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로 임기가 끝나는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이 지난 5일 종도들을 대표해 신년하례법회에 참석한 조계종 집행부와 교구본사주지 스님들에게 “화합이라는 화두를 들고 용맹정진하자”는 신년 교시를 내렸다. 2009년 ‘소통과 화합’을, 2010년 ‘화합과 일체심’을 강조한데 이어 3년 째 ‘화합’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화합’은 날마다 강조해도 좋은 말이지만, 한국불교의 장자 종단인 조계종의 정신적 지주인 종정이 3년 연속 ‘화합’을 입에 담았다는 말은 반대로 조계종이 ‘화합’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는 말로 들릴 수 있는 만큼 반성해 봐야 한다.

올 한해가 세계 경제의 침체와 북한의 권력 세습으로 인한 불안 정국, 4월 총선과 12월 대선 등 위기와 변화의 시기인 점을 감안하면 ‘화합’은 시의적절한 가르침이다. 하지만 법전 스님의 신년 교시에는 이보다 조계종단 내 화합을 당부하는 의지가 더욱 크게 담긴 듯 하다. 2010년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으로 불거진 자승 스님과 명진 스님의 갈등은 지난해 내내 불교계 안팎을 들쑤셨다. 그 뿐인가. 조계종 ‘자성과 쇄신 결사추진본부’가 ‘종교평화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 발표를 앞두고 법전 종정 스님에게 재가(裁可)를 받는 과정에서 도법 스님(결사추진본부장)·법안 스님(결사추진위원)과 선각 스님(종정예경실장) 사이에 발생한 불협화음도 아직 해소되지 못한 상태다. 종정 스님의 교시를 조계종단의 ‘화합’으로 해석하게 되는 이유다.

현 조계종 집행부는 출범 당시 ‘소통과 화합’을 전면에 내세운 바 있다. 하지만 임기 중반이 지난 지금까지 소통에는 성과를 거뒀을지 몰라도, 화합에 대한 성과는 미흡했다. ‘소통과 화합’은 ‘비움과 나눔’이 전제돼야 한다. 내 욕심을 비우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행복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바로 ‘소통과 화합’이란 말이다. 법전 종정은 교시에서 임제 선사의 말을 인용하며 “무사귀인(無事貴人)은 언제나 나를 비움으로서 저절로 얻어지는 자리이고, 서로를 낮춤으로서 서로에게 더욱 귀해지는 자리”라고 말했다. 올 한해 비움을 통해 ‘화합’에 매진하는 조계종의 변화된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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