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몽이 예에게서 활쏘기를 배웠는데, 예가 가진 기술을 모두 익히고는 천하에서 오직 예만이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여 예를 죽여버렸다.

 이에 대해 맹자가 말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예의 잘못도 있다. 공명의 같은 사람은 '예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했지만 잘못이 크지 않다고 할 수 있을 뿐이지, 어찌 잘못이 없겠는가? 예전에 정나라에서 자탁유자로 하여금 위나라를 침략하게 하였는데, 위나라에서는 유공지사를 시켜 그를 추격하게 하였다. 자탁유자가 '오늘 내가 병이 나서 활을 잡을 수가 없으니 나는 죽게 되었구나'라고 하고는 마부에게 '나를 뒤쫓는 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 마부가 '유공지사입니다'라고 하자 '나는 살았다'라고 했다.  마부가 '유공지사는 위나라의 활 잘 쏘는 자인데 어째서 살았다고 하십니까?'라고 묻자, 그가 대답하길 '<유공지사>는 <윤공지타>에게 활쏘기를 배웠고, 그 <윤공지타>는 바로 나에게 활쏘기를 배웠다. <윤공지타>는 '단정한 인물이므로 그가 선택한 친구 역시 틀림없이 단정한 인물일 것이다'고 하였다.

 유공지사가 도착해서 자탁유자에게 묻기를, ‘선생님께서는 어째서 활을 잡지 않으십니까?'하자, 자탁유자는 ‘오늘 나는 병이 나서 활을 잡을 수가 없소'라고 하였다. 그러자 유공지사가 말했다. ‘소인은 윤공지타에게 활쏘기를 배웠고, 윤공지타는 선생에게 활쏘기를 배웠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기술로써 도리어 선생님을 해치는 일은 차마 하지 못하겠습니다. 비록 그렇기는 하여도 오늘의 일은 저의 군주의 일이므로 제가 감히 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는 화살을 뽑아 수레바퀴에 두드려 쇠로 된 화살촉을 떼어내고서 화살 네 발을 쏜 후 돌아갔다."   
-  《맹자》 <이루> -

 ‘재주는 탁월하나 덕은 천박하다'는 말은 선현들이 사람을 평할 때 즐겨 쓰는 기준이다. 재주와 덕은 함께 하기가 어렵다는 현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재주와 덕이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는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할까? ‘물론 덕!'이라는 대답이 이구동성으로 터질 것이다. ‘덕스러운 인간'에 대한 사회적 갈증이 그만큼 심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음은 ‘덕'으로 기울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 세상사 아이러니이다.
 재주는 기술적 능력이다. 시장에서 이익을 창출하는 기능과 직결되는 것이 재주이다. 현대 시장주의 속에서는 경제 능력이 바로 재주로 통한다. 재주는 항상 유형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로 연결되기에 눈에 잘 띄고 평가하기도 쉽다. 이에 비해 덕은 무형적인 가치이다. 양심, 정직, 관용, 포용 등과 같은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것들이다. 그러기에 덕은 눈에 얼른 띄지 않아 평가도 쉽지 않다. 그러니 경제 이익을 추구하는 시장은 그 속성상 재주로 기울기 마련이다.

 시장 속에서의 인간은 재주에 눈이 쏠린다. 보이지 않는 덕은 칭송의 대상은 되나 선택의 대상은 되지 않는다. 이것이 시장의 천박함이고 비극이다. 이 시장의 천박스러움과 끝까지 대항한 것이 선현들의 지혜 전통이기도 하다. 말로만 칭송하고 현실에서는 외면하는 ‘덕'을, 정치 현실에서도 유효하게 만들려고 한 것이 동양의 선인들이다. 시장에서의 재주가 곧 정치 능력이라고 믿는 작금의 현실을 반성케 한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