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사용 등
사회공동체 개선에
불자가 적극 나서야

지난해 3월 일본 후쿠시마 핵 폭발사고로 엄청난 양의 방사능과 핵쓰레기가 누출되어 반경 수십 킬로미터가 죽음의 땅으로 변했다. 그 이후 유럽 여러 나라에서 신규 핵발전소 건설 포기, 기존 핵발전소 단계적 폐쇄 등 탈핵정책으로 선회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핵에너지를 청정하고 경제적인 에너지로 호도하며 시한폭탄과 같은 노후 원전을 연장 가동할 것은 물론 더 나아가 핵발전소를 확대 건설하겠다며 역주행을 마다않고 있다. 요행히 대형사고가 터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장구한 세월에 걸쳐 관리해야 할 핵폐기물의 위험과 그 처리비용까지 함께 고려하면 결코 청정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것이 핵에너지인데도 말이다. 미래세대, 미래의 생명을 죽음과 파멸로 몰아넣는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핵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우선 핵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내 문제이며,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문제임을 깨닫는 일이다. 일상에서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습관이 몸에 배야 한다. 여름에 추울 정도로 에어컨을 틀어대거나 겨울에 내복을 안 입어도 될 정도로 덥게 사는 것이 더 이상 자랑이 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핵발전으로 생산하는 전기는 전체 생산량의 1/3에 못 미치며, 전기에너지의 1/4 이상이 냉난방비로 사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가 절약하는 전기만으로도 핵발전을 멈출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실제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일본이 전기에너지 생산을 1/4 이상 줄였어도 사회는 별 문제없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것과 동시에 핵과 같이 위험한 에너지에서 안전하고 청정하며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 예를 들면, 태양광·풍력·조력·바이오매스 등 에너지원을 다양화 하는 정책을 정부와 정치권에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도 깨어있는 국민의 몫이다.

사회 공동체를 개선하려는 불자로서의 의식전환도 절실하다. 나 자신의 성공과 내 가족의 행복만을 위해 사는 사람을 참다운 불자라고 할 수 있을까. 하기야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으니 사회에 누를 끼치지 않고 착하게 사는 사람이라면 더 바랄 게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해지고 한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인간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는 현대생활에서 나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오히려 그마저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부처님 가르침 중 가장 짧고 강렬한 〈불설비유경〉에서도 일상적 삶과 쾌락에 안이하게 자신을 맡기고 사는 인간에 대한 안타까움이 잘 묘사되어 있지 않은가. 독사와 독룡이 득시글거리는 우물 속에서 가느다란 나무뿌리에 매달린 채 목숨이 위험한 지경인데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몇 방울의 꿀에 취해 자신의 처지를 까맣게 잊고 있는 중생의 어리석음 말이다.

생명·문화, 인권·통일 같은 사회 문제는 내 문제가 아닌 것처럼, 누군가 나 대신 해줄 것처럼, 방관자의 입장으로 바라보기만 한다면 공업세상, 연기세계라는 부처님 말씀은 공허한 가르침이 되고 말 것이다. “모두가 행복해질 때까지는 아무도 완전히 행복할 수 없다”는 16세기 영국시인 스펜서의 말이 불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사회구조적 고통을 내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진정한 불자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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