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퍼진 소나무재선충
백두대간도 안전지대 벗어나
생태운동 ‘백산포럼’ 활동 기대

우리가 살아가는 강토를 가리켜 비단에 자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는 말로 예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는 곧 금수강산(錦繡江山)이 아닌가. 이토록 산수가 수려했던 까닭 뒤안에는 여러 나무가 우거진 숲을 더욱 그윽하게 장식한 늠름한 소나무가 늘 자리를 잡았다. 소나무는 은행나무 다음으로 오래 사는 나무라고 한다. 그래서 장수의 상징으로 내세웠거니와, 십장생도(十長生圖)의 한 자리를 요지부동으로 지켰다.

소나무는 문학에서도 청정한 기상으로 묘사되었다.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지거늘/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느냐/구천(九泉)의 뿌리 곧은 줄은 그로하여 아노라.”고 소나무를 우러러 본 윤선도의 시조가 문득 떠오른다. 이제는 벌써 겨울이 저물어 눈이 제법 쌓였으니, 백설이 만건곤(滿乾坤)한 산야에서 독야청청(獨也靑靑)한 소나무를 아직은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소나무에 몹쓸 병이 전국 곳곳을 휩쓴다는 소식이 여러 일간신문에 실렸다. 지난 1985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확인한 소나무재선충병이 그 주범인데, 지금은 전국 56개 시군에 만연되어 약 40여만 그루가 이미 말라죽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강원도에서도 재선충병이 6년만에 다시 확인되어 이를 막는 마지노선으로 삼았던 백두대간마저 더는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이 백두대간에는 한국 천태불교의 총본산 구인사가 자리한 연화지 언저리를 끌어안은 소백산이 우뚝하다. 산자락마다 눈이 길길이 쌓여도 소백산이 여전히 우람한 것은 눈밭 사이로 보이는 늘푸른 소나무숲의 울력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백산의 겨울은 산수화에 일필휘지(一筆揮之)한 어느 명인의 붓 자국처럼 오묘한 생명력이 어른거린다.

천태불교의 성지 연화지 일대의 소나무숲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중창조(重創祖) 상월원각대조사께서 연화지에 일찍 초막을 지으시고, 어린 묘목 하나하나를 손수 꼽으시어 이만큼 낙락장송(落落長松)으로 키워냈으니, 그 공덕이 한량없이 크다. 낮에는 일하고 밤이면 마음을 다스린다는 주경야선(晝耕夜禪)의 원력으로 키운 오늘의 소나무숲에서는 산을 부처님의 몸으로 여겼던 산색청정신(山色淸淨身)의 진리가 짙게 묻어난다.

그리고 애써 나무를 심으신 대조사님의 불심에는 중생을 어여쁘게 여긴 자비의 그림자 한 자락이 짙게 어른거린다. 그 분은 산림생태의 중요성과 함께 산골에 사는 중생의 복지(福祉)까지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우리가 어렵게 살았던 시절, 소나무 속살은 허기를 달래는 구황식품(救荒食品)이었다. 이와 더불어 소나무 뿌리에 붙어사는 고가식품인 송이(松)를 키워 산골 사람들에게 안겨 주었다. 소나무의 꽃가루 송화(松花)가 밀과(蜜果) 재료나 한약재가 되었다는 사실은 모두가 잘 안다.

어떻든 소백산의 늘푸른 소나무를 지키기 위해 모든 불자가 산감(山監)으로 나설 때가 되었다. 산림청은 소나무재선충병이 오는 5월께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예보를 내놓았다. 이를 예방하는 최선의 방법은 우선 말라 죽은 소나무를 찾아 베어낸 뒤, 나무를 약제훈증(藥劑燻蒸)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병이 오죽 끔찍했으면, 소나무 에이즈라는 별칭이 붙었겠는가.

새해에는 자그마치 120여만 그루의 소나무가 말라죽을 지도 모른다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나와 오는 봄이 걱정이 된다. 그래서 이미 오래 전에 출범한 천태불교의 생태보존 운동 그룹인 백산포럼에 거는 기대 또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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