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아버지 성왕의 극락왕생 발원해 창건

능산리사지의 창건 연대와 창건 이유, 창건자에 대해서는 1995년 발굴 당시 목탑지의 심초석 부근에서 발견된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국보 288호)에 새겨진 명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리감의 좌우면에는 각각 10자씩 ‘백제창왕십삼계태세재(百濟昌王十三季太歲在), 정해매형공주공양사리(丁亥妹兄公主供養舍利)'라 씌어져 있는데 ‘백제 창왕 13년 정해년에 여동생인 형공주가 사리를 공양하였다'는 내용이다. 즉 딸이 아버지의 명목을 빌기 위해 사리를 공양하고, 절을 창건했다는 것이다.

창왕은 백제 27대 위덕왕으로 성왕의 아들이다. 554년 성왕이 붕어하자 같은 해 즉위했다. 그러므로 창왕 13년은 567년이 되며, 이 때 심초석의 사리 공양과 함께 목탑의 건립이 시작되었음을 밝혀지게 되었고, 능산리 사지의 초창년대가 567년경임을 추정할 수 있다.

백제 사비시대(538~660)에는 어떤 불교신앙이 유행했을까. 성왕(聖王, ?~554)이 538년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를 한 뒤 백제불교는 꽃을 피우게 된다.《삼국사기》권제26 성왕 19(541)년 기사에는 ‘왕은 사신을 梁으로 파견하여 조공하고 겸하여 글을 보내어 모시박사와 열반(涅槃) 등의 경의(經義)와 아울러 공장(工匠)·화사(畵師) 등을 청하였으니 梁은 곧 이 뜻을 따랐다'고 돼 있다.

당시 백제에서는 미타신앙, 법화신앙, 관음신앙 등이 유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능산리 사지가 창건된 사비시대는《법화경》을 중심으로 한 법화신앙이 유행해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송고승전》,《삼국유사》등에 기록된 현광·혜현 두 스님의 행적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현광(玄光) 스님은 생몰연대는 알 수 없으나 중국 남악혜사 문하에 들어가 수학한 백제 후기의 스님이다.《송고승전(宋高僧傳)》〈신라현광전(新羅玄光傳)〉에는 다음과 같은 현광 스님의 전기가 기록돼 있다.

진(陳)나라 형산(衡山) 남악 혜사(南岳 慧思, 515~577) 문하에서 선법(禪法)을 익혔다. 그는 스승으로부터 법화안락행문을 은밀히 받아 정진에 매진하다가 법화삼매를 증득했다. 혜사가 “너의 증득한 바는 진실하여 헛됨이 없다. 이를 잘 마음에 간직하여 법을 증장시키도록 노력하라. 그리고 너는 본국에 돌아가 선방편(善方便)을 베풀어 교화하라”했다.

이 전기의 내용으로 보아 현광 스님은 위덕왕 재세시에 중국유학을 마치고 고향인 웅주(熊州, 지금의 공주) 옹산(翁山)에 돌아와 법화행자로서 활동을 한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스님은 법화삼매를 증득해 백제에《법화경》의 가르침을 전했는데, 특히 안락행문을 중심으로 하는 실천적 법화신앙을 널리 폈다. 이를 통해 백제에 법화경선법이 유행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의 전법제자로는 기별(記별)을 받은 이가 1명, 화광삼매(火光三昧)를 증득한 사람이 1명, 수광삼매(水光三昧) 증득자가 2명, 중국의 혜민선사 등이 있다. 중국 남악혜사의 영당(影堂)에는 28명이 봉안되었는데, 그 중에 현광 스님의 진영이 있고, 중국 천태산 국청사(國淸寺) 조사당에도 스님의 진영이 모셔져 있었다고 전한다.

법화신앙을 널리 편 또 다른 사람이 혜현(惠現, 慧顯, 573~630) 스님이다. 혜현 스님은 백제 후기의 스님으로 어려서 출가하여 각고로 면학한 뒤《법화경》에 통달했다. 이 스님에 대한 얘기는《삼국유사》권5 <피은(避隱) 제8> ‘혜현구정(惠現求靜)' 조에 전해지고 있다.

어려서 출가한 혜현 스님은 오로지 한마음으로《법화경》독송을 업으로 하였다. 또 삼론을 전공하여 수덕사에 머물면서 찾아오는 불자들에게 강설하고, 혼자일 때는《법화경》을 독송하였다. 모여드는 대중을 피하기 위하여 강남의 달나산(達拏山)에서 좌선하다가 630년(무왕 31) 나이 58세로 입적했다.
동료 스님들이 그의 시체를 석굴 속에 두었더니 호랑이가 이를 다먹고 혀만 남겼는데, 3년이 지나자 그것이 돌같이 굳어졌다 한다. 이에 도속(道俗)한 이들이 이를 석탑 속에 두었다. 그는 중국에 유학한 일은 없었으나, 이름이 중국에까지 알려져 전기(傳記)가 쓰여졌고, 당나라에서도 명성이 높았다.

혜현 스님의《법화경》독송으로 나타난 신기한 설화는 백제에《법화경》신앙이 상당히 유행했음을 짐작케 해준다. 현광·혜현 두 스님의 행적으로 미루어 보아 백제 사비시대부터 법화사상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이 시대는 능사가 창건된 시점이어서 법화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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