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색내기 급급한 불교계에
불교호스피스 병원 건립 귀감
스님의 15년 서원에 박수를

최근 울산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이 개원식과 기념법회를 가졌다. 100억 가까운 예산과 10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준비된 불교계 최초의 호스피스 전문병원 개원식이었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비롯해 사부대중의 수희공덕과 함께 진행된 이날 행사는 이사장인 능행 스님의 서원이 매듭을 짓는 순간이기도 했다. 개인 주택 하나 세우는 데도 많은 법적 문제와 건축 현장의 어려움, 초과되는 건축경비 등 생각만 해도 머리를 아프게 하는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실을 맺은 능행 스님의 15년에 걸친 서원과 인욕의 힘은 그 자체로 수행이라고 간단히 말하기에는 너무도 감동스런 부분이 있다.

굳이 긴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한국불교계의 현실은 결코 스님을 위한 제도도, 그렇다고 재가자를 위한 제도도 아니다. 긴 역사를 가진 불교임에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 한국사회의 격변기를 겪으면서 분단조국의 현실을 반영하듯 확고하고 안정된 체제라기보다는 여전히 그때그때 대처하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는 그 누구 개인의 책임도 아니요,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부대중의 공업일 수도 있다. 그런 과정 중에 승려의 신분을 숨기고 이웃 종교 시설에서 임종해야 했던 한 스님을 만나면서 꽃피운 능행 스님의 서원과 결실의 의미는 단지 불교계 호스피스 전문 병원 하나 건립한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포교의 목적도 있기에 그럴 수도 있지만, 많은 종교 활동과 행사는 눈에 드러나는 것에만 주목하고 힘을 기울인다. 잘 살펴보면 ‘동양 최대 불상, 불사’ 등으로 눈에 뜨이는 불교계 행사나 불사는 나날이 늘어가는데 정작 중생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드러나지 않는 행사나 불사는 주류 불교계의 관심 밖이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중생의 고통을 위하여 범불교계 차원의 운동이 요구되는 분야가 너무도 많다. 제대로 된 불교계 호스피스 전문병원이 10년이 넘게 묵묵히 모든 고통과 오해를 무릅쓰고 일을 추진한 한 비구니 스님의 원력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한국 불교계로 보면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세속사회와 같이 눈에 드러나는 것만을 지향한 불교계는 이번 일을 계기로 점차 눈에 드러나지 않아도 사회에 너무도 필요한 부분을 살펴가는 성숙한 종교 집단으로 가는 길목에 설 필요가 있다. 당일 격려사를 한 통도사 원산 스님이 조계종단 각 본사마다 이런 호스피스 전문병원을 만들자는 의견과 더불어 그동안 불교계가 눈에 드러나는 49재나 천도재로부터 임종이라는 지금 이 자리의 고통 보다 주목해야 한다는 운문사 회주 명성 스님의 말씀이 새삼 와 닿은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러나 연단 위 능행 스님이 이 거대불사 회향에 대한 인사말 순서에서 가슴 속에 있는 그 많고 많은 이야기를 다 생략하고 조용히 사부대중에 대한 삼배로 대신하는 그 순간,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는 유마거사의 우뢰와 같은 침묵을 느낀 이들도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뜨거운 오후 햇살 속에 진행된 행사라서 땀은 옷을 적셨지만, 불교계를 부끄럽게 하는 스님의 묵직한 침묵 앞에 나 역시 수안 스님께서 기꺼이 그려주신 기금 마련용 그림 하나를 사는 것으로 그 동안 크고 작게 수고한 여러 사람들에게 구차하게 변명하는 부끄러움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은행 대출금과 건축비 미지급금이 남아있다니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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