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소통 중요한 시대
양보다 질적 수준 높이려면
부처님 응답법 부각시켜야

어느 날 숭산 스님이 미국 켐브릿지젠센터(Cambridge Zen Center)에서 다르마토크(dharma talk)를 할 때 금발의 여학생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사랑이 무엇입니까?(what is love?)” 스님은 학생에게 되물었다. “내가 묻습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I ask you what is love?)” 스님에게 반문을 당해 당황하고 있는 학생에게 스님이 말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This is love).” 학생은 역시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스님의 말이 이어졌다. “당신이 나에게 묻고 내가 당신에게 묻는 거 이게 바로 사랑입니다(You ask me, I ask you, This is love).” 당시 하버드대 유학시절 그 다르마토크에 참석했던 도올 김용옥은 “인간에게 있어서 과연 이 이상의 언어가 있을 수 있는가?”라고 감탄하면서 그의 다르마토크는 “이미 언어를 뛰어넘고”, “이미 국경도 초월하고 있었다”고 그의 저서에서 쓰고 있다.

숭산 스님의 영어는 비록 유창하지 않았으나 몇 개의 단어들만으로 마음이 통했다. 그 결과 현각 스님을 비롯한 많은 외국 젊은이들이 한국에 와서 스님이 되었다. 또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여러 나라에 120여 개에 달하는 포교센터를 세워지고 한국불교를 세계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중국 고승들의 어록을 언제 어디서나 되풀이 하는 뜬금없는 선문답이 아니라 예지가 번뜩이는 선문답을 했던 것이다.

숭산 스님의 다르마토크는 대화와 소통의 달인이셨던 부처님의 문답법인 사기답(四記答)을 떠올리게 한다. 〈장아함경〉(佛說長阿含卷八)과 〈대지도론〉(大智度論卷二十六) 등 여러 경전에 나오는 부처님의 응답법에 따르면 부처님은 질문의 성질에 따라 네 가지로 응답하셨다고 한다. 일향기(一向記), 분별기(分別記), 반문기(反問記), 사치기(捨置記)가 그것이다. 일향기란 질문의 내용이 사리에 합당한 경우 분명하게 긍정적인 확답을 하는 방식이다. 사람은 죽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았을 경우 부처님은 “그렇습니다. 사람은 죽습니다”라고 분명히 답하신 것이다.

다음은 분별기다. 내용을 분석하여 맞고 틀린 것을 가려서 그렇다거나 아니라고 대답하는 방식이다. 죽은 사람은 윤회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부처님은 “번뇌 있는 자는 윤회하고 번뇌 없는 자는 재생하지 않는다”고 답변하신다.

세 번째는 반문기로서 되묻고 대답하는 방식이다. 사람은 열등한가? 라는 질문을 받았다면 ”무엇에 비교해서 열등한가를 묻는가? 라고 반문하고 답하신다. “사람은 신에 비교해서는 열등하고 동물에 비해서는 열등하지 않다”고 대답하는 것이다.

끝으로 사치기는 논의 자체가 이익이 되지 않거나 대답할 가치가 없는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고 침묵하셨다. 세계는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는가 등 14종류의 무의미한 질문에 대해서 부처님은 답을 하지 않고 침묵하셨다고 한다.

사회 각 부문에서 민주화의 진행과 함께 전화, 인터넷, 스마트폰 등 통신수단의 발달로 우리 생활에서 대화와 소통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대화와 소통은 양에 못지 않게 질이 중요함을 절감하는 요즈음 우리 불교계는 부처님의 응답법인 사기답과 선문답을 새 시대의 대화법으로 부각시키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수기(隨機) 설법은 실생활에서 부처님의 응답방식인 사기답(四記答)을 응용하고 선문답은 중국선사들의 선어록을 되풀이하는 낡은 방식에서 벗어나 사랑·행복·일자리와 같은 현실적 주제에 대하여 앞의 숭산 스님의 예와 같은 다르마토크 방식을 채용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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