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정신, 순례에 부적합
외부 정신에 의존 없는
불교적 가르침 기반돼야

 요즘 조계종 총무원의 새 출범에 맞춰 화쟁코리아 100일 순례가 진행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지역ㆍ진영ㆍ계층을 아우르는 야단법석을 펼쳐 한반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열과 갈등, 고통의 현장을 어루만지고 남남갈등, 남북갈등 해소의 밑거름을 만들어 가자는 좋은 행사이다.

하지만 이 행사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많은 불자들에게 우려스럽게 보인다. 행사를 이끌고 있는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본부장 도법 스님은 이번 행사가 원효 화쟁사상과 3·1정신에 근간한 범 사회 차원의 통합·치유운동임을 강조했다. 이는 매우 매력적인 말이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번 행사의 취지에 원효의 화쟁사상으로는 무엇이 부족해 굳이 3.1정신을 넣어야 했는가라는 의문과 더불어 3.1정신이 분열과 갈등을 넘는 화합의 정신인가라는 의아함이 생긴다.

대립을 넘어 소통과 화합을 위한 행사 취지로 보아 화쟁정신으로 그 기본을 삼아도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행사에 굳이 3.1정신을 거론한 것은 갈등과 대립에 대한 사상적 접근에 있어서 원효의 화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조계종 총무원이 스스로 자인한 셈이다. 이는 장구한 한국불교의 사상적 의미를 조계종 스스로가 초라하게 한 행위다.

또한 3.1정신이라면 민족과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 통치에 항거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3.1독립운동 과정에서 종교인들이 서로 힘을 합한 모습이 있었기에 총무원이 3.1운동 과정에서의 선조들의 정신을 되새기자는 정도로 말했다면 모를까, 화쟁코리아 순례의 근본정신으로 3.1정신을 거론하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럽다. 3.1운동이 결코 일제와 소통하고 화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 근간인 3.1정신에 대하여 분열과 갈등을 넘어 화합의 정신으로 말하는 것은 역사 왜곡이기도 하다.

한편 이 교계 행사의 시작을 굳이 백록담에서의 천고제로 시작한 것은 민속행사나 무당의 행위처럼 보인다. 차라리 그 취지에 맞춰 제주 강정마을과 같은 갈등 현장에서부터 시작했어야 했다. 그런 것이 불교계가 일반인들과 함께 하기 위한 모습이라고 변명한다면, 사회적으로 취약하고 불평등과 갈등이 있는 곳을 마다하지 않고 스스로를 낮춤으로서 일반 국제사회에서 참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현 프란체스코 교황의 발언과 행동을 배워야 한다. 교황의 그런 모습은 철저히 가톨릭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다. 굳이 외부 정신을 가져와야 한다면 종단 스스로가 한국불교를 빈곤하게 하는 행위다. 불교적인 것으로 우리사회에 보편적 가치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불교는 존재 기반을 잃는다.

이런 모습의 원인은 현 조계종 총무원장의 지난 임기 때 제기된 여러 문제들이 화쟁정신을 표방한 결사를 거론해 무마했던 상황과 맞물려 있다. 구호와는 달리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새 집행부로서는 더 이상 화쟁을 반복할 수도 없으니 왜곡까지 하면서 3.1정신이라도 빌려와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좋은 취지의 이번 행사가 많은 이들에게 사회 갈등과 아픈 상황을 구실로 만든 새 총무원 홍보용 이벤트로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의도가 어찌되었건 표방하는 취지에 따라 좋은 결과 있기를 기원할 뿐이다. ‘3.1정신으로’ 화쟁코리아 표현은 참 멋지다. 그러나 한국불교계를 생각할 때 참으로 가슴 아픈 표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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