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2006년 4월 중국 저장성 동부 항저우 일대에서 제1차 세계불교포럼을 개최한 바 있다. 이 포럼의 3차 대회가 최근 중국 홍콩에서 열렸다. 이 대회의 개최는 ‘불교 세계화를 위한 결집’이란 측면에서 반가운 일이지만, 그 이면에 깃든 중국의 ‘패권주의’는 우리에게 씁쓸함을 안겨준다. 의도가 어떻든 솔직히 중국불교의 세계화를 위한 노력은 부럽다.

제1차 세계불교포럼은 중국이 1949년 공산화 된 이후 국가가 인정한 첫 종교행사였다. 당시 억압적이던 중국의 종교정책에 대한 이미지 쇄신과 중국 내 계층 간 결속 강화를 위해 불교를 이용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실제 지난 두 차례의 대회에서 ‘불교 결집’이나 ‘세계 화합’은 허울뿐이고, ‘중국불교의 세계 재패’ 내지 ‘중국 정부의 패권주의를 위한 방편’이 진짜 속내라는 건 이미 드러났다. 특히 제2차 세계불교포럼에 판첸라마를 등장시켜 ‘티베트와 중국은 하나’라고 공표한 행동은 티베트 망명정부를 부정하면서 중국의 패권주의를 세계에 거침없이 보여준 장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불교포럼은 회를 거듭할수록 입지가 굳건해지는 양상이다. 제2회 대회에 이미 50여 개국에서 2천여 불교 인사가 참석하는 등 이 포럼은 세계 최대의 불교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수천 억 원을 들여 영산범궁을 짓고, 수백 억 원에 달하는 행사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중국 또는 중국불교의 위상을 높이려한 의도가 제대로 먹힌 셈이다.

한국불교를 양적인 측면에서 중국불교와 비교할 생각은 없다. 막대한 물량 공세가 부러울 뿐 그들의 불교 세계화 방법을 롤 모델로 삼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국의 핍박 속에서도 서구에서 꽃을 피우고 있는 티베트 불교를 본받자.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물량 공세가 아닌 양질의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한국불교 지도자들은 이번 대회를 계기로 한국불교의 세계 속 위상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또 아집과 자만에 젖어 세계 속에 내세울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지 못한데 대해 반성해야 한다. 제3차 세계불교포럼이 한국불교가 자성하는 계기가 돼 도약의 밑거름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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