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영희의 <부처님오신날>

내 마음의 평화, 布施
―부처님오신 날에


(김영희/시인)
<詩文學> 신인상 당선으로 문단 데뷔.
지하철 <풍경소리> 작가회  편집위원으로 있으며
시집으로 <이상한 섬>, <行間의 바람>, <초록의 말>이 있다.

 

보랏빛 등꽃이 그늘을 드리우는 푸른 오월, 나뭇잎들이 연두빛 색감을 마구 풀어놓는 오월, 라일락 잔잔한 향기가 소리없이 코끝에 스며드는 오월이다.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그래서 오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던가.
올해도 어김없이 거리 곳곳마다 오색등이 내걸렸다. 며칠 후면 불기 2550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굳이 불자가 아니더라도 저마다의 가슴 속에 간직한 소망들을 연등에다 담는다. 물론 염원하는 것은 다 다르겠지만, 크게 보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바람이 아닐까 싶다.
지난 일요일, 집에서 가까운 절을 다녀왔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나는 내가 단 연등 옆에 다른 두 사람의 이름으로 등을 밝혔다. 올해는 나란히 세 개가 걸려 있다. 이십대 초, 불교를 처음 만난 이후로 해마다 초파일이 가까워오면 나도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 염원을 등에 담았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나에게는 등을 밝히는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 때 우리나라는 사상 초유의 IMF라는 경제위기를 맞았다. 갑자기 닥친 현실에 많은 사람들이 우왕좌왕하고 수많은 가정들이 뿌리 채 흔들리기 시작했다. 너나없이 힘든 시기였다. 어느 날 한 친구가 찾아왔다. 그간 잘 나가던 남편의 사업이 하루아침에 부도를 맞게 되어 졸지에 온 가족이 거리에 나앉게 되었다는 하소연이었다. 기존의 질서와 체계가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흔히 하는 말로 ‘따스한 말 한 마디'도 그런 상황에서는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를 절실히 느꼈다.
그렇다. 너무 절박한 상황에서는 그 어떠한 것도 무의미할 뿐이다. 오래 굶주린 사람에게는 당장 먹을 것을 주는 것 외에 더 절실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안타까운 마음만 있을 뿐, 내가 당장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해 부처님오신 날, 나는 그 친구를 위해 진실한 내 기도를 담은 등불 하나를 밝혀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야말로 내 간절한 기도의 힘이 조금이나마 그 친구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친구의 이름으로 등불을 켜니 체증처럼 걸려있던 내 마음의 부담이 조금은 덜어지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친구에게는 나의 그런 뜻을 말하지 않았다.
그 후 나는 해마다 초파일이 가까워오면 누군가의 이름으로 연등을 달아주게 되었다. 어떤 인연인들 소중하지 않을까마는 그래도 한 해 동안 가장 의미있게 다가왔던 사람을 나름대로 선정(?)하다보면 두 사람 또는 세 사람이 되는 해도 있었다. 그것이 올해로 7년째다. 그 중에는 힘들고 어려운 사연을 지닌 사람들도 있지만 더러는 새롭게 다가온 인연들도 있다. 모두 다 하나같이 나에게는 의미있고 귀중한 인연들인 것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등을 켜다 보니 부처님오신 날의 의미가 해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랑한다'는 한 마디, 그 말로 인하여 비어있고 메말라있던 가슴에 수많은 꽃들이 피어나는 것처럼, 누군가를 위해 내 작은 사랑과 믿음을 등으로 밝히는 그 순간, 내 가슴이 더 환해지고 더워온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상에는 손만 뻗치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가질 수가 있다는 말과도 같다. 그러나 ‘믿음'이라는 것은 그렇지가 않다. 누구든 손만 뻗치면 딸 수 있는 열매가 아니다. 믿음은 그 속에 ‘진실'이라는 열매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진실로 하나 된 마음이 그곳을 향하지 않거나 무관심하게 대해버리면 절대 찾을 수도, 가질 수도 없다.
그 진리의 열매는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진실하게 살아가는 길을 안내한다. 그것은 어떤 부자보다 더 많은 넉넉함을 가져다준다. 자신의 오만함과 이기심을 버릴 때 아름다움과 넉넉함은 그 사람에게 다가온다. 행복과 번뇌라는 것도 결국은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불법을 수행한다는 것은 자기의 마음을 찬찬히 더듬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들일수록 남의 것은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무관심하게 대한다. 이런 욕망에 사로잡혀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고, 나눌 것을 제대로 나누지 못하면 죄를 짓고 업을 쌓는 결과가 된다. 결국 마음 속 평화와 행복에서는 점점 더 멀어지고 만다.
보시 같은 수행을 하면 죽음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도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물질이 풍부하다고 해서 누구나 다 보시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진 것이 없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보시는 많다.
『잡보장경』에는 재물없이 보시하는 일곱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즉 ‘무재칠시(無財七施)'가 그것이다.
첫째, 안시(眼施) : 눈으로 하는 보시라는 뜻이다. 항상 부드러운 눈빛으로 사람을 대하라는 뜻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처음으로 교감하는 것이 눈인사다.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것처럼, 연인들이 다정한 눈빛을 서로 주고받는 것처럼 서로를 바라보면 그것만으로도 상대는 행복해진다.
둘째, 화안열색시(和顔悅色施) : 얼굴로 하는 보시라는 뜻이다. 언제나 온화한 얼굴과 즐거운 모습을 보여주는 보시를 말한다. 웃는 얼굴은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마력이 있다. 사람을 대할 때 찡그리지 말고 언제나 웃는 얼굴을 보여주면 웃는 만큼 서로가 행복해진다.
셋째, 언사시(言辭施) : 말로 보시하라는 뜻이다. 사람이 짓는 업 가운데 말로 짓는 업이 가장 많다. 욕설(惡口), 거짓말(綺語), 이간질(兩舌), 이치에 닿지 않는 말(妄語)등이 그것이다. 이런 말들은 서로의 가슴에 비수를 꽂거나 원한을 쌓이게 한다. 말을 할 때는 언제나 친절하게, 진실한 말, 칭찬하는 말을 해야 한다. 또 부드러운 말만 하고 험한 말을 하지 않는다.
넷째, 신시(身施) : 몸으로 하는 보시라는 뜻이다. 사람을 맞이할 때 항상 먼저 일어나 인사하는 것도 훌륭한 보시다. 내가 먼저 손 내밀며 인사하면 상대방도 마음의 문을 연다. 멀뚱멀뚱 쳐다보면 인간관계는 영원히 평행선이다. 남을 존경했을 때 상대도 나를 존경하게 된다.
다섯 째, 심시(心施) : 마음으로 하는 보시라는 뜻이다. 사람을 대할 때는 언제나 온화하고 착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타인에 대한 동정과 이해, 관용은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보시다. 같이 아파하고 같이 기뻐하는 마음은 어느 물질보다도 큰 가치를 지닌다.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가장 절실한 보시인지도 모른다.
여섯째, 상좌시(床座施) : 자리를 양보하라는 뜻이다. 버스나 전철을 탔을 때 빈자리가 있으면 먼저 상대방에게 양보한다. 자리를 양보한다는 것은 나의 이익을 상대에게 양보하는 것과 같다. 작은 보시지만 가장 큰 감동을 주는 것이다.
일곱째, 방사시(房舍施) : 잠자리를 보시한다는 뜻이다. 먼데서 찾아오는 손님에게 잠자리를 내주는 것도 훌륭한 보시다. 귀찮다고 문전박대하는 것이 아니라 환한 얼굴로 잠자리를 챙겨주면 여기서 인간의 따뜻한 정이 생긴다. 그리고 내세에는 궁궐 같은 집에서 살게 된다고 했다.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너와 내가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은 존재하고 또 아름다운 것이다.
향은 자신을 태움으로써 은은한 향기를 내어 온 세상을 맑히고, 초는 자신을 태움으로써 어둠을 몰아내고 주변을 밝은 빛으로 나아가게 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소신공양(燒身供養)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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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불교 제3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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