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회가 지난 19일 서울 종로 일원에서 펼쳐졌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후 처음 열린 만큼 실무단체인 ‘불기2556년 부처님오신날 봉축위원회’는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백양사에서 불어온 ‘승려 도박 파문’은 달궈진 봉축 분위기에 찬물을 들이붓고 말았다. 한 일간지는 연등회 직후 제등행진 사진을 게재하면서 승려 도박 관련 후속기사를 큼직하게 썼다. 행사 참석인원이 지난해에 비해 30% 가량 줄었다고 보도했고, 불구용품 매출도 비슷하게 줄었으며, 사찰의 연등접수 역시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기사의 진위여부를 떠나 ‘도박 파문’ 여파는 불자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불교계 위상을 추락시키고 있다.

부처님오신날은 불자들에게 있어 한 해 중에 가장 경사스러운 날이다. 이런 시기에 이 무슨 부끄러운 일인가?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다. 평소 계율을 엄격하게 적용했다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 수년 동안 조계종 호계원에서 심의한 승려 파계 관련 사건은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재가단체의 주장은 한 번도 반영된 바 없다. 승려들이 파계 행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이유 중 하나다.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측도 마찬가지다. 설치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관련 자료를 종단이 아닌 언론에 유포했다. 결과적으로 벼룩 한 마리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모두 태운 꼴이 됐다. 부처님 말씀을 빌리면 자업자득이고, 인과업보다. 조계종 현 집행부 출범 후 2년 8개월 동안 외치던 ‘자성과 쇄신’은 공염불이었던 셈이다. 조계종은 사건 발생 후 집행부를 교체한 데 이어 ‘승가공동체 쇄신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정도 수준의 조치가 종단 안팎에 만연해 있는 계율 불감증을 사라지게 하리라 믿는 사람들은 드물다.

계율이 청정하지 못한 승려는 더 이상 수행자가 아니다. 자신을 제도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뭇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다는 말인가. 계율이 바로 서지 않고서는 종단도 바로 설 수 없다. 조계종은 이번 ‘승려 도박사건’을 또다시 땜질식 임시방편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 연등회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시급한 일은 수행자가 법답게 살아가는 풍토를 정착시키는 일이다. 계율은 집의 주춧돌이다. 계율이 바로 서지 않고서는 조계종의 미래 또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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