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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정신
  • 장영우 동국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 승인 2011.06.20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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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려는 욕심 떨어내고
나눠주면 모두 행복해지는
마음ㆍ태도가 진정한 무소유

전직 장관이자 현 지방국립대 총장이 자살했다. 그가 남겨놓은 유서의 ‘악마의 덫’이란 구절이 많은 사람의 구설에 오르고 있으나 정확한 사정은 알 길이 없다. 이와 함께, 자신의 집무실에 CCTV를 설치했다는 성남시장의 말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시장이 되고 보니 ‘돈봉투’를 들고 오는 이가 많아 아예 사무실에서의 면담 장면을 공개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사건이 모두 인간의 무한한 물질 욕망과 관련된 듯하여 입맛이 쓰다.

사람은 얼마나 많은 재물이 있어야 만족할까? 1970년대 말, 장영자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소설가 이병주는 〈행복어사전〉이란 작품에서 ‘5억 행복설’을 주장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액수가 열 배나 뛰어 50억은 있어야 부자란 소릴 듣고 스스로 만족해하는 모양이다.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데, 대학캠퍼스에서도 쉽게 목격된다. 학생식당에서 1500원짜리 점심에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7000~8000원짜리 양식에 2000원짜리 원두커피를 먹는 학생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한 캠퍼스에서 공부하지만 의식과 가치관이 전혀 달라 일체감을 느끼기 어렵다.

작년에 입적한 법정 스님은 기르던 난(蘭)에 집착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지인에게 난을 주면서 ‘무소유’를 주장하였다. 이 글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고, 김수환 추기경은 “스님은 무소유를 주장하지만, 난 〈무소유〉란 책은 소유하고 싶다”고까지 말했다. 스님은 입적하는 순간에도 당신의 책을 모두 없애버리라 하여 무소유 정신을 강조했지만, 일반사람들이 이를 따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중국 방거사의 출가행은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고 있어 시선을 끈다. 그는 출가하면서 논밭은 모두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으나 유독 세간과 돈은 동정호에 버렸다. 사람들이 놀라 그 연유를 묻자, “나는 가진 것 때문에 괴로워했는데, 이것을 남에게 주면 그들 또한 괴로워할 게 아니겠나?”고 말했다고 한다. 방거사의 이 일화는 법정 스님의 ‘난’ 이야기에 대한 좋은 비판이 된다. 실제로 법정 스님의 수필 〈무소유〉와 관련하여 이와 유사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님이 그토록 아끼던 난을 받은 사람은, 그 난을 잘못 키우면 어떡하나 하는 고민과 집착에 빠질 수도 있을 거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법정 스님과 방거사의 이야기는 동일하면서도 다르다. 방거사는 평생 부자로 살다가 출가하면서 모든 것을 버렸고, 법정 스님은 가진 게 없으면서도 난에 집착했던 자신이 부끄러워 그것을 남에게 주었다. 방거사의 행위가 출가자의 단호함이라면 법정 스님의 행동은 재가자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방거사는 재물을 많이 가진 자의 괴로움만 생각하고 재물이 필요한 사람의 욕망은 무시했지만, 법정 스님은 난을 버리거나 죽이지 않음으로써 자신도 집착에서 벗어나고 그것을 갖고 싶어했을 사람의 욕망도 해결해 주었다.

현대인에게 방거사와 같은 무소유의 삶을 살라고 강조할 수는 없다. 세간의 온갖 욕망과 집착을 끊고자 결심한 출가자에게 적합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은 지남(指南)이 된다. 내게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것. 그것을 가지려 하면 집착이 되고 버리거나 죽이면 살생이 되지만 남에게 주면 두 사람 모두 행복해지리라는 것, 이런 마음과 태도야말로 우리가 되새겨 실천해야 할 진정한 무소유정신이 아닐 수 없다.

장영우 동국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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