지 산문을 나섰습니다. 미련도 후회도 없었습니다. 연회 스님이 그렇게 분한 마음을 참으며 걸망을 지고 막 토굴을 나서려는데 아주 준수하게 생긴 낯선 스님이 한 분 찾아왔습니다.

“누구신지요?”

“예, 낭지 스님의 법제자가 되려고 찾아온 지통이라 합니다.”

연회 스님은 내심 놀랐지요.

“아니, 이리도 맑은 분이 우리 스님의 법제자가 되려 하다니….”

연회 스님은 다시 물었습니다.

“스님께선 어떻게 이곳에 오시게 됐는지요?”

“어느 날 절 앞마당에 까마귀가 와서 영축산에 가서 낭지 스님의 제자가 되라고 일러주기에 예사로운 일이 아닌 듯하여 찾아왔습니다.”

이 때 마을에 내려갔던 낭지 스님이 돌아왔습니다. 지통 스님이 인사를 올리자 낭지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어서 오게. 기다리고 있었네. 신령스런 까마귀가 자네를 깨우쳐 내게 오게 하고, 또 내게 알려서 자네를 맞게 하니 이 어찌 상서로운 일이 아니겠는가.”

지통은 감읍하여 낭지 스님에게 귀의했습니다. 이를 지켜본 연회 스님은 그제서야 자기 스님 법명이 낭지며 법이 높으신 분임을 짐작했습니다.

연회는 그 자리에서 걸망을 풀고 지통과 함께 낭지 스님 문하에서 새롭게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법제자 지통 스님에게도 가르치는 것이 없었습니다. 또다시 의심이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연회 스님은 참고 또 참았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낭지 스님은 드디어 지통 스님에게 〈법화경〉 강설을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미묘한 법문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먹고 자고 쌀이나 탁발해 오던 스님에게서 어떻게 저런 법문이 나올 수 있을까?

연회 스님은 불현듯 궁금증이 일어 낭지 스님 뒤를 몰래 밟았습니다. 그런데 산 정상에 오른 낭지 스님이 무슨 주문을 외우자 구름이 스님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낭지 스님은 그 구름을 타고 어디론가 흔적없이 사라졌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다음날 연회 스님은 스승 앞에 나아가 어제 일을 고백하고 용서를 빈 뒤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스님은 구름을 타고 어디를 다녀오시는 것입니까?”

낭지 스님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 일이 그렇게 궁금하냐? 그렇다면 일러주마. 나는 구름을 타고 청량산에 가서 문수보살 설법을 듣고 오느니라.”

연회 스님은 날이 갈수록 스승 낭지 스님이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도력을 지녔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덧 무려 15년의 세월이 흘러 낭지 스님은 제자 연회에게 〈법화경〉 강설을 끝마쳐 주고 보현관행 닦는 법을 일러준 뒤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스승이 떠나자 연회 스님은 토굴 앞뜰에 연못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왜 토굴 앞에 연못을 팔까?

“저 연못을 어느 세월에나 볼 수 있을까?”

하루에 열 삼태기씩 파는 스님을 보고 사람들이나 스님들은 빈정댔습니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고 연못은 금방 완성되었고, 계곡물이 모여 연못 물이 깊어지자 연꽃이 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연꽃은 겨울이 되어도 시들지 않고 사시사철 피어 있으면서 온 산에 그윽한 향기를 풍겼습니다. 연회 스님은 그 후로 30년 동안 〈법화경〉을 읽어 얻은 영험을 기뻐하며 보현관행에 더욱 주력했습니다.

“영축산에 이상한 연못이 생겨 춘하추동 지지 않는 연꽃이 피어 있답니다.”

소문이 마을에 퍼지자 전국에서 구경꾼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연회 스님의 준수하고 인자한 풍모에 저절로 합장을 하고 미묘한 향기의 연꽃에 환희심을 냈습니다. 어느 날 눈병으로 앞을 못 보는 아들을 업고 온 여인을 측은하게 여긴 연회 스님은 연꽃 한 송이를 꺾어 아이의 눈에 비비면서 〈법화경〉을 읽어 주니 아이는 그만 눈을 떠 광명세계를 얻었습니다.

이 영험의 현장을 본 참배객들은 영축산 연꽃을 만병통치 영약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 뒤 스님은 국사가 되었고, 영축산 연못은 환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병을 고친 환자들은 스님이 토굴에서 사시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대불전을 세워 연회사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스님은 당황했지요. 사람들 보기가 민망했지요. 연회 스님은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국사가 되다니…. 자격도 없지만 명예와 부귀란 혼탁한 급류에 몸을 던짐과 같으니 이 길을 피해야겠구나. 내가 없더라도 연꽃은 피어날 터이니까.”

그 즈음 연회 스님을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일반 백성들은 물론이고, 왕이나 대신들도 앞다투어 스님을 초청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신들이 아우성을 쳤습니다. 연회 스님은 국사 초빙을 하려는 대신들이 오기 전에 몸을 피하기 위해 급히 길을 떠났습니다. 드디어 스님이 가까스로 영축산 산등성이를 넘었을 때 어떤 초라한 노인이 나타나 조용히 물었습니다.

“스님, 어딜 그렇게 바삐 가십니까?”

“뜻밖의 소문에 어쩔 수 없이 암자를 버리고 조용한 토굴을 찾아가는 중이오.”

“그렇다면 스님이 연회 법사시군요. 스님, 영축산에서 연꽃 장사를 하나 권력과 부가 있는 국왕 옆에서 연꽃 장사를 하나 연꽃 장사는 마찬가지 아닙니까?”

스님은 아주 불쾌했습니다. 번잡한 속세를 피해 조용히 공부하러 가는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하는 노인이 우습게 보였던 것이지요. 스님은 평소와 다르게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노인장, 그런 속된 말로 사람을 속물로 만들지 마시오.”

기분이 상한 연회 스님이 다시 발길을 옮기자 노인은 스님 등을 향해 크게 소리쳤습니다.

“멍텅구리 같은 스님,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면서 무슨 도를 닦는다고!”

들을 필요가 없는 말이었습니다. 나더러 멍텅구리라니? 스님은 빠른 걸음으로 고갯길을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또 다른 노파와 마주쳤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지요. 스님은 그 노파를 외면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노파가 또 말을 붙였습니다.

“스님, 오시는 길에 노인을 못 보셨어요?”

“그 분이 아주 나를 불쾌하게 했습니다.”

“아이고 이런 답답한 스님 봤나. 그분은 문수보살의 화현이십니다.”

“예?… 그럼 할머니는 누구신가요?”

“나는 문수보살을 모시는 천녀라오.”

“예? 아......”

스님은 통탄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국왕이나 대신들 옆에서 연꽃 장사를 하나, 영축산 옆에서 연꽃 장사를 하나
모두가 같은 것을! 그 후로 스님은 더 이상 세상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자취를 감췄습니다. 온갖 분별심이 난무하는 지금같은 연대에 참으로 문수보살님의 화현인 노인의 가르침을 금과옥조로 처럼 여기는 그런 수행자를 보고 싶습니다. 그런 불자들을 보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