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란 모두가 안락 누리는 것
잘못된 정책 운용 재앙 불러
시민에 희망주는 부채 내놓길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결과를 미리 점치는 건 어렵지 않았고, 예상은 적중되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에서는 후보도 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박원순 변호사가 출마를 선언했고, 안철수 교수가 시원스럽게 그를 지원하기로 한 순간 차기 서울시장이 결정되었다고 해도 잘못이 아니다. 선거기간 동안 여러 변수가 발생하였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은 것은 서울시민들의 현정권에 대한 분노와 절망이 그만큼 크고 깊었다는 사실을 뜻한다. 다시 말해,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승리는 박원순 후보에 대한 절대적 지지라기보다 현 집권세력에 대한 대다수 서울시민, 더 나아가 국민의 경책과 징벌의 성격이 더 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정치사를 일별해보면, 정치권 밖에서 존경과 신뢰를 받던 이가 막상 정치판에 들어와 만신창이가 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두 차례나 여권의 유력한 대권후보로 거론되다 낙마한 이회창 총재부터 지금의 박원순 시장 모두 오랫동안 숨겨왔던 과거사가 하나둘 밝혀지면서 정신적, 정치적 상처를 입었다. 특히 그들은 정상적인 남자라면 반드시 군대에 다녀와야 하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사정 때문에 과도한 비판을 받았다는 점에서 ‘파르마코스’와 비견된다. 그들이 평생 일궈온 법조인으로서의 이력과 업적에 커다란 상처가 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국가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작은 오류나 흠절도 없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오세훈 전 시장이 물러난 것은 무상급식 때문으로, 그것은 현대 사회의 가장 민감한 사안 가운데 하나인 ‘복지(福祉)’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무상급식에 대해서는 찬반양론 나름의 논리적 근거와 타당성이 있으나, 점심을 굶는 청소년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모두 동의하리라 믿는다. 현대 사회는 시장경제논리를 앞세운 무한 경쟁과 욕망이 허용되는 한편 가진 자의 기부와 희생이 미덕으로 권장, 칭송되는 이중적 가치가 존재한다. 복지란 범박하게 말해 많이 가진 사람들이 제것을 조금 나누거나 양보하여 골고루 안락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제도적 장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유럽과 남미 몇 나라의 사례처럼 복지정책을 잘못 운영하면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커다란 재앙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복지를 내세워 토목공사나 호화 행사만 벌이다 재정을 거덜낸 지방자치단체가 적지 않다. 새로운 서울시장은 이러한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웃음과 희망을 잃은 서울시민에게 미소를 되찾아 주어야 할 것이다.

염관(鹽官) 화상이 ‘무소뿔 부채’를 찾자 주변 사람들은 “부채가 망가졌다”거나 “뿔이 온전치 못할까 걱정스럽다”는 말로 둘러댄다. 〈벽암록〉 제91칙 공안에서 ‘무소뿔 부채(犀牛扇子)’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본성 또는 우주의 실체를 뜻하지만, 이를 현실적 욕망과 필요의 문제로 환치하는 것도 흥미롭다. 염관 화상은 날이 더워 부채를 가져오라 했을 터이므로 시자는 아무 부채라도 먼저 갖다드렸어야 옳다. 지금 당장의 문제는 더위를 쫓는 것이지 부채살이 무소뿔이냐 대나무냐가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깐의 더위를 참고 견딘 뒤 무소뿔 부채를 얻으면 기쁨이 배가되고 오랫동안 애용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사회에서 복지란 염관 화상의 무소뿔 부채와 같은 것인지 모른다. 지금 당장의 더위를 쫓으려고 싸구려 부채를 탐내야 하는가, 아니면 오래 즐기기 위해 현재의 고통을 참아야 할 것인가.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민에게 어떤 부채를 내놓을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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