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5월 11일은 정부에서 지정한 ‘입양의 날’입니다.

‘입양(入養 Adoption)’이란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법률적으로 친부모ㆍ친자 사이와 같은 관계를 만드는 행위를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20위 안에 들고 있는 경제대국으로 자리했지만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야 하는 해외입양에 있어서는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방송국의 한 시사프로그램에서는 ‘아이를 수출하는 나라-해외입양의 두 얼굴’이란 제목으로 그 실태를 고발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미국에 입양한 건수는 2007년 938명에서 2009년 1,08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대부분 미혼모에게서 발생했습니다. 1953년부터 2007년까지 해외입양 건수는 16만명이 넘습니다. 세계 1위의 수치입니다.
입양은 새로운 인연을 맺는 매우 중요한 의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곳에 입양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복이 갈려지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사찰이 버려지는 아이들의 입양처 역할을 하였습니다. 삼국시대나 고려 조선시대의 사찰은 수행과 기도의 기능도 수행했지만 일종의 복지시설 역할도 했던 것입니다. 한산습득도로 유명한 습득(拾得)도 당나라 때 길에 버려진 아이였습니다. 그를 당대 유명한 국청사의 풍간선사가 절로 데려와 길렀습니다. 〈다경〉으로 유명한 육우도 절에 버려졌던 아이였습니다. 육우는 천문 서탑사의 지적(智積)선사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로 인해 절은 ‘차’와 깊은 인연을 만들게 됩니다. ‘끽다거’(喫茶去) 공안 등은 육우의 영향과 관련이 있습니다. 육우는 삭발출가하지는 않았지만 평생 절에 살면서 ‘차 연구’에 깊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습득과 육우의 예처럼 과거 스님들은 버려진 아이를 거두어 들일 때 부처님 공양하듯 정성을 다했습니다. 오히려 속가의 교육보다 더 진중하므로 비뚤어지는 예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경전에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문수사리여, 만일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모든 세계의 미진수의 모든 중생에 대하여 날마다 하늘의 감로와 갖가지 맛있는 음식 및 하늘의 옷과 침구와 탕약을 공급하여 공양한다고 하자. 이와 같이 무수한 항하사의 수의 세계와 미진과 같은 수의 겁해에 이르도록 공급하여 공양하는 것이다. 문수사리여, 그런데 또 만약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이 다른 외도를 믿지 않고 십선업을 지닌 한 우바새에 대해 ‘이 사람은 부처님의 계행을 배운 사람이니 하루에 일식(一食)을 보시하자’는 마음을 일으켰다면, 문수사리여, 그 복은 앞의 것보다 한량없는 아승기(阿僧祇)만큼이나 많을 것이다.” 〈신력입인법문경〉 제5권


부처님의 이 말씀은 공양과 관련해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비록 하늘의 옷과 침구와 탕약이 아니더라도 부처님의 법을 행하고 선근을 심는 이에게 하루 한 끼의 식사를 공양하는 공덕이 더 크다는 말씀은 입양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자못 크다 하겠습니다.

공양은 꼭 필요한 사람에게 이루어져야 공덕이 높고 오래 갑니다. 입양도 이러한 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의탁할 상대가 없을 때 외롭고 인생은 힘이 들게 마련입니다. 그들은 비록 어리지만 더 좋은 세계에서, 더 행복한 세상에서 살아야 할 존재들입니다. 바로 불성을 지닌 중생들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더 없이 소중한 의지처이자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 스승입니다.

중생들을 속박으로부터 해탈시키고 찬란하고 무한한 미래의 세계를 펼쳐보이시는 분이 부처님입니다. 불자들은 이러한 부처님의 정신과 자비사상을 현장에서 실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입양은 달리 말하면 미래세를 위한 공양정신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입양의 날’을 맞아 가만히 우리의 현실을 들춰보면 우리가 ‘버려지는 아이’들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지 않았나 반성해 봅니다. 우리가 지닌 ‘힘’이란 약자를 보호할 때 그 공력이 무한히 발휘되는 것입니다.

〈본생경〉 ‘마니이환품-메추리의 전생’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메추리가 코끼리가 돌아다니는 곳에 알을 낳고 새끼를 낳았습니다. 어느 날 8만 코끼리가 그곳을 지나게 되자 메추리는 코끼리 왕 앞에 나아가 빌었습니다. 코끼리왕은 8만 코끼리가 모두 지날 때까지 메추리 새끼를 지켜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무리와 달리 혼자 생활을 하는 교만하며 힘이 센 코끼리는 간청에도 아랑곳 않고 새끼들을 밟아 죽였습니다. 메추리 어미는 까마귀와 쉬파리와 개구리를 찾아가 새끼를 죽인 코끼리에게 복수하고자 협조를 구했습니다. 이들에 의해 힘센 코끼리는 눈이 파이고 결국 높은 산에 올라가 벼랑에서 떨어져 죽음을 맞게 됩니다.


여기서 새끼를 지켜 준 코끼리는 8만 가족을 거느린 왕으로 행세하는데 비해 자기 밖에 모르는 코끼리는 비운의 삶으로 인생을 허무하게 마감합니다.

어린 새싹의 보호와 양육을 위하는 입양은 현대사회에서 선연의 끈을 이어주는 가장 큰 공덕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 불자님들을 중심으로 입양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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