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즈음 마음치유, 일명 힐링(healing)이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힐링은 정신의학 측면 뿐 아니라 연극 영화 또는 출판 분야에서도 폭넓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정신적 안정과 풍요를 간구(懇求)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힐링의 효과는 명상 수행에도 있는가 봅니다. 실제로 명상을 통해 마음치유를 하는 정신의학자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힐링에 대한 관심이 증폭하고 있는 것은 반가운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로간 정서적 교감을 통해 희망을 키우고 원활한 소통을 기하기 때문에 더욱 권장할 사안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마음의 행복을 간과하고 물질적 풍요에만 집착할 경우 인간들은 절망적 상황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최근 도박빚에 쪼들린 아들이 어머니와 형을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보도는 마음의 안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일깨워주기에 충분합니다. 사람들은 절망에 빠졌을 경우 도덕적 타락을 쉽게 경험하게 됩니다. 절망의 상황에서 못할 짓이 뭐 있겠습니까?

절망은 일반적으로 미래에의 희망을 잃은 정신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19세기 중반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을 철학사상으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키에르케고르에 의하면 인간에 있어서 최대의 불안과 공포는 죽음이지만 근본적으로 두려운 것은 인격이 지니는 생의 지고한 목표를 잃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절망은 바로 이러한 인격을 잃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속화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더 넓게 유행합니다. 절망은 곧 ‘좌절’로 이어지며 ‘좌절’은 사회에 대한 이유모를 적개심과 분노심을 표출한다는 것입니다. ‘묻지마 범죄’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절망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는 소설이 있습니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의 작품으로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데 ‘옥상의 민들레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작품의 줄거리를 요약해 소개하자면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궁전 아파트에서 노인들이 베란다에서 떨어져 자살하는 사고가 연이어 발생합니다. 아파트 사람들은 이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면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까봐 염려해 대책회의를 갖지만 별다른 묘안이 없습니다. 한 아이도 엄마를 따라 회의에 참석합니다. 뚱뚱한 한 아주머니가 베란다에 쇠창살을 걸자고 제안합니다. 그렇게 하면 더 이상 베란다에서 뛰어내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입니다. 이 의견에 모두 찬성하는 분위기인데 어떤 사람이 반대의견을 제시합니다. 쇠창살을 설치한다 해도 자살하려고 맘먹으면 굳이 베란다가 아니더라도 옥상이 있는데 괜히 아파트를 감옥처럼 보이게 해 오히려 이미지만 안좋아진다는 것입니다. 엄마를 따라 온 아이는 생각합니다. ‘베란다와 옥상에 필요한 것은 다름아닌 민들레 꽃’이라고. 아이는 언젠가 엄마가 누군가와 통화하며 “그저 귀찮고 말 안들어서 못살겠다”고 아이에 대해 말합니다. 이 말에 충격받은 아이가 가족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자살하려 옥상에 올라갑니다. 밤이 되자 아이가 뛰어내리려 하다 발견한 것이 구석에 피어있는 민들레꽃이었습니다. 돌로 된 아파트 옥상에서 어떻게 꽃이 피었는지 신기해 한 아이는 민들레가 먼지 속에서 씨를 맺어 꽃을 피운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순간 아이는 하찮은 민들레지만 저렇게 살아보려고 먼지 속에서 열매를 맺었구나 반성하며 부끄러운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엄마는 아이를 보자 울음을 터뜨리며 “다시는 말없이 없어지지 말라”고 말하였고 아이는 비로소 엄마가 자신을 얼마나 소중한 존재로 여기는지 알았습니다. 아이는 이런 경험으로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민들레꽃이 필요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인생의 여정 속에서 숱하게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인생의 여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절망감입니다. 단번에 허물어지고 빠져나갈 구멍조차 없는 막막한 절망감이라면 그것은 분명 죽음보다 더 두렵고 아플 것입니다.

〈법화경〉에서는 부처님을 약왕(藥王)으로 묘사합니다. 죽음보다 깊은 절망 속에서 어떻게 하면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삶을 살아갈 것인지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절망에 갇혀있는 병든 자들을 위해 좋은 약초의 빛깔과 향과 맛을 다 갖추어 약을 지어 놓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좋은 약이다. 빛깔과 향과 맛을 아주 잘 맞추었으니, 너희들이 먹으면 고통이 사라지고 다시는 다른 병에 걸리지 않으리라.”

경전에서는 훌륭한 의사가 약을 제조할 때 빛깔과 향과 맛을 잘 맞추었다고 표현합니다. 이는 말하자면 3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빛깔과 향과 맛은 색(色) 향(香) 미(味)로서 계(戒) 정(定) 혜(慧) 3학으로 해석합니다. 3학을 잘 닦아 이루면 어떤 병도 잘 다스릴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부처님은 깊은 자비심을 담아 3학으로 제조한 약을 중생들에게 선물합니다. 즉 절망에 빠져있는 이들에게 최고의 묘약은 주변의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이의 눈에 비친 민들레꽃이 스스로 일어나고자 하는 의식이라면 아이가 확인한 것은 엄마의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희망을 키워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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