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추운 겨울을 예고하듯 동장군이 찬 바람을 먼저 몰아치고 있습니다. 이럴 때면 군고구마 맛이 그리워집니다. 우리는 언 가슴 속을 데워주는 군고구마에서도 한 가지 교훈을 얻습니다. 군고구마는 단순히 간식용으로만 기능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고 지친 삶을 잠시나마 위무해 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전 고구마는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 속에 제 몸을 던집니다. 한 줌 재로 돌아가지 않고 제 몸을 고통스럽게 지켜내며 누군가의 양식으로 담금질 됩니다. 군고구마는 한 마디로 인욕의 재탄생입니다. 그리곤 인간에게 즐거움이 되고 때로는 위로가 되며 또 때로는 지치고 애절한 삶의 편린이 되기도 합니다.

인간의 삶도 군고구마와 비교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담금질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인간의 삶은 허망하게 부서집니다. 누가 나를 해코지 한다고 해서 욱하고 행한 처신이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얼마 전에도 한 무리의 청소년들이 가래침을 뱉는다고 훈계하는 40대 가장을 폭행해 사망케 했습니다.

왜 이렇게 참을성이 없을까요? 한순간의 욱하는 감정에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걸 정도로 끄달리게 될까요? 한 무리 청소년들의 창창한 운명은 그 한순간으로 인해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고야 말았습니다.

불교에서는 참음을 인욕(忍辱)으로 표현합니다. 〈해심밀경〉에서는 인욕을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첫째는 내원해인(耐怨害忍)입니다. ‘내원해인’은 누가 나를 해하려 하거나 대립관계에 있어 괴롭히더라도 맞서 싸우지 않고 무조건 참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는 안수고인(安受苦忍)입니다. ‘안수고인’은 우리 삶에 닥쳐오는 이런 저런 고통이 피해갈 수 없는 것임을 스스로 알아 차라리 고통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통을 받아들이다 보면 고통을 이겨내는 내성이 생깁니다. 고통에 단련됨으로써 웬만한 고통쯤은 대수로이 넘기게 됩니다. 셋째는 제찰법인(諦察法忍)입니다. 세상의 실상을 똑바로 관찰함으로써 나오는 참음을 ‘제찰법인’이라고 합니다. ‘제찰법인’이 불교에서 말하는 참음의 으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진리의 참음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생들에게 ‘제찰법인’의 단계까지 이르러 참으라 하기엔 무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음’이 곧 나와 상대 모두를 평화로 이끈다고 하는 사실은 부인해선 안 됩니다. 참음에 있어서 내성이 강화되는 첫 단계는 역시 ‘내원해인’에 있습니다. 누가 나를 해하려 해도 평화로 맞서는 것이 ‘내원해인’이라고 할 때 당장 내가 입어야 할 내상(內傷)이 깊어도 그 보상은 오래도록 유지될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당장 입어야 할 내상이 두려워 맞서 칼을 들고 상대를 향해 상처를 주려 한다면 결과는 모두 상처 투성이만 남게 됩니다. ‘참음’은 그래서 평화를 유지하는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참음’의 힘이 얼마나 감동적이고 위력적인 것인지를 실감케 하는지 부처님의 전생이야기를 통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부처님이 아득한 과거 전세에 인욕선인의 몸으로 깊은 산 바위굴에서 수행하고 계실 때였습니다. 그 때 나라의 임금은 가리왕으로서 아주 무도한 폭군이었습니다. 가리왕이 어느 날 사냥을 나갔습니다. 한참 사냥을 즐기던 가리왕은 한 낮이 되어 점심을 먹고 쉬다가 따뜻한 햇볕 아래 나른하여 잠이 들었습니다. 왕을 시중들던 궁녀들은 왕이 곤하게 잠이 들자 철쭉 진달래 등 만발한 꽃을 따라 산을 올랐습니다. 산의 중턱에 이르러 궁녀들은 수행하는 선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 눈에 세속의 때를 벗은 거룩한 어른임을 느낀 궁녀들은 선인의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한편 잠에서 깬 가리왕은 궁녀들이 보이지 않자 찾아 나섰고 마침내 궁녀들이 한 선인의 둘레에 모여 앉아 법문을 듣고 있는 광경에서 심한 질투와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인욕수행을 하고 있다는 선인의 말에 가리왕은 칼을 뽑아 오른 쪽 귀를 자르고 희롱했습니다. “그래, 참을 만한가?” 인욕선인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가리왕은 왼쪽 귀를 베었고 손도 베고 팔도 베어 냈습니다. 나중에는 두 다리도 잘라 버렸습니다. 가리왕은 자신의 잔인한 행동에 살려달라고 애원할 줄 알았는데 너무 태연자약하므로 진노하고 더욱 난폭해졌습니다. 인욕선인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을 무렵, 갑자기 맑은 하늘에서 뇌성벽력이 치고 사나운 바람과 함께 돌이 날아 와 가리왕의 얼굴을 때리자 겁에 질려 쫓기듯 산을 내려갔습니다. 선인 앞에 제석천왕이 나타나 잘려진 팔 다리를 모두 붙이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인욕선인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인데 인욕행을 5백생이나 했다고 합니다.

이 전생이야기는 참음에 그침이 있어선 안 된다는 점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끝까지 참아내라는 가르침입니다. 순도 99.9%의 금은 혹독한 제련과정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욕을 얼마나 잘 해내느냐가 우리의 인생을 빛내는 가치가 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평화의 삶은 인욕이 전제될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참고 또 참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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