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잘라 법화 수행자 위한 양식 구해"

유 씨는 즉시 자기의 머리카락을 잘라 시장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 머리카락을 팔아 양식을 구해다가 대사를 대접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대사는 그런 까닭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유 씨가 머리에 수건을 썼기 때문이었습니다.

보신대로 저희 집은 이 마을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입니다. 거룩한 대사님을 대접할 방도가 없어 제 머리카락을 잘라 양식을 구했더니, 세 번이나 그 머리카락이 이렇게 다시 자랐습니다. 이것이 부처님과 보살님들의 가피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중국의 홍조대사는 스무 살에 스님이 되어 〈법화경〉을 배워 읽기로 업을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 스님이 원체 총명하여 7축이나 되는 경전을 두 달 만에 외워 마쳤습니다. 남들은 평생을 하여도 하기 힘든 놀라운 일이지요. 하여 그는 종남산에 토굴을 정하고 다시 〈법화경〉 1000번 외우기를 맹세하고 불철주야로 독송함에 밤마다 천신이 내려와서 은근히 호위하였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그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집 부인 유 씨가 급하게 합장을 하며 달려 나왔습니다.

“대사님, 대사님?”

홍조대사 역시 합장을 하며 물었습니다.

“어인 일로 소승을 이렇게 불러 세우십니까?”

“저는 일찍이 대사님의 덕행을 듣고 저희 집에 머물게 청할 수 있기를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대사님을 뵈었으니 부디 제 청을 뿌리치지 말아 주십시오.”

대사는 막막했습니다. 중요한 불사가 있어 꼭 약속을 지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나라에서 지은 큰 절의 준공식 설법을 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절대로 어겨서는 안 될 약속이었습니다.

“딱하기는 합니다만 제가 큰 불사가 있어서......”

그러자 유 씨의 말투가 단호했습니다.

“대사님이 제 청을 거절하시면 저는 이제 다시는 대사님을 뵐 수 없을 것입니다.”

“그건 어인 말씀이신지요?”

“제 명운이 짧아 대사님이 돌아오시는 날이면 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대사는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아니 보살님이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꿈속에 나타나신 관세음보살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유 씨의 말을 믿을 수는 없었지만, 유 씨의 청이 너무도 간절하여 대사는 그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가난한 살림살이, 그런데도 자신을 간곡히 청하는 그 마음을 뿌리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제가 보살님의 말씀대로 그럼 며칠만 이곳에 머물도록 하겠습니다.”

대사는 유 씨의 극진한 대접에 보답하기 위해 밤낮으로 〈법화경〉을 외우며 정진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열흘쯤 지나자 집안에 먹을 것이라고는 한 톨의 곡식도 없게 되었습니다.

대사도 그것을 짐작하고 그만 떠나기로 정했습니다.

그러나 대사를 순순히 놓아줄 유 씨가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도 유 씨가 정성을 다하여 만류했습니다.

“저희 집이 가난하다고 하여 떠나지 말아주십시오. 아무리 가난하여도 거룩하신 대사님을 위한 양식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대사는 다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난, 유 씨의 그 말이 대사가 떠날 수 없게 못을 박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 씨는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일단 대사를 붙잡기 위해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양식을 구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게 되었습니다. 유 씨는 혼자 손뼉을 쳤습니다.

유 씨는 즉시 자기의 머리카락을 잘라 시장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 머리카락을 팔아 양식을 구해다가 대사를 대접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대사는 그런 까닭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유 씨가 머리에 수건을 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유 씨가 분주하게 시장을 왔다 갔다 하는 그 모습이 안쓰러워 이제 정말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대사는 다시 유 씨를 불러 앉혔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보살님, 제가 이곳에서 너무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았습니다. 보아하니 보살님 댁의 형편도 넉넉지 않은데 저는 이만 떠날까 합니다.”

유 씨는 울면서 말했습니다.

“안됩니다. 며칠만 더 이곳에 머물러 주십시오.”

유 씨가 또 눈물을 흘려가며 못 가게 하는지라 대사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습니다.

“그럼, 단 며칠만 더 머물도록 하겠습니다.”

“대사님, 감사합니다!”

“대사님, 감사합니다!”

그러나 유 씨는 또 난감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대사를 대접할 방도가 없었던 것이지요. 유 씨는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하면서 뒤척였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무슨 방도가 없을까요?”

그러나 아무리 합장을 하고 기도를 해도 별다른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렴풋 새벽녘에 우연히 수건을 쓴 자신의 머리를 만져 본 유 씨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머리카락이 예전 그대로였던 것입니다. 유 씨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님!”

유 씨는 얼른 머리카락을 잘라 동이 트자마자 시장으로 내달렸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세 번이나 하였는데도 역시 유 씨의 머리카락은 그대로였습니다. 물론 그때까지 대사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지요.

대사는 그럭저럭 한 달이나 있다가 떠나게 되었습니다.

유 씨도 더 이상은 대사를 막지 못했습니다,

“이제 저는 정말 떠나겠습니다. 그 동안 보살님께 너무나 많은 신세를 지고 갑니다.”

그런데 유 씨의 다음 말이 이상했습니다.

“대사님, 대사님의 양식은 대사님이 준비한 모양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대사는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그러자 유 씨가 그 동안의 일을 낱낱 이야기하였습니다.

“보신대로 저희 집은 이 마을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입니다. 거룩한 대사님을 대접할 방도가 없어 제 머리카락을 잘라
양식을 구했더니, 세 번이나 그 머리카락이 이렇게 다시 자랐습니다. 이것이 부처님과 보살님들의 가피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유 씨 부인은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 했지만, 홍조대사는 웃을 수 없었습니다. 부처님이나, 보살님들의 가피는 둘째 치고, 자신을 대접하기 위해 세 번이나 머리카락을 자른 유 씨의 얼굴을 바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대사의 눈가엔 이슬이 맺혔습니다.

“세상모르는 제가 어쩌다가 보살님께 그 같은 고초를 안겨드렸는지요? 그것도 모르는 저는 보살님이 해주는 밥을 꾸역꾸역 그렇게 먹고 있었으니......이 큰 죄를 어떻게 갚을 수 있겠는지요?”

눈물어린 대사의 말에 유씨 역시 눈물을 머금으며 고백했습니다.

“제가 얼마 있지 않아 세상을 마친다는 말은 거짓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대사님을 저희 집에 모시기 위해서 저지른...... 크고 중한 불사 때문에 가시는 대사님을 속였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유 씨가 대사 앞에 엎어져 오열했습니다.

대사는 유 씨의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보살님, 저를 용서하십시오. 이 세상에 이보다 더 크고 중한 불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소승, 보살님께 큰 죄를 짓고 떠납니다.”

눈물을 머금고 떠나는 홍조대사, 그 뒤에서 역시 눈물을 머금고 합장을 하는 유 씨 부인, 모름지기 이런 법사와 이런 불자들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믿음을 갖고 싶습니다. 그런 꿈을 꾸고 싶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불국토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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